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출입구 앞에는 좁은 복도가 있어, 오른쪽으로 가다 왼편으로 꺾어지자마자 막혔어요. 출입구 바로 옆 맞은편에도 오르내린 흔적과 출입구가 있는데, 축축하고 시원한 동굴로 이어졌어요. 동굴 저쪽 뻥 뚫린 아치에서 돌을 쌓아 만든 어두운 공간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그 너머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희미하게 보였어요. 리요네트는 나를 데리고 폭포수 뒤를 지나 정원으로 들어서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눈이 아플 정도였어요. 온갖 꽃이 활짝 펴서 화려한 색상을 뽐내고, 나무와 잎사귀가 무성하고, 그 사이로 나비 떼가 날아다녔어요. 인공 절벽이 높이 치솟다 편편하게 변한 꼭대기에도 나무와 잎사귀가 무성하고, 양쪽에서 자리한 나무 너머로 유리 지붕이 어렴풋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이 머나멀게 보였어요. 나지막한 초목 사이로 까만 벽이 우뚝 섰는데, 너무 높아서 그 너머는 안 보이고, 덩굴이 가득한 사이로 뻥 뚫린 구멍이 여럿인데, 우리가 조금 전에 나온 출입구랑 비슷하게 보였어요. --- p.24~25
사내가 말하는데, 깜짝 놀란 어투였어요. 하지만 수술대에 똑바로 일어나 앉도록 거들어주었어요. 나는 눈을 문질러서 눈곱을 털어내고 내 손에 놓인 그림을 내려다보았어요, 내 머리칼을 계속 쓰다듬는 사내 손을 느끼면서. 리요네트가 생각났어요. 멀찌감치 바라보던 여자애들도 생각났죠. 하지만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섬뜩하긴 해도 놀라진 않았어요. 사내는 뒤에 있고, 공중에는 오드콜로뉴 향수 냄새가 강렬했어요. 정말 고급 같았지요. 앞에는 문신 도구가 쭉 늘어서고, 색이 다양한 잉크는 이동식 세움대에 가지런했어요. “오늘 다 그리는 건 아니야.” “왜 우리한테 문신을 새기나요?” “정원엔 나비가 있어야 하니까.” “우리가 여기를 벗어날 순 있나요?” 사내가 웃었어요, 편하면서도 호탕하게. 웃는 걸 좋아하는데 웃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라, 웃을 기회가 생기면 정말 좋아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깨닫는 게 있는데, 이건 내가 그 사람한테서 느낀 제일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에요. 현실 세계보다 많은 기쁨을 찾아내길 바라는 사내. --- p.31~32
나는 문신 작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여자애들과 떨어져서 지냈어요. 리요네트만 예외로, 매일 낮에 찾아와서 얘기도 하고 생살이 드러난 등에 연고도 발라주고. 자기 등에 새긴 문신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었어요.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우아한 동작처럼, 몸에 찰싹 달라붙었거든요. 세세한 문양은 정말 놀라웠어요. 저렇게 복잡한 문양에 화려한 색을 다시 입히려면 또 얼마나 많은 고통에 시달려야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물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멋진 문신은 몇 년이 지나면 색이 바래서 덧입혀야 하는데, 정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낸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 p.45~46
“나는 이나라로 사는 게 좋아요.”
“하지만 그건 네가 아니야.”
빅터가 다정하게 말하자, 여자애 눈에서 분노가 번쩍이더니,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한 표정만큼 빠르게 사라지는데, 모두 똑같은 표정이다.
“장미는 이름이 달라도 똑같은 장미 아닌가요?”
“그건 단순한 말에 불과해, 정체성이 아니라. 네 정체성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고,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그 삶이야.”
“왜요? 내가 살아온 삶은 정원사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진짜 중요한 것도 아닌데요? 중요한 건 정원사랑 정원이 아닌가요? 정원사가 붙잡은 다양한 나비가 아닌가요?”
“정원사가 살아서 재판정에 나온다면, 우리는 믿을 만한 증인을 배심원 앞에 세워야 해.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는 여자애라면 거기에 맞지 않겠지.”
“그냥 이름일 뿐이에요.”
“네 이름이라면 다르겠지.” --- p.56
그리곤 등 뒤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있게 다른 거울을 들어주었어요. 등 여기저기로 잉크를 먹인 주변에 생살이 빨갛게 드러나며 부어올랐는데, 딱지가 떨어지면 다르겠지만 당장은 까맣게 보였어요. 드레스가 갈라진 양쪽 옆구리에서 지문이 보였지만, 문신 문양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었어요. 문양이 정말 추하고 끔찍했어요. 그리고 정말 아름다웠어요. 날개 윗부분은 리요네트 머리나 눈동자와 똑같은 황갈색인데, 까만색과 하얀색과 짙은 청동색을 점점이 흩뿌렸어요. 날개 아랫부분은 담홍색과 보라색 색조가 다양한데, 마찬가지로 까만색과 하얀색을 점점이 흩뿌리고요. 하나하나가 정말 정교했어요. 색조가 조금씩 다른 게 날개 무늬를 하나씩 그대로 살려낸 것 같았어요. 색상이 화려하게 스며들어, 등 전체를 가득 채웠어요, 어깨 위쪽 끝부터 엉덩이 굴곡이 나타나는 바로 아랫부분까지. 날개는 기다랗고 좁아, 끝부분이 옆구리로 살짝 휘고요. 예술성은 조금도 부정할 수 없었어요. 정원사가 어떤 사람이든, 재능 하나는 대단했죠. 등에 새긴 문신이 정말 싫었지만, 정말 아름답기도 했어요. --- p.58~59
우리 셋은 매트리스에 몸을 구부리고 함께 드러누워서 전등이 꺼지기만 기다리는데, 리요네트가 덜덜 떠는 게 느껴졌어요. 발작하는 건 아니지만, 속살이 덜덜 떨리면서 온몸이 함께 흔들리는 식이었어요.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 리요네트 손을 잡고 손가락을 마주 끼며 물었어요.
“왜 그래?”
황금빛 눈동자에 반짝이는 눈물을 보고 나는 갑자기 짜증이 일었어요. 나는 리요네트가 우는 걸 처음 보았어요. 리요네트는 남이 우는 걸, 자신이 우는 건 더더욱, 싫어한 터라,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거든요.
“내일이 스물한 번째 생일이야.”
리요네트가 속삭이자, 블리스가 엉엉 울면서 친구를 꼭 껴안은 채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어요.
“제기랄, 리요네트, 정말 미안해!”
“유효기간이라도 있다는 거야? 스물한 살?”
리요네트가 블리스와 나를 필사적으로 껴안았어요.
“마음을…… 마음을 못 정하겠어, 맞서 싸워야 할지 말지. 어쨌든 죽을 텐데, 정원사한테 어떤 식으로든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그랬다가 그만큼 더 커다란 고통에 시달리면 어쩌지? 제기랄, 겁쟁이로 돌변한 것 같지만,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아프지나 않게 죽고 싶어!”
--- p.7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