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의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기에 작가 실뱅 테송과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작가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대학교수가 재즈 뮤지션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나도 예술가나 작가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그들은 규범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도 그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탈선할 수 있지만, 레드카드를 무릅쓰지는 못한다. --- p.8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문학 수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저자와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뱅의 취향이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양립되기 힘든 성격을 띠고 있어서 나는 내심 놀랐다. 그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가스통 르뷔파Gaston Rebuffat의 산 이야기들, 그리고 추문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고 작품 하나를 남겼지만 결국 잊혀버린 세기말의 작가 장 로랭Jean Lorrain에 대해 이야기했다. A6 고속도로를 벗어나 제네바 방향인 A40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에는 사랑했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p.32
다니엘은 암벽 등반의 기초에 관해 즉석에서 침착하게 강의를 해주었다. 처음으로 그의 눈에 의혹의 빛이 스쳤다. 그는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현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와 실뱅이 성급하게 제쳐버린, 완전 초심자라는 나의 현실 말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동안 산에서 어려운 일들을 숱하게 겪었고, 나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순간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렴풋이 상징하고 있었다. --- p.43
페르세 봉을 앞에 두고 다니엘이 마지막으로 안전 확보에 착수했다. 내면의 목소리는 계속 나에게 말을 건넸다. ‘봐, 저들이 너를 선두에서 출발하게 하잖아. 길도 쉬워 보여. 저들이 친절한 거지. 맨 먼저 꼭대기에 도착해 정상을 정복했다는 환상적인 기분을 느껴봐. 그리고 네가 성취하고 있는 육체적 업적보다 이들의 우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 이 친구들은 자기들 수준에 맞는 다른 등반대에 속해 더 어려운 코스로 등반할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고 네 곁에 있잖아. 너를 위해 여기에 있는 두 사람을 봐.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둬.’ --- p.59
평범함, 평범하게 사는 것은 등반의 목적과는 상반된다. 단 하루의 경험만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우연히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 상황을 마음대로 처리할 권리를 갖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샤모니로 출발하기 전, 나는 야닉 하넬Yannick Haenel이 나에게 준 『창백한 여우들』에서 화자 장 데시엘이 실존 속에서 중대한 도약을 하기로 마음먹는 대목을 적어두었다. 그런데 나는 실존 속에서 나의 도약을 실현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전도된 중력 속에서 거친 무한을 향해 몸을 맡기는, 위쪽으로 이루어지는 도약 말이다. --- p.68
결국 우리는 모퉁이에 보이는 가장 화려한 건물로 이동했고, 거기서 장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그는 낮에 그 지역에서 최근에 출간된 책 『불멸의 산책』의 사인회를 마치고 온 길이었다. 얼굴이 핼쑥했다. 그는 우리와 합류해 우리의 이야기에 호의적으로 귀 기울였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도 낮 동안 사인을 해준 수십 명의 독자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 실뱅이 농담을 하자 그의 눈길에 평온함과 즐거움이 스쳐 지나갔다. 겉으로 드러나든 잘 감춰져 있든, 나는 그처럼 불안을 잘 이해하는 작가를 알지 못한다. --- p.74
창문 너머의 어둠이 어느 때보다 짙었다. 어둠은 마치 보아뱀처럼 등반에 대한 나의 꿈을 꽉 조이고 삼켜버리려는 것 같았다.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이 모험 속에서, 내가 집착하던 고통들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었다.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참한 몇 가지 비밀들’만큼이나 나를 높이 고양해주는 꿈들에 간절히 매달리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 p.77
지난 몇 달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의 나날이었고, 나는 고통에 맞서 그리고 그 고통을 끝내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싶은 유혹에 맞서 허둥거리는 ‘보잘것없는 남자’였다.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어떤 날 밤에는 되유라바르의 내 아파트 안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부모님은 구속복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몇 달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었고, 불행으로 몸이 굽고 외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두 팔로 앞을 막은 내 옆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까지 나를 못 알아보기 전에 내가 먼저 반응해야 했다. --- p.89
장 크리스토프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지만 발밑이 덜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도 컨디션이 완전히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덜 외롭게 느껴졌다. 이 원정에서 평소의 축제 같은 리듬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다니엘과 실뱅뿐이었다. 산에서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우정, 더 나아가 흘러넘치는 기쁨까지도 나누게 되는 것이다. --- p.120
다니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장 크리스토프의 말을 진지하게 시인했다. 고산등반 안내인들에게 산악사고는 단지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비극이었다. 실뱅도 침묵을 지켰다. 그는 열일곱 살 때 등반을 하다가 가장 친한 친구를 눈앞에서 잃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장 크리스토프로 말하면, 의사로서 아프리카에서 인도주의적 임무들을 많이 수행했으니, 수많은 비극들을 목도하지 않았겠는가? --- p.122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펴낸 책들을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의 장소들Les Lieux de m?moire』은 내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 참고도서였다. 나의 동시대인 한 명이 그 책들을 모두 집필했다고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다. 거기에 담긴 명석한 분석이 그 책들을 시간을 초월한 것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피에르 노라를 만나면산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그는 내가 내 등반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욕망으로 표시해놓은 그 원시적인 기념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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