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지각변동적인 변화가 이스터 섬의 문화에 이렇게 처참한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아주 중대하고 근원적인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스터 문화의 몰락을 고려한다면, 이 섬사람들이 자신들의 한정된 자원에 대해 취한 행동과 우리가 사는 이 연약한 자연환경, 즉 지구를 무모하게 남용하는 우리의 태도를 나란히 놓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스터 섬을 지금 우리가 발 디딘 세계의 축소판으로 본다면 인류 미래와의 연관성 속에서 경종을 울리는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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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 사람들이 펼친 석기시대 문화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도 또 가장 경이로운 업적은 표준화된 수백 개의 거대한 석상(모아이moai)을 금속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작업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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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큰 석상의 별명은 ‘엘 지강테El Gigante’인데 이 거대한 석상의 길이는 20m, 무게는 270톤에 육박한다. 이 석상을 옮기는 작업은 이스터 섬 사람들의 놀랄 만큼 천재적인 솜씨마저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다(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도 그 높이가 22.8m로 이 석상보다 별로 더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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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관점으로는 단순한 기술과 많은 시간, 넘치는 육체의 힘, 그리고 정교하고 기발한 솜씨로 이루어낼 수 있는 성과를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고고학계에 피상적인 지식에 매달려 어이없는 주장을 일삼은 분파들이 득세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가장 명백한 예가 스위스의 작가 에리히 폰 데니켄 등이 제안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선사시대에는 산발적으로 외계의 우주 비행사가 찾아왔기 때문에 고고학 관련 기록들 중에서 오늘날 높은 평가를 받거나 수수께끼처럼 다가오는 것들은 죄다 이 외계 비행사가 이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상정된 고대의 ‘미스터리’를 연극 속의 인물처럼 뜻밖에 나타난 외계인이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해준다는 안이하고 단순한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안도감을 주고 우주에 어떤 자비로운 힘이 있어서 인간의 발전과정을 지켜보다가 이따금씩 나타나 자극을 주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말이다. 이런 견해들은 우리 선조들이 이룩한 진정한 성취를 무시하는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라는 결과로 치닫게 한다. 즉 전체 인류라는 종의 독창성과 능력을 무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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