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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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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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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6쪽 | 140*210*20mm
ISBN13 9791190526531
ISBN10 119052653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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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수뗑이   평점4점
  •  특이사항 : 출간 20211030, 판형 140x210, 쪽수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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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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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 길 한쪽 끝에서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이슬람성원과 주말마다 플리마켓이 열리던 계단도 가보았다. 어릴 적 잠시 살던 아주 좁은 골목의 이층집도 스마트 폰에 담았다. 도깨비시장은 인적조차 없어 그야말로 도깨비만 사는 시장이 되었다. 매일 심부름을 다니던 가게에 두부 담던 판만 엎어져 있다. 두부가게 아줌마는 어디로 갔을까? 상이용사촌 입구의 목욕탕은 목욕탕이었음을 알 수 있는 목욕탕 표시만 남았다. 교회 앞에서는 피아노를 만지지 못하게 하던 인색한 목사도 떠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 「우사단 약국」 중에서

찾아간다고 언제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것도 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면 아버지 직장 앞으로 가서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가기 싫은 눈치를 보이면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욕을 폭풍처럼 퍼부으며 눈을 부라렸다. 나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아버지를 놓칠 새라 눈을 고정시켰다.
왜냐하면 엄마의 무서운 호통과 눈초리가 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다 아버지를 만나면 이번에는 반갑지 않고 귀찮은, 화내지 못해 짜증 난, 그래서 더 외면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눈길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내쫓겨 아버지의 뒤를 찾아다니는 기간이 길지 않았다 해도 내겐 아주 오래도록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내가 겪은 것에 엄마로 인해 덧입혀진 것들임을 엄마도 짐작할까? 한 번도 그때 일을 서로 꺼낸 적이 없다. --- 「레테의 강가에서」 중에서

판결의 소문은 빠른 속도로 식당에서 멀리 퍼져나갔다. 패소한 것과 음식의 맛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을 찾는 손님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사람의 에너지로 지탱했던 건물의 내부가 비어가자 건물은 빠르게 노화되는 것 같았다. 가게를 비우라는 통지서도 우체부가 가져왔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같았던 언니와 가게는 분리되었다. 가게와 분리된 순간, 언니에게 남은 건 빚뿐이었다. --- 「젠트리피케이션의 내일」 중에서

관광객을 태운 배들이 일몰을 보기 위해 소리를 낮추고 천천히 움직여 호수 가운데로 향한다. 타오르던 해가 호수를 핏빛으로 물들이려고 수평선 가까이로 움직인다. 수평선에 붉은 기운이 서리자 나의 뇌리는 비릿한 냄새를 인지한다. 뇌는 피 냄새와 물고기 냄새를 구분하려 애쓰지만 내 기억 속 냄새의 지배를 더 받는 것 같다. 닫히지 않은 자궁에서 쏟아져 나오던 피 냄새가 뇌와 코 사이를 왕래하며 소멸되지 않는다. 울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눈물이 흐른다. --- 「톤레삽 호수」 중에서

두 사람은 십수 년이 넘도록 함께 생활하면서 아직도 서로의 과거에 대해 직접 묻고 답하지 않았다. 명숙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시월은 아직도 과거에 대한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가 수반되어야 한다. 현재의 그 사람은 과거로부터 단단하게 축적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만으로는 전체를 이해하기 부족하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은 익숙한 반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예의와는 달랐다. 가방을 챙기는 시월에게 왜 따라가려는지 이유를 묻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고 싶은 게지. 가고 싶으면 가야지. 명숙이 시월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 「건널목」 중에서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6개씩 가지런히 들어있는 화장지가 드러났다. 비닐봉지를 잡아당겼지만 그녀의 힘으로 쉽게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비닐을 찢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하나씩 들어냈다. 6개를 들어내고 그 옆의 비닐봉지를 찢어서 또 들어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빠져나간 자리 밑에는 검은 봉지가 있다. 봉지를 풀자 차곡차곡 포개진 오만 원권 다발이 돈 냄새를 풍기며 나왔다. 봉지를 틀어쥐고 일어서던 임실댁이 휘청거리며 주저앉는다.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나고,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밤새도록 임실댁은 돈 봉투를 놓지 않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 「항생제 사용법」 중에서

신호에 따라 최면에 들어가고 나가게 된다면서, 그 신호를 ‘레드썬’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건 최면에 들어가고 나가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레드썬을 반복하는 소리를 세 번째까지 들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다시 레드썬이 들렸을 때 정애는 최면에서 빠져나왔다. 그때 들었던 레드썬은 마치 괜찮아, 괜찮아 같았다. 머릿속은 뿌연 안개 속이었고, 몸이 무거워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눈물을 흘렸었는지 눈가가 촉촉하고 침을 삼키자 목이 아팠다. 기억이 팔려나간 것처럼 허허로웠다. 의사는 한동안 정애에게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아마도 그날 그놈 일을 꺼냈을 것이다. --- 「레드썬」 중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연변을 떠나기 전까지는 연변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연변은 조선족 자치주이고 조선어가 공용어였다. 하지만 큰 도시로 나오니 차별이 무엇인지, 차별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신장 쪽에서 온 위구르족을 베이징의 숙박 시설에서 받지 않는 걸 목격한 순간부터였다.(…) 어느 날 친구가 빌려준 책에서 재일교포 작가인 서경식의 칼럼을 우연히 읽었다. 모국에서 살지 못하고 떠도는 디아스포라들을 수레바퀴 자국 고인 물속의 붕어에 비유한 글이었다. “말라 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는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신다”는 루쉰의 글을 인용한 칼럼을 읽으면서 정체불명의 감정이 갈라진 내 살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 「디아스포라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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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 약국』은 특이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자기만의 말투가 도드라지는 세계이다. 이야기의 논리, 이미지, 주제 같은 것이 비교적 정교하지만, 그보다도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말투가 남이 흉내 내기 힘들다. 일부러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내려고 다듬고 고치고 노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꼭 전달하고 싶다는 열정에 스스로 몰입해 있을 때 나오는 듣기 좋은 목소리이다. 다른 사람은 따라 할 수 없는 자기만의 목소리로 그가 본 세계를 열심히 들려주고 있는 것이 김현주 작가의 소설집 『우사단 약국』이다.
- 김성달 (소설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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