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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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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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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16g | 120*210*17mm
ISBN13 9791160407471
ISBN10 116040747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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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수뗑이   평점4점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  특이사항 : 출간 20211209, 판형 120x210, 쪽수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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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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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쉴 생각으로 판다네 집을 방문했던 나는 내심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갈 걸. 다 봐버린 이상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 하는 수 없지. 뭐라도 하자. “판다야, 저거….” 곰팡이를 가르키며 판다를 쳐다보는데, 그의 눈가에서는 뚝 뚝, 후드드득.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가뜩이나 처진 둥근 어깨를 더 축 늘어뜨린 채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펑펑 흐르는 눈물을 곰 발바닥 같은 두꺼운 손으로 닦아 티셔츠에 비비적대며 넓은 등을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만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울기’ 콘테스트가 열린다면 1등은 바로 이 순간의 판다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금 나, 용기가 막 솟아나는 것 같다. 곰팡이는 이제 무섭지 않다.
--- p.35

노루와 토끼가 뛰어다닐 것 같은 등짝을 가진 너는 대체로 조용했지만 늘 웃는 얼굴에 나긋나긋한 인상이었다. 출근하면 늘 아침 인사를 빼먹지 않고 팀원들 모두에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던 그 모습. 언제부터였을까, 인사의 순서가 내게 돌아올 때를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 네가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 의식적으로 살짝 웃어 보였다. 지금 나 예쁘게 웃었을까? 약간 긴장한 채로. 일을 하느라 모니터를 쳐다보다 눈이 뽑힐 것처럼 피곤할 땐 너의 지리산 같은 등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고 크게 놀라는 갈대 같은 심성의 나와는 다르게, 깊고 느린 물줄기가 흐르는 강처럼 온순하고 느린 표정과 말투를 가진 너. 그 잔잔함이 신기하고 부러워 관찰하곤 했다. 모든 평화가 다 저 등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 p.66~67

비교적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다녔던 나. 그 화목한 청춘 솔로 집단에서 어느 날 기혼의 신호탄을 발사하는 첫 타자가 나왔다. 재직 3개월 차에 직원들 이름도 헷갈려 섞어 부르며 뻘쭘하게 과자와 청첩장을 돌리는 스물아홉의 나였다. 동료 직원들부터 팀장님과 대표님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결혼하면 좋아요?” 그래서 난 이렇게 답했다. “똑같아서 아직 모르겠어요.” 진짜다. 분명 결혼은 인생의 큰 분기점일 텐데, 나는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저녁 때까지 같은 사무실에서 복닥거린 4년, 같은 건물 위아래 층에서 각각 자취하던 1년, 함께 전세금을 모아 동거를 하며 각자의 회사를 출퇴근하던 2년. 긴 시간을 함께 팀처럼 움직였지만 돈 관리도, 아침을 챙겨먹는 일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각자 해와서일까?
--- p.139

어제의 일상 그대로 오늘이었다. 그 잔잔함이 좋았냐고 물으면, 사실 좀 아쉬운 건 있었다. 남들은 신혼이면 깨가 쏟아져서 그걸로 참기름을 만들 정도인데, 우린 8년을 볶은 덕에 더 이상 남은 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우린 덕에 갓 우린 차에서 우러나는 쓴맛은 없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발을 디디던 순간, 이제 다시 현실에 발바닥을 딱 붙이고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서글퍼졌지만 평일 한낮의 햇빛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둘인 건 조금 좋았다. 집이든 밖이든 늘 내가 남긴 밥이나 음료를 께름칙해 하지 않고 깨끗이 먹어주는 그의 모습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날 ‘아내’라고 소개할 때 살짝 어색해하는 목소리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너와 하나인 우리가 되어가는 게 좋다.
--- p.140

밥 먹다가 싸우고, 텔레비전 보다가 싸우고, 같이 있는데 왜 계속 저기압이냐며 싸우고. 기념일인데 나를 더 챙겨주지 않는다고 싸우고. 눈 마주치면 으르렁대는 야생 늑대마냥 새벽까지 하울링 하듯 달려들어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우린 기회가 될 때마다 서로에게 힘껏 부딪히며 각자가 가진 울퉁불퉁한 모서리를 바삐 갈아냈다. 가끔씩 자기 전에 생각해본다. 정말 결혼해서 좋은지, 결혼이란 게 할 만한 것인지, 한 것에 후회는 없는지, 다시 돌아가도 또 이 사람을 택할 것인지. 알고 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에 답은 끝이 없고, ‘하고 싶다’ 와 ‘하고 있다’는 다르다는 걸.
--- p.141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지만, 나는 관에 들어 갈 때 혼자이고 싶지 않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진심이다. 하루가 다르게 손가락에 살이 찐 판다는 더는 커플링을 낄 수 없지만 난 혼자서 매일 반지를 낀다. 안 끼면 괜히 허전하고 그래서. 어느 날 잠자리에 들 때, 내가 커플링을 빼며 말했다. “‘한날한시에 같이 잠들다’라는 말, 진짜 로맨틱하지 않아? 그럼 저승도 손잡고 간다는 건데, 내가 길치니까 오빠가 가이드 해주면 되겠다.” 판다는 말했다. “저승에서도 길은 내가 찾는 거니?”
--- p.26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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