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마가복음 2장에는 복음을 향한 '믿음의 모험'과 '의식전환'의 절대성이 정의되었으며, 또한 복음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기존 세대의 종교적 반응과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신세대적 영적 갈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영적 충돌은 인류의 역사 속에 야기된 종교적, 정치적 충돌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마가복음 1장은 문둥병자의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그의 불순종으로 오히려 복음사역은 훼방을 받게 되었다. 그와 맞물려서 마가복음 2장은 중풍병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풍병자와 문둥병자가 시사하는 영적 의미를 대조할 필요가 있다.
--- 「믿음의 발견과 모험」 중에서
‘생베’란 아직 옷감으로 가공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또한 낡은 옷은 옷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 서로 합하려 한다면 먼저 그 조직의 밀도가 같아야 균형을 이루게 된다. 설혹 같은 재질이라도 서로가 합하기 위해서는 조건적 조화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님은 이미 낡은 옷에다 새 천을 깁는 시대는 지났음을 시사하신 것이다. 낡은 옷은 새 옷이 없을 때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율법의 개혁은 의미없다는 뜻이다.
또한 '새 술'과 '새 부대'는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의 독특한 다른 속성 때문에 낡은 사고와 새로운 사고가 함께 공존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베옷과 포도주 비유로서 율법과 복음의 함께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영적 원리를 언급하신 것이다.
--- 「의식의 혁명(Paradigm Shift)」 중에서
이미 우리가 4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곳을 건너오기 전 예수님과 제자들은 생명을 위협할만한 거대한 풍랑을 만났다. 예수께서는 바람과 풍랑을 꾸짖으시며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혼 구원을 향한 복음의 계획에 대한 사탄의 영적 대응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위협적인가를 알 수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 온 지역은 거라사인의 땅이다. 그런데 동일한 지역을 마태는 ‘가다라 지방’이라고 기록하였다(마8:28). 어떤 사람들은 마가와 마태 중 하나가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동시대를 살던 예수 그리스도의 산 증인들이 서로 착오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후일 우리에게 이 사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고를 요구하는 묵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군대귀신 들린 사람이 회복된 후 복음을 전도한 ‘데카폴리'(20)라는 지역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데카폴리’란 10개를 의미하는 ‘데카’와 성읍을 의미하는 ‘폴리’의 합성어로 본래 수리아의 영토였지만, 헬라를 일으킨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동방의 헬라화 정책의 일환으로 건설한 도시국가로서, 오늘날 유럽연합(EU)과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데카폴리에 소속된 도시국가는 스키도폴리스, 펠라, 디온, 거라사, 필라델피아, 가다라, 라바나, 가나다, 히포스 그리고 다메섹으로 이 지역은 위도상으로 정치와 군사, 경제 그리고 문화적 교류의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어, 고대 팔레스틴 통치자들이 서로 노리던 전략적 요지였다.
--- 「신세대 프로젝트」 중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마가복음 5장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던 네 부류의 사람들의 구원을 향한 믿음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로서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 속에서 메시아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 첫번째 소개된 사람은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자이며, 두 번째는 유대인 지도자 회당장 야이로이며, 세 번째는 저주의 질병에 묶인 여인이며, 네 번째는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모두 구원의 섭리가 그리스도의 주권 안에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군대 귀신들린 자가 예수를 믿은 것은 그의 의지와 선택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열두 살 난 야이로의 딸은 죄와 무관하게 죽음을 당한 순간, 아비 야이로의 믿음의 결단으로 다시 살아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이 자기의 의지적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 「믿음의 모험과 인생공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