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에 둘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왜 책상이 없는지’보다, ‘왜 화장대가 책상보다 우위를 차지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연출의 세계에서 인물의 성격으로든 서사의 개연성으로든 있어야 할 게 사라졌으니 이유를 찾아야 했다. 답은 아주 명료하다. 화장대의 기능을 떠올려 보면, 여자라면 당연히 꾸미길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나 혹은 그래야 한다는 통념이 서사적 논리를 뛰어넘어 TV 안에 살아남은 것이다. 인물의 배경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성의 특성’일 것이라고 뭉뚱그린 게으른 판단으로 말이다. 책상의 부재는 단순히 가구 한 점 모자란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습, 사유, 성장, 발전, 상상 등 이토록 많은 단어가 책상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위의 장면들은 여성 인물을 향한 구태의연한 해석이 그들의 방에 교묘하게 침투한 증거이자 결과다.
--- 「하이킥 시리즈에는 책상이 없다」 중에서
물론 이영지는 그런 질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 어디서 배운 거야? 그런 힙합?” “난 힙합
이 아니야?” “너무 어렵다. 다시 배워야겠다.”라며 능청스럽게 응수했다. 더 많은 여성이 TV 앞에 등장해야 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영지가 맨스플레인과 타인의 평가를 대하는 유연한 태도가 파급력을 타고 또 다른 동성 친구들에게, 혹은 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가닿기 때문이다. 물론 응수를 잘 못하더라도 그것이 피평가자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공격을 받아칠 전략이 다양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 「이영지가 이영지했다」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외모 평가 개그에 대한 관중의 인식이 바뀌고, 다양한 체형과 외모의 여성 롤모델이 떠오른 덕이다. 종아리 둘레부터 쇄골의 모양까지 나노 단위로 미적 기준이 엄격했던 잣대는 무용해졌다. 박나래가 등장한 나이키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광고에 많은 이가 환호했던 이유도 그와 같다. 한쪽 입꼬리가 멋지게 올라간 당당한 모습, 다부진 체형과 단단한 눈빛. 광고가 한창 뜨거운 반응을 얻은 2019년 1월, 박나래가 해당 광고 영상을 SNS에 올렸을 때 개그맨 양세형이 댓글을 달았다. “ㅋㅋㅋ확 튀는데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세형 씨, 그런 거요. 그런 거 이제 안 웃기다고요.
--- 「‘쩌리’라는 특권」 중에서
〈미쓰백〉은 이런 식으로 멤버들의 근황만큼이나 그에 대한 주변 반응을 대등하게 강조해서 보여준다. 반응이라는 것도 의외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사자를 대신한 분노와 그의 평온을 기도하는 조언으로 채워나갔다. 스폰서 이야기가 나올 때엔 래퍼 나다가 “미친놈”이라는 욕을 내뱉었고, 가영의 길고 검은 원피스를 보고 송은이는 잘못한 사람을 대신해 사과했다. “오늘 첫 만남이고 화사하게 보이고 싶을 거 아니야. 처음엔 ‘취향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고 나니까 너무 미안해져. 내가 인생의 선배고 어른으로서, 어른의 자격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젊은 시절이 너에게 잊고 싶은 시간이 됐다는 게 너무 미안해.”
--- 「상처를 연출하는 방법」 중에서
생애 크고 작은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아이는 죽음마저 비껴가질 못했는데, 남아 있는 남자들은 그걸 자신의 성장으로 발판 삼아 소회를 나눈다. 자살이었지만 아들의 절연과 남편의 폭력으로 사실상 타살에 가까웠던 이명주의 죽음 또한 남편 박수창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인생 길어. 코앞만 보지 말고 10년, 20년을 내다봐. 대학? 내가 보기에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SKY 캐슬〉은 사회적 희생자로 여전히 여성을 지목했고,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은 철없는 중년 남성을 성숙하게 만드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던 가족, 행복, 소중함 같은 단어들은 여성 피해자들의 슬픔의 크기와 견줄 수 없어 비통하기만 하다. 〈SKY 캐슬〉이 전무후무한 여성들을 만들어 낸 건 분명하지만,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아 외롭기만 했던 죽음들을 과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 「주체적이라는 거짓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