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국의 냉전전략 아래서 ‘전후’를 향수해왔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냉전시대가 남긴 최후의 대립이 해소될 조짐을 보이는 오늘날, 이러한 자기충족적인 ‘전후’는 더 이상 성립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는 단지 ‘북한의 비핵화’를 염두에 둔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정치의 조건이,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조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면 좋을까. 닳고 닳은 ‘전후’라는 필터를 통해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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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의 잔해가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황야의 광경은 사람들에게 일본이라는 제국의 붕괴를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그런데 그 공간을 폭격기의 조종석과 동일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소이탄에 의한 화재의 흔적이 도시공간에 균일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사시설을 꼭 집어 겨냥한 정밀폭격과 다르게, 소이탄에 의한 폭격은 인구가 밀집한 구역과 화재가 번지기 쉬운 장소를 대상으로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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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잿더미의 광경은 꽤 오랫동안 ‘일본인’이 입은 전쟁의 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기억되어왔다. 매년 3월에 열리는 도쿄대공습 추도식전(追悼式典)이나 8월 ‘종전의 날’이 다가올 때마다 미디어에는 ‘잿더미’라는 말이나 패전 당시에 촬영된 불탄 들판의 사진이 줄곧 등장한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직후에도 신문에 “재해지를 보고 공습 때가 떠올랐다”라는 투서가 잇따랐고, 당시 수상이었던 간 나오토(菅直人)도 지진 재해 발생으로부터 이틀 뒤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 일본인”이 직면한 것은 “전후 65년이 경과한 가운데, 어떤 의미에선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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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잿더미’는 피해자성을, ‘암시장’은 혼돈 가운데 존재하는 에너지를 각각 함의하면서도, 동시에 ‘전후 일본’의 기원을 각인하는 기호로 인식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패전 직후 사회를 논할 때에는 ‘잿더미?암시장 시대’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이 둘은 줄곧 한 쌍으로 묶여 이야기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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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 설정을 통해 이 책은 패전 직후 일본의 공간을 해석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단일민족주의적, 혹은 일국주의적인 ‘잿더미’의 논리를 국민적 경관으로서 포착하고, 이 국민적 경관에 의해 암시장이 포섭되는 역학을 영화나 문학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 암시장의 표상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여 ‘전후’라는 일국사적(一國史的)인 역사인식을 지탱하는 공간 이미지를 해체함으로써, ‘전후 일본’을 대체할 ‘냉전기 일본’이라는 틀을 한반도 및 중국대륙의 구식민지와의 연관 속에서 제시할 것이다.
--- p.32
이처럼 마지막 시퀀스에 나타난 영상과 서사의 부조화는, [셋방살이의 기록]의 ‘나가야’가 패전 직후 사회의 처참한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성립되는 모형 정원의 유토피아라는 점과 연관된다.
--- p.58
지금까지의 많은 비평가가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는 것도, 작품 속에 그것을 시사하는 공간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으로 된 막의 안쪽으로 슬며시 침투하여 들어오는 현실이 작품 내에 비춰지고 있기에 [셋방살이의 기록]은 단순한 인정극으로 수렴될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 p.60
[들개]라는 영화는 암시장의 몽타주를 통해 그러한 부흥기 도시공간의 실제 모습을 부조한다. 중앙권력이 그 힘의 연장을 목적으로 세운 계획을 아무리 선전하더라도, 현실의 부흥은 그 계획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그러한 모습을 [들개]라는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 p.95
암시장이란 그처럼 제국의 잔해와 냉전을 배경으로 한 점령상황의 절충이 명백히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암시장이 지근거리에 있던 시대에 이 공간을 무대화한 작품 중에서, 최우선적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이시카와 준의 「잿더미의 예수(?跡のイエス)」이다.
--- p.133
이 책에서는 ??반슈평야??의 이동 표상 속에 ‘새로운 일본’이라는 서사에 수렴되지 않는 사건이나 현상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배제되어버리는 과정에 주목했다. 히로코의 이동 그 자체가 각인된 텍스트상에서, 그녀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대상으로서 표출되는, 후쿠시마 농민들의 암거래, 히로시마의 귀신과 같은 소년, 전쟁 ‘미망인’, 그리고 조선인들 등, 그 개개의 존재가 그녀의 이동에 대한 해석을 와해시키는 요소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 p.242
「8·15 이후」가 단행본에 수록된 것은 1950년 5월로, 바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이었다. 당시 민단과 조련 양쪽의 재일조선인 사회 지도부에는 강고한 ‘조국지향형 내셔널리즘’이 침투해 있었다. 「8·15 이후」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독립운동을 이끄는 입장이면서도 그 활동의 동기가 자신의 과거 ‘부채’의 경감에 있었다. 하지만 이 1950년이라는 시점에서 그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즉 1950년의 개작에서 작품 속 영용의 언동에는 ‘조국지향형 내셔널리즘’에 따라 민족주의 사상의 ‘순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영용의 사상적 순화의 조작은 원작 텍스트가 영용에 맡겼던 유형적 역할, 즉 과거의 ‘부채’와 싸우는 조선인 지식인상을 배제하고, 그를 1950년 독립운동을 선도하는 데 적합한 인물 유형으로 바꿔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송용득과 같은 운동 주체로의 동화이기도 한 셈이다.
--- p.259
이 작품에 나오는 ‘이향’이라는 말에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라는 두 개의 공간을 이동할 때 발생하는 긴장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서두 부분에서는 ‘이향’에서 배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들이 어떤 특수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암시장이다.
--- p.261
조국이 한국전쟁을 향해 가는 상황 속에서, ‘이향’으로부터의 귀향도 이룰 수 없고 그렇다고 ‘이향’으로의 동화도 불가능한 긴장상태가 주인공 이영용의 인물 유형 변화와 함께 고조된다. 그와 같은 아이덴티티의 동요 상태에서 헤게모니에 대한 차이의 공간?‘이향’에 대한 ‘향’의 공간이 생산될 때, 저항으로서 ‘이향’을 되돌아보는 모멘트가 발생한다.
--- p.271
이러한 이향 속에서 무시되어버린, 살아가기 위한 호소를 어떻게 다시금 제시할 것인가. 조선인에게 부과된 이미지의 멍에를 벗겨내기 위해 자기의 운동 단위인 ‘민족’ 내부의 차이를 제시하고, 그 차이야말로 본래 운동의 근원임을 보여주는 것. 그러한 저항과 호소의 형상으로서 이 네 작품 속의 ‘아주머니들’과 ‘탁주’라는 모티프가 존재한다. ‘투쟁’의 본질은 이러한 모티프를 매개로 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 p.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