우리는 워마드의 혐오 전략이나 과격한 방법에는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여성들이 왜 분노하는지, 위협을 느끼거나 두려워하는지, 나아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위계적 가부장제 젠더 체계에 의한 성차별과 여성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좌절과 분노가 무엇인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건강한 민주 공동체를 위한 미래의 전망이 어둡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내가 경험한 것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 개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이 현상을 분석하고 조명하고자 한다. --- p.5
혐오는 요즘 한국 사회의 중심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넘쳐나는 동시에 특정 집단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해 혐오 발언이 확산되고 있다.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진 원인을 정치 사회 경제 구조에서 찾기보다 소수자 우대로 인한 역차별에서 찾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들은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거나, 여성과 경쟁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여성들이 오히려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여성할당제 등 소수자 우대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향은 사회 구조에 대해 분노하기보다는 소수자를 향한 비난과 혐오로 발산된다. --- p.13
혐오란 일반적으로 ‘싫어하고 증오하는 감정’, 혹은 ‘싫어하고 미워하여 회피하려는 정서적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무엇을 혐오한다’는 것은 ‘무엇을 싫어하거나 증오하여 회피하려는 것’으로 기술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 혐오’를 단지 여성을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감정이나 정서적 태도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혐오의 개념을 단순히 이런 의미로 사용하지만, ‘여성 혐오’의 정의에 이르면, 그 의미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이다. 여성 혐오란 단지 여성을 싫어하고 증오하는 감정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 혐오는 단순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기호나 취미의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차별적인 함의를 갖는다. --- p.27
차별적 의미의 혐오의 개념을 토대로 여성 혐오를 정의해 보면, 왜 여성들이 일련의 사건을 두고 ‘여혐/여성 혐오’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위계적 가부장제 젠더 체계에 토대를 둔 성차별적 혐오를 문제시 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남성들이 ‘그것이 왜 여혐이냐’고 반박하는지도 알 수 있다. 젠더 체계의 여성 차별적 구조를 의식하지 못하는 남성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여성 혐오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단순히 취향적 의미의 혐오가 아니라 차별적 의미의 여성 혐오에 대해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41
한국 사회에서 ‘김치녀’, ‘된장녀’를 비롯하여 여성 전체를 매도하는 극심한 혐오 발언이 넘쳐나는 동시에, 강남역 살인 사건 등을 겪으면서 여성들은 여성 혐오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일간 베스트(‘일베’)를 비롯한 남초 사이트에서 여성 비하와 차별을 포함하는 여혐이 확산되는 가운데 메갈리아는 혐오를 남성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미러링 전략으로 대응하였다. 동성애 소수자 문제를 기점으로 메갈리아에서 분리되어 나온 워마드의 혐오 표현은 충격적으로 다루어졌고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메갈--- p.워마드에 대해 ‘여자 일베’라는 비난으로부터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전략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이 공존한다. --- p.57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메갈리아--- p.워마드의 혐오 미러링 전략은 특정한 효과를 가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혐오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혐오 표현을 통해 충격을 가하면서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슈를 몰고 오는 비난받는 방식일지라도, 미러링 전략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충격 요법이 되었다. 때리면 맞기만 하던 여성이 아니라, 그 이상의 반격을 가해 오는 여성들의 혐오 발언에 여혐을 일삼거나 방관하던 남성들은 경악하거나 위협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미러링은 무의식적인 관행으로 이루어져 온 여성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돌이켜보도록 하는 자각의 계기가 되었다. 미러링 전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목소리를 내고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일차적 효과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고통의 호소는 목소리가 없는 듯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 p.70
혐오감의 일차적 대상은 자신의 동물성을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신체적 배설물, 시체, 동물성과 죽어야 할 숙명 같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사람들은 다만 자신의 동물성을 혐오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자신들과 대척하는 경계선 밖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필요로 한다. 그 집단을 혐오스럽고 동물적인 것만을 상징하는 것으로 낙인찍고 증오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동물적 특성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지배집단을 안전하게 격리시킨다. 만일 그러한 동물적인 인간들로부터 나 자신을 성공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면 나는 동물로부터 멀리 떨어져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그러한 혐오의 집단은 여성이며, 소수인종이나 소수민족(아프리카 미국인, 유대인 등)이 그런 동물 같은 집단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혐오스럽다고 낙인찍힌 하위집단은 결함 있고, 무가치하고 훼손되었으며 초월적인 인간성의 높이까지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동물적 육체성을 부정할수록 그들에 대한 혐오와 낙인찍기는 더욱 공격적이 된다. --- p.80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불의로 갚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보다 당하는 편이 더 낫다.’ 여기서 불의 대신 폭력이나 혐오를 대치해도 이 주장은 성립할 것이다. 한편 이 주장은 자명한 진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불의한 현실 상황에서 우리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불의를 저지른 상대나 권력에 대해 불의를 사용하는 것이 왜 나쁜가? 폭력을 사용하는 자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왜 나쁜가? ‘불의를 불의로 갚지 말라’는 것은 확실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전략과 다르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불의나 폭력은 그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혐오 역시 폭력이나 불의와 마찬가지로 정당화될 수 없다. 비록 남이 나에게 먼저 폭력이나 혐오를 사용했더라도,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혐오 전략 자체는 정당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 p.92쪽
최근 몇 달 사이에 한국 여성주의 운동에는 몇 가지 사건과 더불어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불법 촬영 편파 수사에 항의하며 수만 명의 여성들이 오프라인 광장에서 연대하여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혐오 미러링을 놀이로 수행하던 워마드의 기조도 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6개월 전과 비교해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성을 배척하고 생물학적 여성들만을 챙기던, 동시에 여성이면 모두 감싸고 보호하던 워마드가 여성들 간에 계급을 나누며 분리주의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득권 남성만을 향하던 혐오 미러링이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고 비방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또한 성체 훼손 사건을 비롯하여, 성당 방화와 남아 납치의 범죄를 예고하는 등 더욱 과격하고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제 워마드는 더 이상 놀이에 머무르거나 가벼움의 논리나 하나의 특정 논리를 따르지 않는 듯하다. 여성 차별과 여혐에 대한 미러링과 호소에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향한 분노로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 p.115
과격한 혐오 미러링에 대해 반사회적이라는 비난과 평가에도 불구하고, 워마드가 여성 차별과 여성 혐오의 문제를 최대의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켰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이전의 어떤 페미니즘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 문제를 사회 전면에 등장시킨 유래가 없다는 점에서도 워마드 현상은 특별한 것이다. 워마드 현상 이후, 사회인식의 변화와 함께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도 변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여성 차별에 저항하는 많은 여성들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는 워마드의 이미지와 목소리도 들어있다. 미러링의 놀이를 통해 얻은 각성의 힘은 놀이가 끝난 이후에도 서로를 이어 주는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오프라인에서도 지속적으로 연대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워마드는 놀이가 끝나면서 자기모순과 부정적인 현상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연대를 이어나갈 놀이 공동체의 결속감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 p.127
여성주의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남녀 대결이 아니라, 차별 없이 남녀 모두 자유로워지는 것을 지향한다. 가부장제 젠더 체계는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지만 동시에 남성의 역할 역시 규제하며 작동한다. 남성이 우월한 성을 하사받지만 그에 따른 규범적 역할도 강요받는다. 남성 역시 남자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이런 작동 체계에서 탈피해야 한다. 남성도 젠더 규범에 맞춘 똑같은 삶을 살기보다 각자 개성과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성별에 따른 규범이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사회란 얼마나 편협하고 억압적이고 획일적인가? 여성과 남성 모두 가부장제 젠더 체계에서 자유로워지고 해방되는 그런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얼마간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약자의 차별 위에서 자신의 안위를 얻는 것에 안주하기보다, 함께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