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공기 중의 냄새를 몇 번 맡았다.
“너 방귀 뀌었니?”
“아니야. 나 그 죽은 사람들이 싫어. 그 사람들 상처가 있어.”
소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남동생을 끌며 체육관으로 향했다.
남자 다섯 명이 각각 천장에서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나체로 소녀 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이 뒤집어지지?”
“응.”
소녀가 대답하며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남동생을 팔로 안았다.
“이제 축구할 수 있어?”
“아니. 축구 못 해. 어른을 찾아야 돼.” ---p.14
“개? 뭘 찾는 건가?”
“손 열 개를 찾습니다. 다른 것도 없는 게 있고요.”
“제길.”
“정말 욕이 절로 나오죠.”
“체육관에 들어가보았나?”
“아닙니다. 문간에 서있었어요. 그러니까, 두 번 갔지요. 말씀드린 것처럼, 첫 번에는 속이 불편해졌습니다. 우주복을 입고들 돌아다니더군요. SF영화처럼 보이지요. 저는 거의 숨도 못 쉬었지만 범죄 현장 오염에 대해 연설을 한바탕 들었죠. 누가 그랬을지 맞혀보세요. 이건 히스테리예요.”
“그런 일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과학수사 책임자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엘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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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바보야. 그따위 헛소리를 믿는 총경을 국가가 먹여 살리다니, 생각만 해도 한심하네. 부끄러운 줄 알고 양동이나 가지고 오게.”
“양동이는 뭐 하러요?”
“자네의 신참이 아직도 인간적인 반응을 통제하는 기술을 못 익혔으니까.”
경고는 너무 늦었다. 몇 초 후 파울리네 베르는 몸을 굽히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바닥에 토하고 말았다. 아르네 페더센은 더러워진 자신의 신발을 바라보더니 손수건을 꺼냈다. 흰 천연실크로 된 손수건이었고 아직 보송보송했다. 그가 간신히 한 발을 들었을 때 백작 부인이 손수건을 낚아채더니 파울리네 베르에게 건넸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더니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p.47
“아까부터 안 듣고 계셨죠? 맞죠?”
사실이 그랬다. 콘라드 시몬센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신체의 미학과 교향악적 안무로부터는 떠난 지 오래였다. 머릿속으로 그는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다섯 명을 전기톱으로 자르고는 나체로,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 매달게 했을까 상상하려 애쓰고 있었다. 증오, 광기, 무감각, 이상주의? 이런 가능성 중 어떤 것도 잘 들어맞지 않았다. 기껏해야 여기저기에 부분적으로만 들어맞을 뿐. ---p.54
노래는 사라졌고 간호사도 사라진다. 어둡고 조용하며 무섭다. 그녀는 머리를 개에게 묻는다. 발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너무나 작고 발소리는 너무나 무겁다. 공황장애에는 정신과 치료나 심리 치료가 도움이 된다.
공포는 요법을 보면 겁이 나서 달아난다. 개는 베른하르 삼촌을 보면 겁이 나서 달아난다.
축축한 호흡이 그녀의 목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진다. 그의 포마드 냄새가 난다.
그가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를 여는 그의 손가락이 느껴진다.
헬레 스미트 외르겐센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p.87
“처형과 살인의 차이는?”
이 문장은 시몬센 자신에게 던진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무도 대답을 시도하지 않았다.
“처형은 합법적이지만 살인은 불법이지. 국가는 국민을 죽일 권리가 있어. 국민은 서로에 대해 그런 권리가 없고. 행동 자체는 결국 동일하고, 죽는 사람 본인에게는 자신이 형리에게 목이 잘렸건 이웃 사람에게 목이 졸렸건 별 차이가 없긴 하지만 법적,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천지차이지. 형리는 사회 질서를 유지시키지만, 옆집에 사는 살인자는 그 질서를 무너뜨려. 그러니 키워드는 질서야.” ---p.180
아르네 페더센 역시 이 나라 법무부 장관에게 수식어를 붙여줄 사명을 느꼈다.
“문장 하나하나가 따뜻하고 보들보들하지만, 그래도 결국 하려는 말이 뭔지는 분명하지. ‘민주주의라는 건물을 국민의 취향에 맞추어 꾸민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반인의 분노를 통제하기 위한 엄격한 법률의 나사’, ‘경찰이 다시 보통 사람들의 것이 되도록 평소의 명령체계로 복구’. 얼어 죽을.”
그는 비꼬며 말했다.
“‘가루비누처럼 주문할 수 있는 아이들. 우리는 그것을 보았고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정말 개돼지들에게 말하는 법을 아는 군. 그 뒤에 있었던 다섯 건의 살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말이야. 입 좀 닥치지.” ---p.417
‘당신은 수치를 겪지 않아. 그들이 수치를 겪어야지. 당신은 숨을 필요 없어. 그들이 숨어야지. 두려워하지 마. 그들이 두려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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