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민주주의는 같이 간다.’ 바람직한 민주 제도가 작동하는 국가엔 좋은 도서관이 많이 있다. 좋은 도서관이 많은 국가는 좋은 민주 제도를 실현하는 나라다. 좋은 도서관은 좋은 개인을 만들고, 좋은 개인이 모여 좋은 국민이 만들어진다. 종합해보면 좋은 도서관은 좋은 민주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반복하여 강조한다. ‘도서관과 민주주의는 같이 간다.’ 이제 우리 정치도 좋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통해 더 뛰어난 민주 제도를 만들어가는 장이 되어야 한다. 도서관을 모르면 올바른 정치인이 될 수 없는 정치 환경을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다.
--- p.21
공공재의 경제학적 정의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 재화’를 의미한다. 이는 두 가지 특성이 동시에 만족되는 재화를 의미한다. 즉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특성과 ‘사용하는 사람이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특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재화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은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하는 사람이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으므로,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입장료를 받거나, 대학 도서관처럼 대학 관련자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는 도서관이면 공공재가 아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도서관이라고 해도 특정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혼잡한 공공도서관은, 도서관을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에 불편을 느끼므로 공공재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공공도서관=공공재’라는 기계적인 접근은 옳지 않다. 공공도서관도 얼마든지 공공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면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서로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만 공공재로 정의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공공재’라는 수학 공식과 같은 생각은 틀린 것이다. 또 이것이 공공재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 p.36~37
영리, 이윤은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는 결과물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많은 상품들이 거래된다. 공급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상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좋은 상품을 찾는다. 그래서 서로 이득이라고 생각하면,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공급자는 상품 원가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서 좋고, 소비자는 본인이 느끼는 만족 수준보다 낮은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서로 행복하다. 그래서 시장 거래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로 발생하는 게 이윤이다. 이윤은 소비자를 착취해서가 아니고, 소비자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이윤을 많이 낸 기업은 그만큼 많은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자발적으로 샀다는 말이고, 그만큼 그들이 더 행복해졌다. 그래서 이윤이 높을수록, 그 기업은 더 많은 소비자를 행복하게 했으므로, 사회에 공헌한 수준이 높아진다. 이러한 생각은 시장 경제를 새롭게 해석한 시각이었고, 애덤 스미스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립하였다. 쉽게 표현하면, ‘사익=공익’이라는 의미이며, 아마 인류의 관념 역사에서 혁명적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립도서관도 하나의 상품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립도서관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심판대에 서 있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그 사립도서관은 망할 수밖에 없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립도서관을 찾는다면 도서관은 돈도 벌고 흥행할 수 있다. 사립도서관은 소비자들을 강제적으로 도서관에 끌고 온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결과로 돈을 번다. 이때 사립도서관의 입장료는 그 사립도서관의 서비스 가격이다. 소비자는 사립도서관 서비스의 가격을 본 후 판단한다. 본인이 느끼는 행복감이 가격보다 높으면 찾아올 것이고, 행복감이 낮으면 그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 이는 소비자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소비자마다 서로 다른 판단을 하므로 각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p.49-51
고가의 전자 제품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소비자들은 어떤 물건을 사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가까운 지인에게도 물어보고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리뷰도 살펴보고, 최근에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의 줄임말)’ 후기도 즐겨보게 된다. 제품 설명서도 한 번 더 살펴보게 되고 혹시나 가짜 광고는 아닌지 의심도 해본다. 그렇게 최종적인 선택을 내린다.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다. 혹여 잘못된 제품을 샀을 때 그 피해를 모두 본인이 짊어져야 하며, 고가의 물건일수록 그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선거 때 유권자는 여러 정치 후보자들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이란 측면에서 경제 상품과 같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상품을 선택할 때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고심한 후에 선택하는데, 정치 상품을 선택할 때는 그만큼 고심하지 않는다. 그냥 특정 정당을 보고 뽑기도 하고, 학연 및 지연을 보고 뽑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명의 정치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비교하지도 않는다. 즉흥적인 감상으로 뽑는 경우도 많다. 공익 광고에서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광고해도,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나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잘못된 정치인이 뽑혀도, 그에 따른 경제적 손해를 본인만이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에서 당선된 정치인이 정책을 입안하면, 그 정책 방향에 따라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매한 정치인은 국가를 망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잘못된 정책을 편다고 해도, 그 손해는 국민 모두가 부담하게 되지 절대 유권자 혼자서 부담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권자가 선거 때마다 정치 후보자에 관심이 없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다. 즉, 정치 시장은 유권자의 무관심이 합리적인 선택이므로, 본질적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그래서 경제 시장보다 정치 시장이 상대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p.70~71
정치의 본질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 민주 정치의 발전과 함께 도서관에도 변화가일어나고 있다. 단지 책을 읽는 공간이라는 단순한 개념에서 미술관, 박물관, 음악관, 영화관의 기능이 추가된 도서관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한 도서관 안에서 빵, 피자, 파스타를 즐기는 레스토랑을 종종 볼 수 있다. 화장실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도서관도 있다. 정적인 것이 당연했던 도서관이 타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된 것이다. 도서관의 이 같은 변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프랑스의 퐁비두 센터는 ‘도서관 + 미술관 + 영화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덜란드 중앙도서관과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서관은 ‘도서관 + 미술관 + 음악관’의 기능을 갖추고 있고, 영국 도서관은 ‘도서관 + 박물관 + 기록원’을 겸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변하면 민주 제도하에서 도서관도 변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서관’이라는 용어의 변화다. 도서관의 기능이 가장 중요한 곳은 대학이다. 과거의 대학 도서관은 책을 빌려보고 학문을 연마하는 장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 도서관이 정보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에서는 이미 도서관을 ‘학술정보원’이라고 부른다. 성균관대에서는 ‘학술정보관’이라고 한다. 도서관 관련 학문을 지칭하는 학과 이름도 진화했다. ‘도서관학과’에서 출발했지만 ‘문헌정보학과’로 바뀌었고, 이제는 ‘정보과학과’, ‘데이터 사이언스학과’, ‘빅데이터 학과’로 바뀌는 추세다. 세상은 변하고, 인간도 변하고 있다.
여기에 맞추어 도서관 또한 이름뿐 아니라 형태와 기능이 바뀌고 있다. 먼 훗날 도서관이라는 개념은 고어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옛것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하나씩 상상해본다. ‘미술관 + 음악관 + 영화관 + 박물관 + 공연장 + 카페 + 주민 센터’를 겸하고 있을 이 같은 장소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게 될지 궁금하다.
--- p.86-88
생각만 바꾸면 된다. 책 읽는 독서실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지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철학이 중요하다. 물론 지역민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창작의 고통만큼 어려울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수요자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욕구를 파악해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기업가 정신’으로 승부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지역민들이 알지 못하는 잠재적 욕구를 정확하게 끌어내 도서관 운영에 반영하는 일종의 정치적 창조 행위를 해야 한다. 이를 ‘정치인 혁신 정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번 장에서 소개하는 열 곳의 도서관은 모두 공공도서관이며, 최근에 개관한 도서관들이다. 전국의 많은 공공도서관 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공도서관은 모두 최근에 개관했다. 이는 필자가 주장하는 도서관 경쟁이 오래된 것이 아닌 최근의 현상이라는 점을 확인해준다. 막연하게 도서관 경쟁을 통해 우리의 정치 구조가 더 나아질 거라는 이론적 믿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구체적 결과로 나타난 도서관의 실태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정치권의 도서관 경쟁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p.96-97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진아 기념 도서관’은 2005년에 개관했다. 이진아 씨는 지난 2003년 미국 보스턴에서 어학 연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진아 씨 가족은 평소 책을 좋아했던 딸을 기리기 위해 50억 원을 기부했는데, 기부 조건은 딱 하나, 딸의 이름을 붙여 도서관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자식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 슬픔은 한평생 치유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이다. 하지만 이진아 씨의 부모는 아름다운 기부와 공익에 대한 기여로 그 슬픔을 따뜻한 공동체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멋진 도서관에 딸의 이름을 붙여 남김으로써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지역 사회에 영원히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남김과 동시에 공익을 위한 기부 행위로 공공도서관 건립만 한 것이 있을까. 이진아 기념 도서관은 우리나라 기부 문화의 좋은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부모가 이룬 부를 자식에게 남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부모가 먼저 가는 게 순리이며, 이때 자식에겐 상속으로 남겨진다. 그러나 거꾸로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 중 하나가 도서관 속에 자식의 이름을 새기고, 공공에 기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서관 내부는 그래서 숙연하다. 이진아를 기념하기 위한 부조가 도서관 1층 로비에 있다. 기부자인 이진아 씨의 아버지는 이 도서관 명예 관장으로 위촉되었다. 딸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도서관에서 매일 딸을 마주한다. 도서관 곳곳에 딸과의 추억, 딸에 대한 사랑, 그리고 딸을 그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묻어 있다. 이 도서관은 개인의 슬픔이 사회를 위한 나눔으로 승화된 그 결정체다. 이 깊은 숭고함이 우리 기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한민국 도서관 역사에서도 절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위대한 족적이다.
--- p.142-145
인류 역사에서 문화와 문명은 늘 서로 주고 받으면서 전파됐다. 특정 시점에 특정 문화를 이식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이식 받은 국가나 민족 구성원이 열등한 것은 결코 아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들의 문화 교류의 흐름을 보면,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때 고대의 백제 문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인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문화와 문명은 지역에서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지금은 한국의 아이돌 음악과 드라마가 일본인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의 문명 수준의 차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근대적 형태의 공공도서관 체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식되었던 간에, 우리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면 우리의 도서관 문화 수준이 훨씬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에 문화와 문명은 서로 교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끄러운 역사는 없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숨기려고 하고, 더 발전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것이다. 실패한 과거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국가자산이다. 비록 조선이 근대화를 스스로 이루지 못했지만, 이를 교훈삼아 미래의 발전을 위한 역사적 자산으로 활용하면 된다.
--- p.166-167
정치 시장에서 공공도서관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면, 우리의 정치 시장은 발전할 수 있다. 우선 공공도서관은 공익과 일치한다. 공공도서관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해도 아무런 불편을 못 느끼는 ‘공공재’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공평하게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보편적 복지’다. 정치권에선 특정 계층에 대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의 효과성에 대해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관점에서 논쟁한다. 일반적으로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는 선별적 복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정치적 반대가 없다. 공공도서관은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공공도서관은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문화재이면서 복지재다. 공공도서관에서의 지식 활동이 한 개인의 인생을 바꾸고, 인류의 문명을 바꿀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빌 게이츠다. 그가 공공도서관을 이렇게 평가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 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