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에서, 넓은 교정에서, 나 말고 모든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데, 아무도 날 돌아보지 않게 된다면 분명 숨도 쉴 수 없을 거다.
난간을 꽉 쥔 내 상태를 모르는 채, 그녀는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내일 인생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졸업한 후에 만날지 어떨지도 모르는 사람들 기분을 살펴야 한다니, 그게 뭐람.”
흔들림 없는 그녀의 말이 극단적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대쪽 같은 성격의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말이라 나는 살짝 웃었다.
“그래도 앞으로 1년은 분명히 같이 지낼 텐데?”
먼저 모퉁이를 돌던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무척 신비로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학교에만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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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 타인에게 이용만 당하다 재미없는 일밖에 못 해.”
“…딱히 불만은 없어. 부탁받은 일을 거절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면서 살겠다는 거야?”
“너처럼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은 별로 없을걸….”
“그렇다면 나한테나 실컷 이용당하지그래.”
그때까지 밤하늘을 보고 있던 그녀가 내게 눈길을 돌린다.
“그 대신 날 보고 있어. 봐줘. 변해줘.”
휘리리리릭, 고음이 끈적끈적한 공기를 갈랐고, 그녀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때 내겐 그녀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꽃은 시야 가장자리에 들어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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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 끝나고 같이 찾아보자. 폐회식이 끝나면 교실에서 기다릴게.”
기다릴게, 다음 약속이 확실하게 정해졌다. 이 말을 들으니 어깨에서 쭉, 힘이 빠졌다. 이제 그녀와 만나지 못하게 될 위기는 피했다. 안심이 돼서 그런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나만 필사적이라는 걸 그녀도 알지 않았을까, 몰래 그녀의 옆얼굴을 살폈다.
살짝 고개를 숙인 그녀의 입가, 거기에는 어렴풋이나마 기쁜 웃음이 서려 있었다.
예상치 못한 표정에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녀의 입가에 감돌던 것과 똑같은 웃음이 내 입가에도 슬금슬금 어리는 걸 참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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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쫓아낼 만큼 강렬한 빛이라 눈 안에 살짝 통증이 생긴다. 빛에 삼켜지는 것 같다. 아무리 화소 수가 늘어난다 해도 조그만 휴대전화 화면으로 이 눈부심을 재현할 수는 없겠지.
인간의 기억은 모호하다. 그래서 모두 기록을 남기려 한다.
나도 그녀와 함께 지켜본 불꽃의 색과 형태를 언젠가는 잊어버리겠지. 그렇다고 휴대전화로 기록해둔들 화면 속 불꽃은 현실보다 훨씬 색도, 빛도 저하된다.
그렇다면 지금.
언젠가 잊어버린다 해도 이만큼 크고 선명한 불꽃을 놓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휴대전화를 내렸다.
불꽃놀이의 빛이 파닥파닥 지상에 떨어지며 사라져가자 하늘에는 화약 냄새만 흐릿하게 남았다. 저 냄새는 분명 사진으로 남겨둘 수 없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있을 곳 없는 사람 같은 얼굴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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