悟道
함박눈이 내린다 한들
이내 근본으로 돌아가
본래의 본분을 분명히 하네
잠깐 다가온 경계에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었지
남의 곡간 넘나들며
안팎에서 얻었다고 하나
어찌 말과 글이 적중(的中)하랴
본디 이치를 깨달으면
너털웃음 그뿐일세
그래서 돌장승이 말할 때
나도 그 말 하리라.
깨달았느냐, 아니냐를 묻는다면 그것은 참 진부하다.
시원하고 유쾌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좀 그럴듯하다.
완전한 깨달음에 대해서야 누구도 입을 뗄 수 없지만, 한 경계 뛰어넘은 시원함이 시에서 느껴진다.
잡스럽지 않고 담백하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스승님과 도량과 가족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개화사(開華寺)
옛날,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른 도리(道理)가 무엇이던가?
개화산 중 인적이 드문 때에도
佛, 法, 僧,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뜻을 세운 선지식(善知識)!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이어지네
사람이 사는 곳에 절(寺)이 있어
첩첩산중에도 연기가 피어오르네.
축대 위에 대웅전, 요사채가 완연하고
목탁소리, 염불소리 귓전에서 맴돌아
성불하세, 성불, 우리 모두 성불하세!
한강에 돛단배 유유자적하니
백성들 또한 태평성세로세.
불자로서 또 한 절의 신도로서, 한 스승의 제자로서 한결같이 살아오며, 가족들과, 만나는 인연들과, 함께 하는 도반들과, 하루하루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는 군더더기 없는 시인의 삶을 시를 통해 느끼면서 선 수행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느낄 수 있다.
시적 감수성이나, 섬세한 감성의 시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재가 선 수행자의 시를 직접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구절구절 스며 나오는 선의 향기를 느껴보시라.
손녀의 주장자(主杖子)
눈, 귀, 코, 입
이목구비가 또렷한
만 다섯 살 손녀를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발치(拔齒)를 하고 온 손녀에게
안쓰러운 할머니가
“많이 아팠지? 얼마나 아팠어?”하니까
이렇게 명답을 하더란다
손녀가 할머니한테 오더니
“할머니!” 하고 크게 부르더니
어린 손으로 할머니 이마를
탁, 한번 치고는 말더라는 것이었다
역시, 내 손녀가 똑똑하군!
할머니와 엄청난 선문답(禪問答)을 했군!
말로는 설명할 수도, 해서도 모르지....
옳지, 주장자는 그렇게 쓰는 거란다.
표지 그림은 동양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하반영 화백의 ‘빛의 고마움’이라는 작품이다.
시집에는 저자의 머리글이 없다.
시들에서 스승과 가족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클 것이다.
재가 수행자의 시집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