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은 자기한테 무슨 일이든 벌어지면 내가 에릭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빌의 금전적 유산을 얼마간 받을 수 있도록 에릭이 처리해 주리라는 말인지, 아니면 에릭이 나를 다른 뱀파이어들에게서 보호해 준다는 말인지, 혹은 내가 에릭의 것이 된다는 말인지…… 음, 내가 빌과 가졌던 것과 같은 관계를 에릭과 가져야 한다는 말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프루트케이크처럼 이리저리 건네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빌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에릭이 이미 내게 오는 바람에, 나는 빌의 마지막 충고를 따를지 말지 결정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 p.40
좋아, 세계의 안위가 내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고맙군요, 에릭. 나한테는 더 큰 책임감과 압력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걸 알아둬. 만약 그들이 빌을 데리고 있다면, 그리고 빌이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빌을 돌려받을 거야. 그리고 너희 둘은 다시 함께 지낼 수 있겠지. 만약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엄청난 〈만약〉.
「당신 질문에 대답하자면, 나는 당신 친구야. 그리고 그건 나 자신의 생명이나 내 구역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당신 친구 노릇을 할 수 있는 한 계속 그럴 거야.」
흠, 솔직히 말하시는군. 나는 에릭의 정직함을 높이 평가했다.
「당신한테 편리한 한 내 친구 노릇을 하겠다는 거로군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것은 불공정하고 부정확한 말이었다. --- p.64
「이곳 이름이 뭐에요?」
내가 속삭였다.
「이곳을 소유하고 있는 뱀파이어는 여기를 조지핀스라고 불러요. 하지만 늑대 인간들은 이곳을 〈죽은 자 클럽〉이라고 부르죠.」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게 대답했다.
나는 웃어 볼까 생각했지만, 바로 그때 안쪽 문이 열렸다.
현관 문지기는 고블린이었다.
나는 전에 한 번도 고블린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를 보자 내 눈 안쪽에 초자연 사전이 인쇄되어 있는 것처럼 〈고블린〉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번뜩였다. 그는 키가 아주 작았고 까다로워 보였다. 얼굴은 우툴두툴하고 손은 넓적했고, 눈에는 불길함과 적의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고객들 따위는 절대로 필요하지 않다는 듯이 우리를 노려보았다.
귀신 들린 것 같은 인도, 사라지는 차량, 문간의 고블린이 만들어 내는 누적 효과를 겪고도 누군가 보통 사람이 조지핀스에 들어온다면…… 흠, 그냥 죽여 달라고 부탁하려고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 p.115
알시드와 데비가 또 시작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서로를 끌어당기는 모종의 인력이 그들을 계속 서로에게 돌려보내고 있었다. 아마 알시드에게서 떨어져 나오면 데비도 좋은 사람일 것이다.
[……]
그리고 나도 이것을 명심해야 했다.
내 꼴을 보라. 엉망이 되고, 피 빨리고, 말뚝 박히고, 몸이 상했다. 낯선 도시의 차가운 아파트에 나를 배반한 뱀파이어와 함께 누워 있다.
커다란 결단을 하고 그 결단을 실행할 때가 바로 눈앞에 와 있었다.
나는 빌을 밀어내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 pp.285-286
「나의 수키가 시체를 숨겼다고요?」
「자네 그 소유대명사에 너무 자신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용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노스먼?」
「나는 70년대에 지방 전문대에서 〈제2외국어로서의 영어〉를 들었지.」
「그녀는 내 거예요.」
빌이 말했다. 나는 내 손이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손이 움직였다. 나는 양손을 다 들고 누구도 잘못 볼 수 없는 한 손가락짜리 손짓을 해 보였다.
에릭은 웃었고, 빌은 충격을 받은 사람의 훈계조로 말했다.
「수키!」
「수키는 우리한테 자기는 자기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 p.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