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사라 선교사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남북 전쟁(1950-53)을 치른 후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인 1955년에 광주 선교부에 도착하여 유화례 선교사를 멘토로 삼아 선교 사역에 동참하였고, 선교부의 승인과 지원으로 대학생 선교를 시작하였다. 배 선교사는 신학적으로 제1세대 선교사들과 같이 개혁주의 신앙을 지켰고, 한국 선교 정책인 네비우스 방법을 확대 개편하여 실천하였다. 그러나 선교지 분할 정책 중 복음 전파에 대해서는 후술할 다른 견해를 표출하였다.
배 선교사를 연구함으로 제1세대의 선교 정신이 제2세대 선교사에게 어떻게 전승되어 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본서의 주제는 배사라 선교사가 네비우스의 핵심 삼자(三自) 선교 정책(경제적 자립, 행정적 자치, 복음 전파의 자전)을 철저히 실천하고 그 정책을 확대하여 국제적인 평신도 전문인 선교 운동으로 발전시켰음을 증명함에 있다.
--- 『머리말』 중에서
이러한 선교의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은 귀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이들 제1세대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를 배우고 그 시대의 특별한 환경과 사상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연구하려는 배사라 선교사의 삶과 사역은 바로 위에 거론한 제1세대 선교사들 사역의 연장선이다. 배 선교사는 제2세대 남장로교 선교사로 제1세대 선교사인 배유지(Eugene Bell, 1868-1925), 오기원(Dr. Clement. C. Owen, 1867-1909), 서서평(Elisabeth J. Shepping, 1880-1934), 유화례(Florence E. Root, 1893-1995)와 타마자(John Van Neste Talmage, 1884-1964)의 영적 후배이다.
배 선교사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남북 전쟁(1950-53)을 치른 후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인 1955년에 광주선교부에 도착하여 유화례 선교사를 멘토로 하여 선교 사역에 동참하였고, 선교부의 승인과 지원으로 대학생 선교를 시작하였다. 배 선교사는 신학적으로 제1세대 선교사들과 같이 개혁주의 신앙을 지켰고, 한국 선교 정책인 네비우스 방법을 확대 개편하여 실천하였다. 그러나 선교지 분할 정책 중 복음 전파에 대해서는 후술할 다른 견해를 표출하였다.
배 선교사를 연구함으로 제1세대의 선교 정신이 제2세대 선교사에게 어떻게 전승되어 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서의 정당성을 지적하려 한다.
--- pp.13-14
배사라의 가정환경을 보면, 그녀는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미국 남부 전형적인 부농(富農)의 외동딸로 자라며 삶의 위계질서를 배운 것으로 판명된다. 배사라는 할머니의 영적 권위에 전 가족이 순종하는 것을 보았고, 농장에서 일하는 자들이 부친의 지도를 받아 행동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교회와 사회에서 주어지는 직책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를 보았다.
할머니의 교훈이다.
“깊이 생각하라. 그리고 쓸모 있는 여성이 돼라.”
아버지의 교훈이다.
“인내하고, 공손하며, 순종하라.”
이 두 교훈은 질서를 습득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 p.24
배사라의 한국 사역 중 가장 의미가 있고 보람된 일은 그녀의 대학생 사역과 이 사역에 대한 철저한 헌신일 것이다. 이 사역을 하면서 배사라는 젊고 유능하며 한국 청년들의 애환(哀歡)을 누구보다도 깊게 꿰뚫어 보는 한 한국인 목회자, 즉 이창우를 발굴하고, 그를 훌륭한 리더로 세우며, 결국 그에게 리더십을 조기(早期)에 넘김으로 후에 경이(驚異)로운 세계선교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배사라는 이 한국인 리더와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핵심인 경제적 자립(自立), 행정적인 자치(自治), 복음 전파의 자전(自傳)을 함께 나누며 처음부터 미국 선교사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사역 방향을 가지는 UBF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 p.54
배사라는 한국 선교 사역 중 이일성경학교(현 한일장신대학교) 교장 등 여러 책임 있는 임무를 수행함으로 당시 여성이 리더로 활보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동하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남녀평등’의 사상이 UBF 사역에 깊이 스며들어 남녀 모두 동일한 인격으로 양을 치고, 소감을 나누며, 제자훈련에 동참하였다. 선교지에서도 일반교회의 남성 목사가 해야 하는 일들을 여성 선교사도 할 수 있도록 했고, 심지어 초기 선교 사역에서 여성 선교사들이 지부장 같은 직책을 가지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 p.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