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1945)는 귀족가문 태생으로 재능 있는 다작의 작가였다. 그는 많은 이야기와 소설, 그리고 40편이 넘는 희곡을 썼다. 볼가 강 중류에 있는 사마라에서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3세가 될 때까지 가끔 오는 가정교사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정식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그는 러시아 문학의 고전들을 열심히 탐독했다. 1901년 사마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페테르부르크에 온 톨스토이는 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에 입학한다. 당시 그는 상징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상징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러시아 민화와 슬라브 신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시 <푸른 강 너머>(1911)와 그의 가장 뛰어난 초기 작품인 <투레노보에서의 일주일>(1910),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새롭게 쓴 연작 이야기인 ≪까치 이야기≫(1912∼1918), ≪절름발이 왕자≫(1912), ≪괴짜들≫(1911) 등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종군기자로 활동했으며 10월혁명 후 파리와 베를린으로 자발적인 망명을 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서정적이고 회상적인 소설 ≪니키타의 어린 시절≫(1922)을 썼으며, 삼부작 ≪고난으로의 길≫(1920~1941)의 제1권인 소설 ≪자매들≫(1921) 집필에 착수했다. 1922년 깊어만 가는 조국에 대한 향수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꾸었고 마침내 1923년 가족과 함께 조국으로 되돌아온다.
귀족 태생으로 인한 쉽지 않았던 귀환 초기 의혹의 기간을 잘 견뎌낸 후 톨스토이는 주도적인 소비에트 작가로 급속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환상과학 소설 ≪아엘리타≫(1923)와 ≪기계의 봉기≫(1924), ≪엔지니어 가린의 죽음의 광선≫(1925∼1926) 등이 출판되었다. 1920년대 후반기 동안 톨스토이는 유진 오닐과 카렐 차페크의 작품들을 번안한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와 수많은 희곡을 썼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27년 ≪고난으로의 길≫의 제2권에 대한 작업과 함께 그는 자기 조국의 가까운 과거에 대한 묘사로 되돌아간다. 1929년 톨스토이는 ≪표트르 1세≫(1929∼1945)의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1696년부터 1725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했고 근대 러시아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차르의 삶을 묘사하는 웅장한 스케일의 소설이다. 1682년부터 1704년까지의 시기를 포함하는, 이 작품의 첫 1, 2권이 1934년까지 쓰였다. 하지만 제3권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했다.
1939년 톨스토이는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41년 소설 ≪표트르 1세≫로, 그 다음 해에는 ≪고난으로의 길≫로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그는 독일 침략자를 비난하고 러시아 민중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글들을 주로 썼다.
1945년 톨스토이는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죽음은 1936년 고리키의 죽음에 뒤이은 소비에트 문학 및 문화의 두 번째로 큰 손실이라고 간주되었다.
서구에서 톨스토이에 대한 평판은 자신의 볼셰비즘에 대한 옹호로 인해 커다란 손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망명자’로 제목을 바꾼 ≪검은 황금≫(1931)이나 내전에서의 스탈린의 역할에 대한 파렴치한 성자전(聖者傳)적인 이야기인 ≪빵≫(1937) 등과 같은 조잡한 선동적 작품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해도, 이 비범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뛰어난 다른 작품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영어를 비롯한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아직도 러시아 문학의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초, 중, 고를 다녔다. 불문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때 불문학을 동경했지만, 러시아 문학으로 방향을 선회,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했다. 이 궤도 선회에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때까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 유희에 빠져, 유행처럼 번지는 학문 사조들을 무작정 좇아 헤매던 시절이었다. 그 후 ≪죄와 벌≫의 감동이 살아 있는,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났다. 이데올로기 장벽 때문에 책 속에서만 접했던 러시아 문학의 본고장에 대한 감상적 기분도 잠시, 외국문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언어 장벽, 사유와 지식의 빈곤은 이국의 고독과 맞물려 자신의 한계만을 절감하도록 만들었다. 집, 학교,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동선(動線) 속에서 유일한 사치는 헌 책방 순례였다. 귀한 책들을 싼값에 마음껏 살 수 있었던 그때는 지금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겨우내 얼어붙은 도시 위로 낮게 드리워진 어두운 회색 풍광과 잠들지 못하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순간 증발해 버릴 것만 같은 백야의 희뿌연 안개 빛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해 <20세기 초 러시아 유토피아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여러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했고, ‘러시아 망명문학 연구’라는 주제로 모교에서 박사후 과정(학술진흥재단 선정)을 마쳤다. 지금은 청주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에 둥지를 틀고 학생들에게 러시아어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 문학과 영화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과 책을 썼으며, 전공 관련 교재도 몇 권 출간했다. 톨스토이, 체호프, 마야콥스키 등의 작품들과 러시아 문화 및 영화 관련 글도 번역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학문적 결실의 저서는 아직 없다. 현재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인 주제는 두 가지이다. ‘타자’의 문제가 그중 하나이다. 이 주제는 대학시절부터 줄곧 관심 대상이었다. 바흐친, 사르트르, 부버의 타자성 혹은 상호주관성 개념에 대한 비교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 문학에 나타난 광기의 시학’이라는 주제이다. 이 연구는 19, 20세기 러시아 문학에 나타난 광기의 제 양상을 추적하는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유토피아문학론을 쓰는 것이다. 그 책에서 러시아 유토피아(문학)의 이론적 역사적 고찰로부터 주요 작품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주요 항목을 모두 아우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