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에는 평가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나의 교직 역사는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뉜다. BC에는 고학년을 주로 맡았는데, 학생들에게 ‘스마트폰과 SNS 활동은 네 인생의 낭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온라인이 학습을 돕기보다는 음란물과 사이버 폭력의 불씨를 제공하는 악의 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AC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 유발 하라리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은 지나가겠지만 지금 내린 결정이 앞으로 오랜 시간 우리의 인생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가 나에게 교육적 결단을 내리라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보통 1학기가 100일, 2학기가 90일이다. 어떤 목표든지 100일을 매일 5분씩이라도 투자하면 학생은 교사가 안내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학생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2월 말부터 조급해진 탓에 네이버 밴드를 개설해 부모님들께 받아쓰기와 구구단 지도 방법을 안내했다. 중학년 담임을 맡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기초 학습을 현상 유지라도 해 주려면 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3월 중순이 되면서 ‘2주 후에 뵙겠습니다’란 말만 되풀이하는 교육청을 믿을 수 없었다. 학생들을 EBS 온라인 클래스에 가입시키고 접속이 불량한 과정을 1~2주 겪자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와 국내에서 운영하는 민간 사이트에 불신이 커졌다. 탐색 결과 선택한 매체는 외국 사이트인 구글 클래스룸이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안내하고 점검하고 피드백하기가 편리했다. 새로운 기능을 익힐 때마다 사소한 팁을 공유했다. 200명의 온라인 학습 꾸러미를 제작하고 일시에 배부하려면 학급 간의 교육 과정 진도를 일치시켜야 했다. 그 덕분에 동료 교사들과 소통을 활발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AC 이전에는 동료 교사들과 이렇게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 거꾸로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교육학 책을 읽으며 자주 접했던 ‘교사와 학생의 의미 있는 만남’ 이란 말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학생들에게 얼굴을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이로그 같은 건 ‘관종’이나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신념이 꺾였다. 영상 촬영과 편집이라는 수행의 길을 매일 2시간씩 겪으며 유튜브에 입문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떼밀어서 한 비자발적인 일이긴 했다. 하지만 ‘거꾸로 수업’ 등 온라인 수업 기반에 관련된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익숙해지고 발전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쏟는 에너지만큼 학생들이 배우고 익히는지는 의심스러웠다. 플래너 교육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이 AC 시대를 살아갈 어린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반을 기준으로 구글에서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의 절반 정도는 수행력이 뛰어나다. 교실에서 그 학생들의 플래너를 보면 목표 세우기, 계획 세우기, 실천하기의 사이클이 선순환되었다. 대신 나머지 학생은 교사의 안내, 동료 학생의 도움, 학부모님의 협조 중 한 가지는 필요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모두 결여된 상황에 놓인 학생은 다른 학생과 학습 격차가 계속 벌어졌다. 고육지책으로 꺼낸 방법이 아침 조회를 네이버 라이브와 줌으로 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영상으로 오늘의 수업 안내와 매일 연습이 필요한 리코더 교육, 수학 복습 등을 진행하였다. 영상으로나마 서로가 연결되어 있고, ‘내가 너의 선생님이다.’란 인식이 있으니 학생들이 과제를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노동 시간 확보가 절실한 가정과 생활 습관이 불규칙한 가정의 학생은 아침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보통 교육의 3주체를 학생, 교사, 학부모라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무게 중심이 교육이 아니라 돌봄이었다. 학부모는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노동자로 학교에 사실상 돌봄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학생을 챙기는 일과 급식은 온라인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은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교란 공간은 교육의 3주체뿐만 아니라 급식조리원, 돌봄 교사, 방역 도우미 등 돌봄의 3주체 또는 그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온라인 수업은 이렇게 해서 학교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교사가 콘텐츠만 잘 만들어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따라서 온라인 수업만으로도 가능한 교육 대신 진정한 만남과 소통, 연대가 있는 수업을 만들어가야 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목표, 결과, 평가로 이어지는 수업이 절대적인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했다. 학교는 꼭 출석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부모와 학생에게 선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또 교육청에서 규정과 원칙이라고 차단했던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현상을 목격했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톡을 학교 PC로 사용하려면 보안 문제 때문에 과학정보부장에게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있고, 그 서류가 통과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네이버 밴드와 카카오톡 등 학생이나 학부모와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하루 만에 열리는 현장을 경험했다. 그동안 준칙처럼 여겼던 것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릴 수 있다면, ‘평가 시스템’도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이 시대에 각자의 학습 속도와 과정을 조언하고 적절한 스캐폴딩(Scaffolding)을 해 줄 수 있는 교사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미래 온라인 교육 시스템에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AC 시대에 교사들이 대체되지 않으려면 많은 내용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익히도록 하는 콘텐츠 제공형 수업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사는 학생이 어디에서 머뭇거리는지 발견하고, 학생 상호 간의 피드백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교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 과정 시수에 얽매이는 학급 단위 수업 대신 모둠 단위의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급 안에서도 교차 등교를 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5~6명의 학생이 교실에 와서 교사나 반 아이들과 대화하고, 어려운 부분을 돕고, 범교과적인 프로젝트 활동을 함께할 수 있고, 그 과정이 정량적인 평가가 아니라 정성적으로 기술될 수 있도록 평가 시스템이 재설정되어야 한다.
온라인 수업은 교육 주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 주었다. 이제는 이러한 상황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고 교사와 학생 모두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로 발전해야 한다. 학부모도 학교에만 교육을 맡길 게 아니라 동반자적인 책임 의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온라인 수업은 기능이나 콘텐츠 자체를 넘어 연대와 협동이라는 교육적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교육 주체는 이제 AC 시대에 맞춰 교사 공동체, 학생과의 의미 있는 만남, 학부모와의 협업을 최대 과제로 올려야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