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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정신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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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정신의 지도

: 당신이 지극히 정상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발칙한 정신분석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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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69쪽 | 472g | 141*220*20mm
ISBN13 9788950925734
ISBN10 8950925737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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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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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의사나 심리치료사는 뉴스를 볼 때면 가끔씩 답답해한다. 뉴스 속에는 전쟁도발자, 테러리스트, 살인자, 경제사범, 냉혈인, 그리고 뻔뻔한 이기주의자들이 가득한데 아무도 그들을 치료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정상이란다. 나는 매일 병원에서 치매 환자, 의지가 약한 중독자, 신경이 예민한 정신분열증 환자, 심각한 우울증 및 조울증 환자들을 만난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의심이 저 밑바닥에서 서서히 올라온다. "나는 엉뚱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상인이 더 문제다."
이러한 대담한 주장을 증명하려면, 유별난 정상인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신병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정신병자에 대해 알기는 쉽지 않다. 옛날에는 신선한 공기가 환자에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정신병자를 초원 위의 친절한 기관으로 보냈다. 좋은 마음으로 정상인들과 격리가 되는 초원으로 보냈지만, 오히려 정신병자들은 더 이상해졌다. 그것을 알고 정신병자들을 부랴부랴 다시 도시 한복판으로 옮겼다. 오늘날 이들은 대단히 전문적인 기관에서 산다. 어찌나 전문적인지 최소한 심리학 학사는 되어야 정신분열증 환자와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전문가들의 잘난 체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정신병자는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아주 낯선 사람이 되었다. 말하자면 '전문적인 게토'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계몽이 필요하다.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과 극히 정상적인 광기에 대한 계몽.---p.16-17

히틀러는 정신병자였을까? 누가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은 바로 대답할 것이다. "그러한 대량 학살자는 정신병자임이 틀림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학살을 자행하는 일은 정상인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정신병자였을까? 그렇지 않다! 만약 히틀러가 정신병자였다면 무죄를 선고받아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당시 히틀러를 제일 가까이에서 본 정신과의사는 나중에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신경정신과 학장을 지낸 카를 빌만스뿐이었다. 히틀러를 멀리서 본 다른 정신과의사 중에 히틀러가 정신병자이므로 무죄를 선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히틀러는 확실히 기괴한 사람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증오와 공격성, 그리고 파괴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만약 히틀러를 정신병자로 인정했다면 그와 관련된 모든 역사적 재앙의 충격은 완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히틀러를 정신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했을 테고 모든 재앙은 자연스럽게 이해되면서 잊혔을 것이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뮌헨 출신의 화가에게 약간의 의약품과 그를 보살펴줄 사람 몇 명,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 심리치료사가 있었다면 수백만 명의 죽음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히틀러는 정상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만큼 정상인이었다. 그는 정상을 넘어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자신을 극히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능력,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이 있었다!---pp.27-28

우리 사회에는 극히 정상적인 광기만 있는 게 아니다.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도 있다. 단둘이 기차 안에 마주앉아 여러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전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쓸쓸하고 창백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정상적인 우리 사회의 회색 쥐다. 이들의 모토는? "튀지 말자!" 이들은 학교에서도 약간 노력하는 인상을 주면서 늘 중간을 유지했고 그래서 반 친구들도 이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춘기 때는 선생님 의자에 몰래 껌을 붙이는 행위로 반항했다.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들키지도 않았다. 이들은 청결을 최우선으로 삼고 뼛속까지 청결한 여자를 동네 빨래터에서 만나 평생의 배우자로 삼았다. 돈을 준다기에 점원이 되었고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고, 튀지 않으려고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이들은 언제나 잘 차려입은 신사처럼 옷을 입었다. 그가 뭘 입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면 잘 차려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늘 전체의 의견을 따랐는데, 약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을 경우에도 과격하지 않게 표현했다. 이들은 평이하게 죽었고 대부분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묘비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조용히 잠들다." 이들은 죽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죽으니까. 시체가 되어서도 이들은 일반적인 경향을 철저히 따른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신과의사를 만날 일이 전혀 없다. 심리테스트에서도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판명된다. 이들은 살아가는 모습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지 어쨌든 이들은 살아 있다. 이렇게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을 조롱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부다. 모든 교통질서의 기본 조건이다. 통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증오하는 통계학자들의 기쁨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에 독특한 사람들이 더 특별하게 보이곤 한다.---pp.34-36

이쪽 계통에선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이 다정다감한 정신과의사가 혼잣말처럼 슬쩍 흘린 얘기에 나는 충격을 받아 머리가 다 띵해졌다. 그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이 도대체 어떻게 정신분열증을 이겨냈는지 늘 신기하고 궁금하다고 했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정신분열증이라고? 온몸의 관절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프란체스코 성인을 언제나 높이 평가했었다. 아시시 지방에서 온 이 '걸인'은 중세의 상류층을 화가 나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늘 생각하고, 새들과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부잣집 도련님이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맨몸으로 가출해서 거지로 사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신분열증이라는 표현은 좀 심한 거 아닌가? 나는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이 가난한 성인의 널리 알려진 생애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정신의학적 용어로 설명했다. 진단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정신분열증이 맞는 것 같았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환청을 들었다. 자신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환청은 정신분열증의 1급 증상이다. 그는 아시시 근처의 낡고 작은 성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의 교회를 다시 세워라!" 그는 이 말을 상징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말 그대로 '건설적으로' 이해했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돌을 쌓고 또 쌓아 교회를 다시 세웠다. 젊은 사내가 누더기 옷을 입고 병원 입구에다 작은 교회를 다시 세우겠다며 돌을 쌓는다고 상상해보라.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볼 테고 마침내 경찰이 출동할 것이다. 거기서 뭐 하느냐고 물으면 젊은 사내는 환한 표정으로 십자가의 명령을 들었다고 답할 것이다. 확언하건대, 우리 병원에 환자 한 명이 더 늘어날 것이다. 솔직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례다. 그렇지 않은가?---pp.66-67

환자가 결정한 목표는 때때로 아주 독특할 수도 있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아주 중요한 경험을 했다. 환청을 듣는 한 젊은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자신의 환청은 뭔가 도움을 청하는 이상한 내용이었지만 참 듣기 좋은 음성이라고 했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상세히 조사해보니 환청을 없애는 처방을 전혀 하지 않았고 처방을 하지 않은 근거 역시 타당성이 없어 보였다. 나는 환자에게 간단히 설명한 후 약을 처방했다. 다음 진료를 받을 때 환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환자의 상태는 이전보다 훨씬 심해져 있었다. 내가 환청이 그쳤는지 물으니 그쳤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환자는 늘 죽은 선생님의 상냥한 음성을 들었고, 그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음성이 사라져서 몹시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나는 환청을 없애는 방법과 그 방법을 정확하고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운 대로 환자에게 적용하여 환청을 없애주었는데, 환자는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욕했다. 나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환자에게는 환청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 선생님의 음성은 그 환자의 세계였고 그 속에서는 마냥 행복했다. 나는 환청이 다시 들릴 때까지 처방약의 양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얼마 뒤 환자는 만족한 얼굴로 나를 다시 찾아왔다.---pp.97-98

밀턴 에릭슨의 치료 사례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인이 그에게 와서 전 재산이라며 돈다발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그 돈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면서 만약 치료에 실패하면 자살할 생각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의뢰는 누구나 거절하고 싶어한다. 자살이라는 다모클레스의 검 (다모클레스가 디오니시우스 1세의 행복을 찬양하는 아첨을 하자 디오니시우스 1세는 화려한 잔치에 그를 초대했다. 그러고는 말총 한 올에 칼을 매달고 그 아래에 다모클레스를 앉히고 권력자의 운명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었다-옮긴이) 아래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남달랐던 에릭슨은 치료를 맡았다. 그 여인은 인간관계의 문제로 힘들어했다. 얼마 전에는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앞니 사이에 벌어진 틈 때문에 인상이 나빠 보이고 심지어 험상궂어 보인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어떤 동료는 그녀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다 듣고 에릭슨은 여인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다. 에릭슨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 입안 가득 물을 머금은 다음 앞니의 벌어진 틈새로 물을 뱉어 지정한 자리에 뿌려보라고 요청했다. 젊은 여인은 시키는 대로 했다. 처음엔 잘 안 되었지만 여러 번의 연습 끝에 마침내 매우 능숙하고 완벽한 솜씨로 표적을 맞추었다. 앞니의 틈새로 물을 뱉어 꽤 먼 곳의 표적을 정확히 맞추자 에릭슨은 그녀에게 두 번째 지시를 내렸다. 이제 그녀는 사무실 동료가 보는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니 틈새로 물을 뱉은 다음 재빨리 사무실을 나와야 했다. 과제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녀는 에릭슨이 시키는 대로 했고 처음으로 동료와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 뒤로 둘은 더 자주 대화를 했고 마침내는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점점 더 자주 만났다. 치료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 여러 해가 흐른 뒤 에릭슨은 사진이 동봉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아이 넷과 함께 찍은 행복한 가족사진이었다.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보시다시피 네 아이 중 셋이나 틈새의 축복을 받았답니다!" 에릭슨은 이렇게 기발한 방식으로 환자를 속박에서 해방시켰다. 자살의 원인이 될 뻔했던 앞니 사이의 벌어진 틈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기게 했다.---pp.116-118

나는 대학병원 정신과에 가서 50대 환자를 면담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여섯 명의 의학도들은 그동안 배운 정신의학기술을 총동원하여 환자를 탐색했다. 환자는 매우 친절했고 면담에도 적극적으로 임했으며 우리가 이것저것 묻는 말에 취미는 뭐고, 대학은 어디서 다녔고, 직업은 공학자라고 막힘없이 척척 대답했다. 그러던 중에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아냈다. 그는 어쨌든 정신병 때문에 병원에 있었고 정신병은 곧 부부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그 부분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아내에게 쥐여살았고 그래서 늘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약 한 시간 동안의 면담이 끝나자 환자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교수는 우리가 진행한 면담 내용을 궁금해했다. 우리는 그 환자의 병이 부부문제에서 비롯한 정신병이라고 확신하며 관찰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동안 배운 전문용어들을 써가며 감탄과 흥분상태로 보고하는 동안 교수의 반응은 점점 이상해졌다. 우리의 관찰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말하지 않고 야릇한 미소만 지었다. 우리의 흥분된 보고가 끝나자, 관찰한 모든 것을 보고한 게 맞느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환자를 다시 불러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고 상투적인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가 어디냐고 툭 던지듯 물었다. "호텔이잖아요." 환자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우리는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우리가 정신병원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교수는 친절하게 계속 물었다. 환자는 현 수상의 이름도 몰랐고 날짜도 몰랐다. 그는 우리를 기자로 여겼다. 교수는 정중하게 대화를 끝냈고 환자 역시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살짝 재미있어 하는 교수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아 있었다. 환자는 상투적 대화와 간단한 이야기로 한 시간가량을 아무 문제 없이 자신이 치매 환자임을 감출 줄 알았다. 장기기억은 여전했으므로 몇 살이냐는 질문에 그는 1927년생이라고 답했다. 태어난 해를 말했지 나이를 말하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올해가 몇 년도인지 몰랐기 때문에 자기가 몇 살인지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치매 환자들이 흔히 쓰는 속임수를 택하여 출생연도로 대답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치매 환자는 순진한 방문자를 한 시간 동안 속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때때로 문제를 만든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헌신적으로 수발하는 사람 집에 얄미운 친척들이 방문해서는 할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말짱한데 수발이 어려울 게 뭐 있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수발비용을 대지 않는 역겨운 핑계로 이용한다. 전쟁 때와 그 밖의 옛날 일들을 상세히 기억할 정도로 할아버지의 기억력이 대단한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할아버지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맞는 말이다. 그것이 치매 환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할아버지는 멀리서 친척들이 방문했던 일을 까맣게 잊는다.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단기기억력은 감퇴하고 장기기억력만 남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발이 필요한 것이다.---pp.158-161

뭔가 의심스럽다. 이 책은 이상하다. 내 이름이 암호처럼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어떤 이야기들은 작가가 전혀 알 수 없는 내 개인적인 경험을 상기시킨다. 왜 하필 내가 이 책을 손에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서점 주인이 나를 이상하게 살폈다. 뭔가 숨기는 것처럼 웃지 않았던가? 내가 이 책을 읽도록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은 누구일까? 도대체 왜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왜 하필 내가 정신병치료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할까? 나를 미치게 하려는 음모일까? 어떻게든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걸까? 어쨌든 나는 지금 이 책을 계속 읽고 있지 않은가! 책을 읽다 보면 곧 비밀이 밝혀질까? 정신병치료의 안내를 읽고 있는 바로 지금, 누군가 들어와서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당장 병원에 가자고 하지는 않을까?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다. 갑자기 왜 배가 아프지? 그러고 보니 이 방도 뭔가 이상하다. 창문 손잡이가 나를 가리키고 있다. 왜? 벽에 걸린 그림도 약간 기울어졌다. 내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걸까?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이 어떤 규칙에 따라 배열되었다. 또한 방금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의 반응도 어쩐지 예전과 달랐다. 그가 한 말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목소리가 약간 떨렸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책장을 넘겨야 한다. 왜 하필이면 지금 넘겨야 할까?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까? 지금 책을 덮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뭔가 끔찍한 일이 생길 거라는 느낌이 든다. 하긴 벌써 오래전부터 그런 기분이 들었다. …… 그럼 드디어 때가 된 걸까? 이제 곧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모든 것이 불안하다. 뭔가 비현실적이다. 예전과 다르다. 도대체 어떤 음모가 숨어 있는 걸까? 나를 해코지하기 위해 누군가 뒤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자는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이 모든 음모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서점 주인이 신경이 쓰인다. 그는 정말 이상하게 웃었다. 틀림없이 그 뒤에 음모를 꾸미는 자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래 확실하다. 그가 모든 것을 조종했다! 그가 모든 것을 조종하여 내가 이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그는 나를 미치게 할 작정이다. 나를 좌절시키고 끝장낼 작정이다. 여기 방에도 어떤 알 수 없는 기술로 몇몇 이상한 장치를 해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레이저광선을 쏘고 있는지도 모른다.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음모에 그렇게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레이저광선 테러를 쉽게 당하지 않을 테다! 나를 미치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서점 주인이 내 주변을 온통 미치게 만들었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광기 어린 과대망상의 전개 과정을 경험했으니 말이다.---pp.193-195

한번은 어떤 여성이 병원에 실려왔는데 한눈으로 봐도 조울증 환자라는 게 바로 보였다. 굉장히 쾌활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신경질적이었다. 신경질적인 조울증은 사실 다소 부담스러운 변종이다. 어쨌든 집에서 자주 난동을 부렸기 때문에 환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입원을 시켰다. 우리는 그녀를 특별히 좋아했다. 그녀는 환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독특한 질문을 했고, 곤란하게도 종종 우리 중 한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적나라한 지적을 했으며 온갖 장난으로 병원 전체를 마구 뒤섞어놓았다. 당연히 우리는 그녀를 잘 치료했고 상태도 호전되었다. 그때 환자는 병원 주변을 산책하고 싶다고 청했고 별다른 일이 생기겠나 싶어 산책을 허락했다. 그러나 환자가 말하는 '병원 주변'이라는 것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넓은 지역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한 시간쯤 후에 근처 부대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부대 전체가 현재 1급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 '탈출한' 환자가 지금 책상 위에서 춤을 추고 있으니 빨리 사람을 좀 보내 환자를 다시 '수용소(그가 말하는 수용소란 바로 우리 병원을 뜻하는 거였다)'로 데려가 달라고 다급하게 부탁했다. 우리는 상냥하고 부드럽기로 유명한 간호학과 실습생들을 부대로 보내 조용하고 편안하게 환자를 다시 데려오게 했다. 생각할수록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환자는 소풍을 맘껏 즐겼고 부대 전체는 바짝 긴장하여 있는 대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완전 무장한 군인 500명이 춤추는 여자 환자 한 명 앞에서 쩔쩔매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라! 그 후로 나는 독일 군대의 방어력을 더는 믿지 않는다.---pp.231-232

책의 끄트머리까지 따라온 당신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나는 정상인가, 아니면 비정상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정신과의사인 내가 확실히 도움이 되겠다. 때때로 나는 진료할 때 이렇게 못을 박아둔다. "누가 정상인지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납니다!" 당연히 듣는 사람이 유머를 좀 아는 사람일 때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을 정상으로 여기지 않음'을 유쾌하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당신은 비정상에 속한다. 이 책을 샀다는 사실이 벌써 소수집단에 속한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 게다가 책을 끝까지 다 읽는다는 것은 정말 정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책을 읽었다면 당신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만약 정상인이 문제라는 이 책의 명제에 당신도 동의한다면, 바로 당신 때문에 인류는 희망이 있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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