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중독자다.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문화중독자로서 살아왔던 삶과 지금의 삶, 앞으로의 삶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중독으로 가는 길에서 만났던 암초와 갈등, 재미난 에피소드와 잊지 못할 추억이 떠오른다. 그 추억들이 하나둘씩 쌓여갈 때 자신만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문화중독자의 역사다. ---「시작하는 글」중에서
집에서 은둔하는 이상 어차피 밥값은 해야만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당연히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계약서만 없을 뿐 그들 간에도 무언의 규칙과 의무라는 것이 존재한다. 집귀신을 자처한 시점부터 부지런히 청소와 자잘한 집안일을 책임졌다. 도전에는 또 다른 책임이 따른다. ---「1장」중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책으로 푼다. 마흔 무렵부터 그런 습관이 생겼다. 날씨가 우중충하면 재미있는 에세이나 만화를 읽는다. 사람들에 치여 짜증이 솟구칠 때는 역사책이나 인물평전을 펼친다. 기력이 없고 피로가 몰려오면 문학책을 찾는다. 지하철에서는 주로 딱딱한 인문서적을 파고든다. 많이 외로울 때는 인터뷰집을 찾는다. 이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독서법이다. ---「1장」중에서
서른이 될 때까지 외우고 또 외우던 대부분 지식은 말 그대로 나쁜 공부를 통해서 억지로 머릿속에 잠시 저장해놓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일부는 분리수거를 통해서 재활용의 절차를 거치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처치하는데 더 큰 비용이 수반된다. 이게 다 나쁜 공부의 해악이다. ---「3장」중에서
소주에는 정말이지 미안한 일이지만 아직도 소주 맛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술이라면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이 있어야 한다. 와인처럼 입안을 지배하는 향기도, 양주의 독하지만, 뒷맛에서 보여주는 향취도, 막걸리의 묵직한 잔여감도, 사케의 아기자기한 목 넘김의 즐거움도, 소주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국민주고 뭐고 간에 소주가 싫다고, 웬만하면 소주를 마시지 않는 이들과 술자리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5장」중에서
그날이 오면 정치에 대한 환멸도, 자본에 대한 휘둘림도,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성공에 대한 갈망도, 소설 속의 영웅호걸처럼 중화되고 희미해지지 않을까 싶다. 젊은 시절 읽었던 『삼국지』가 야망과 승리에 대한 오마주였다면, 지천명에 이르러 읽어 보는 『삼국지』는 내려놓기와 천천히 걷기를 깨우쳐 주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12장」중에서
“혹시 포르노영화를 좋아하시나요?”라고 묻는다면 “예, 물론이죠.”라고 시원스럽게 답하는 남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 ‘당연한 걸 왜 묻지?’라고 생각하면서 대답을 흐리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얼버무리면서 자신의 노트북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는 최신판 유럽 포르노영화들을 애지중지 모셔놓은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요즘은 자주 찾지 않지만, 포르노영화를 좋아한다. 포르노영화 중에서 주로 일본영화를 좋아한다. 금발의 미녀들을 상대하는 근육질의 서양 남정네들을 보고 있으면 정서적인 무력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각처럼 탄탄한 그녀들의 유방과 장딴지가 나를 질식사시킬 것만 같은 위협감이 서양 포르노영화에 관심이 없는 이유가 되겠다. 한 가지만 더 말해볼까. 신음은 고래고래 잘 지르지만, 왠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들의 어색한 연기가 비호감의 원인이다. ---「21장」중에서
나는 그림에 미친 남자다. “누구의 작품을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지금까지 받아본 적은 없다.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선, 다섯 명을 고르라면 파울 클레, 마크 로스코, 윌리엄 헌터, 르네 마그리트, 김환기가 되겠다. 조금 더 나아가면 에드워드 호퍼, 앙리 루소, 클로드 모네, 페르난도 보테로, 뱅크시, 조앤 미첼, 로저 딘, 장 미셸 바스키아, 이중섭, 박수근, 권대하, 최예태, 이우환, 박병춘, 김창렬, 헉헉 일단 이 정도로 하자. 미술작품과 친해지는 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튼튼한 두 다리와 작품에 대한 호기심 정도면 충분하다. 튼튼한 두 다리란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시간을 쪼개서 전시회에 발품을 팔 수 있는 열정이 있느냐는 것이다. ---「22장」중에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 중독이 존재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중독은 건강한 중독, 자아를 무장해제시키는 독성을 지닌 중독이 아닌 흔들리는 자아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도우미로서의 중독을 의미한다. 많고 많은 종류의 중독 중에서 첫째라면 사람중독이 아닐까 싶다 ---「24장」중에서
나는 말러리안인가. 무조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말러의 음악에는 종교에 천착하고자 하는 바흐의 엄숙함도, 통통 튀는 음악적 아이디어의 각축장에 가까운 모차르트의 천부적 재능도, 미학주의를 추구하는 쇼팽의 감상을 초월하는 ‘무엇’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의 희로애락, 즉 하루에 수십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반복적 음향 메커니즘이 커다란 뫼비우스의 띠로 화할 때, 비로소 말러의 음악은 인간의 생의 종점에 치닫는다. 따라서 말러의 음악은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적이다 못해 인간의 치부와 희망을 거부하는 선의의 노출주의자 음악이라 말하고 싶다. ---「27장」중에서
패배의 고통과 아픔은 실제 겪어본 이들만의 성찬이다. 패배가 거듭될수록 자신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표정은 어두워진다. 시선은 늘 아래로 향하기 마련이고,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패배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패배는 그저 삶의 일상일 뿐이다. 패배를 자주, 제대로 경험해본 자만이 제대로 된 승리를 일구어낼 수 있다. 그는 승리에 도취하지도 않으며, 패배자의 굴레에서 헤매지 않는 진정한 강자다. 나는 패배자를 응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유 있는 패배자를 응원한다. 이것이 문화중독자의 응원 법칙이다. ---「30장」중에서
재미있는 중독, 신 나는 중독, 건강한 중독에 대한 글을 정리해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중독예찬론자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식용버섯과 독버섯이 존재하듯이 중독에도 약이 되는 중독이 있는가 하면, 메르스급에 속하는 중독이 존재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반타작 이상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가장 강력한 독성중독은 뭐니뭐니해도 권력중독이다. 데이비드 L. 와이너의 저서 『권력중독자』에서는 권력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권력중독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9장, 246쪽)
독이 되는 중독은 무수히 많다. 약물중독, 패스트푸드 중독, 니코틴중독, 섹스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거짓말중독 등 겉보기에는 매력이 풍기지만 반복하다 보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론은 맛은 보되 오래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파우스트처럼, 중독 또한 나약한 인간의 곁을 맴돌면서 지옥으로 향하는 동반여행을 떠나자는 유혹을 멈추지 않는다. 중독으로부터 유혹당할 것인가, 자유로워질 것인가.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독성중독은 육안으로도, 뇌안으로도, 심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론은 중독을 대면하는 이의 영안에 달려 있다. 과거에도, 오늘도, 내일도, 독성중독은 그대의 귓전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유혹의 소리가 들리는가. 그럴 때면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해줘라. ‘미안하지만 이런 중독은 사양한다.’라고 말이다. ---「39」중에서
십 대 중반 무렵이 돼서야 자신이 스스로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록음악에 미쳐 종일 음악잡지를 뒤적이는 내 모습은 여느 모범생들과는 조금 달랐다. 새벽 1시에 시작하는 월드뮤직 라디오방송을 듣겠다고 수면부족에 쫓기는 모습 또한 학생치고는 조금 이상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서식하던 자식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던 부모에게 이제야 심심한 사죄의 변을 올려 본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 중독자의 삶이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네요.’
---「마치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