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제기
포은은 성리학만 동방의 조종(祖宗)이 아니라 문장 또한 높은 품격을 지닌 당시(唐詩)라 하겠다.
위의 인용문은 17세기의 저명한 비평가인 홍만종洪萬宗이 고려말의 문인이자 학자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학문과 문학에 대해 평가한 대표적인 평이다. 이 짧은 문장은 포은의 위상을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학문적으로 포은은 한국 성리학사에서 고려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일 뿐만 아니라, 특히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으로 이어지는 소위 ‘영남학파’의 조종이 된다.
위 인용문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뒷 구절의 문학적인 측면을 설명한 부분이다. 정몽주의 문학, 특히 그의 시는 높은 품격을 지닌 당시唐詩라는 것이다. 사실 포은의 시를 당시풍唐詩風으로 규정한 언급은 홍만종의 『소화시평』 외에도 여러 글에서 보인다. 가령 허균은 “정포은鄭圃隱은 이학理學과 절의가 일시의 으뜸이었을 뿐 아니라 문장도 호방하고 걸출하였다. 그가 북관北關에서 지은 시에,…중략…라고 했으니, 음절이 질탕跌宕하여 성당盛唐의 풍격이 있다. 포은의 시에…중략…라고 했으니, 호탕豪宕한 풍류가 천고에 빛을 내며 시 또한 악부樂府와 흡사하다.”라고 하였다.
물론 여기 허균의 평은 포은의 어떤 특정한 시 몇 수에 대한 평어이지만, 『성수시화』의 앞뒤 문맥을 고려해보면 포은시의 주요한 특징으로 당풍唐風을 언급하고 있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포은시의 어떠한 점이 당시풍이라는 평가를 받게 하였으며, 그리고 당시풍이라는 점은 왜 포은시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한시사에서 당시唐詩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중국문학사에서 한시가 대표성을 갖는 시대는 당나라와 송나라 때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운문보다는 산문이, 특히 소설과 비평이 성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시를 이야기할 때는 으레 당시와 송시宋詩를 거론한다. 이는 중국문학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한국문단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고려조에서는 초기에 만당晩唐의 시풍이 주를 이루다 무신란武臣亂 이후에는 당대當代 중국 문단의 영향을 받아 소동파蘇東坡·황정견黃庭堅을 모범으로 하는 송시풍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풍은 조선조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가다가 조선조 중기 이후에는 소위 ‘삼당시인三唐詩人’들이 등장하여 당시풍의 시작법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명나라의 ‘전·후칠자前·後七子’들이 주장한 소위 ‘문필진한文必秦漢, 시필성당詩必盛唐’의 이론이 성행하여 당시唐詩, 그중에서도 성당을 모범으로 하는 창작 경향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이나 한국의 한시사에서는 시대마다, 또는 시인들마다 당시와 송시를 모범으로 하는 것이 문단의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이는 포은이 활동하던 고려 후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풍과 송시풍이 공존하던 때였고, 대부분의 시인은 당풍唐風과 송풍宋風을 넘나들며 시를 지었다. 하지만 어떤 한 명의 시인을 평가할 때에는, 그 시인에게 보이는 두드러진 문학적 특징 및 의의를 두고 말할 수밖에 없다. 포은의 경우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그의 시에 보이는 당시풍적인 요소가 후대 많은 비평가들에게 주목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포은시의 가장 눈에 띄는 점 가운데 하나인 당시풍의 경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표현기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포은시의 이와 같은 경향이 동시대 다른 시인들과 어떤 영향 관계 아래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도 함께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지금까지 포은 문학, 포은시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관점에서 많이 이뤄져 왔고, 또 그러한 작업을 통해 포은시가 가진 문학적 의의 및 우수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 사실이다. 본고 역시 포은 시문학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면모를 밝히는 과정 중의 하나로 작성되었다. 이 같은 작업이 축적되었을 때, 포은은 성리학의 조종이라던가 만고의 충신이라는 측면 외에 한국한시사에서 차지하는 시인으로서의 위상 또한 온당하게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몽주 시에 나타난 당시풍 경향과 미적 특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