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1년간의 육아휴직!
아빠 딸 사이의 어색함을 익숙함으로 바꿔가던 그 시간 -
프롤로그
1
2012년 3월 월요일 아침. 만성적인 허리 디스크 환자처럼 나는 이불 속에 누워 꼼지락거리다 이내 다시 눈을 감는다. 정신은 출근을 재촉하는데, 몸은 애써 무시하며 누워있다. 다시 알람이 울린다. 내가 먼저 씻고 나면 아내가 일어난다. 아내는 간단히 먹을 것을 준비하고 욕실로 향한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반 주먹 정도의 밥을 몇 차례 나누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다. 같은 공간이지만 마치 서로의 공간이 있는 듯 엉킴 없이 지나간다.
7시 20분. 내가 현관을 나서면 그때부터 아내는 바쁘다. 늦어도 7시 50분까지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지각을 면하기 때문이다.
누워있는 아이를 들어 화장실 변기 위에 앉히고 쉬를 시키는 동안 얼굴에 물을 묻히고 수건으로 물기를 없앤 후 톡톡 로션을 바른다. 아빠를 쏙 빼닮은 아이는 모른 척 버티기를 시작한다. 아이 옷은 어제 미리 입혀두었다. 잠옷을 입지 않은 것은 오래전이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그대로 어린이집에 옮겨 눕혀 놓기도 했다. 그런데 유치원은 그럴 수가 없다.
7시 50분. 유치원에는 어린이도 선생님도 드문드문 있다. 당직 선생님 몇 분이 일찍 오는 아이를 맞아준다. 아이는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자다가 유치원으로 옮겨져 왔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배는 고프다. 밤새 식어버린 교실의 공기는 혼자서 감당하기에 너무도 차갑다.
유치원에서 은세는 화장실 가기 바쁘다. 무슨 이유인지 5분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선생님에게 탈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화장실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걱정된 선생님은 아내에게 연락한다. 그리고 아내는 나에게 연락한다. 몇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매번 돌아오는 이야기는 심리적인 원인이란다. 아~ 답이 없다. 어쩜 답이 뻔한 것인가!
(중략)
3
내 기억 속의 아버지도 그랬다. 평일에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은 없다. 토요일도 일을 하던 시절이었기에 함께한 유일한 시간은 일요일 아침 목욕탕을 갈 때뿐이었다. 이마저도 학교에 들어간 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부터는 어렵게 되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살뜰하게 형과 나를 챙기셨다. 가사와 육아는 오로지 어머니의 몫이었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이발까지 ?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종종 바가지를 머리에 덮어놓고 커다란 다용도 가위로 싹싹 ? 해주셨다. 종종 뜨개질을 하시느라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만든 옷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에 가져다주었고, 남은 실로 우리 옷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형제와 놀아준 기억은 없다. 동네 친구들과 뛰노느라 바빴고 해가 지고 다른 아이들이 엄마의 손에 끌려 집에 간 뒤에야 나 또한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부모님에게 육아는 그저 내 새끼들이 건강하게만 자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린 나의 눈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집안 경제를 담당하고, 어머니는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다. 마치 법으로 정한 것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랬다. 가끔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결혼을 한 다음 해. 우리 가족은 형네 가족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갔다. 웬일인지 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지 않는다. 간 수치가 높아서라 하시기에, 그동안 많이 드셨으니 이제 좀 쉬셔야지 하며 속으로 좋아했다.
그리고 여름의 끝자락. 전화벨이 울린다.
“네~. 아버지. 잘 지내시죠?”
(이하 생략)
육아휴직을 하고 처음 며칠은 정말 휴가였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일어나 아내가 출근하면, 아이와 늦은 아침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느긋하게 양치를 하며 장난도 친다. 옷을 고르고 다시 바꾸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서 경비아저씨와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아저씨가 “우와~ 아빠랑 가니까 좋겠네~” 하자, 아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치원 가는 길에 그네를 탄다. 지나가던 아이 친구의 엄마가 한마디 한다. “은세야~ 아직 안 갔어?”, “네!”, “아빠랑 같이 가는구나~ 좋겠다” 한다. 이 엄마는 나중에 아내에게 카톡으로 ‘남편이 뭐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시간에 그네 태우는 아빠가 흔하진 않겠지.
정확히 1주일이 지나자, 주위의 시선이 느껴진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마주치는 경비아저씨, 그럴 때마다 눈인사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어색하다. 가끔 나도 모르게 경비실을 등지고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한다.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나 등원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데리러 간다. 그리고 종종 평일에 여행을 간다. 유치원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던 선생님이 요즘은 가끔 나에게 전화한다. 특히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에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 친구의 엄마도 묻는다. “직장이 좋은 덴가 봐요?”라고. 나는 머뭇거리다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편할 텐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혼자 집에 있던 날. 그 날 나는 정확히 다섯 번 현관문을 열었다. 그중 네 번은 택배 아저씨. 뭘 그리 많이 주문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택배사별로 다녀간 느낌이다. 그중 최고는 우체국택배. 다른 택배사와 달리 우체국에서는 서명을 받아간다. 대부분은 아내 앞으로 온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날 아저씨는 아내에게 온 택배를 주면서 “윤기혁 씨죠? 여기 서명이요” 한다.
‘헉!’
날 알아버렸다. 전에는 출발 전에 전화로 집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택배사가 많았는데, 이제 그런 전화는 없다. 그냥 집에 와서 벨을 누른다. 전부 다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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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가 입은 옷은 무엇인지? 최근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한 것은 언제인지? 같이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한 것은 언제인지? 결혼 전 함께 다녔던 커피숍을 결혼 후 가본 적이 있는지? 아내는 친구와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요즘 아내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남편이 얼마나 있을까? 술술 답하는 대신 술잔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결혼 전의 나는 이런 질문에 별 망설임 없이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없다. 청바지를 입고 갔나 정장은 아닐 테고 쩝. 머리 하러 미용실에 간다고 한 것이 언제더라. 지난봄 압구정에 있는 미용실을 예 약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얼마 전 애니메이션 『토르』를 보았지. 아이와 같이 셋이서. 그런 데 둘이서 영화를 본 것은 아이가 뱃속에 있던 5년 전이 마지막이다. 결혼 전 함께 다녔던 커피숍이나 음식점들은 지금도 그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실 그 기억들은 가물가물하 다. 그리고 아내는 친구들과 고작해야 1년에 한두 번 만날 뿐, 거의 만나지 못한다. 회사 동료들과도 신년회나 송년회, 이직이나 발령 등으로 인한 송별회를 제외하고는 회식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부분에서는 참 마음이 뜨끔하다. 나는 언제든 보고 싶은 친구들과 연락하고 종종 만나며 심지어 이전 직장 동료들과도 분기별로 연락해서 만나왔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아내의 고민은 자가용이 없는 불편함, 내 집 마련, 육아, 가사, 그리고 어쩌면 하나뿐인 어찌할 수 없는 남편인 ‘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찾아온 변화. 하지만 그 변화를 알아채고 살아가는 부부는 얼마나 될까. 옆을 돌아본다. 내 아내는 내가 아는 아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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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금요일. 휴직 중임에도 가끔 직장 동료들과 모임을 가진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먼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다. 사회라는 정글을 살아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피로감이 가득하다. 문득 사자의 육아법이 생각난다.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벼랑에서 떨어뜨려 살아남는 녀석을 키운다고 한다. 잔인하게 느껴지다가도 새끼가 정글에서 살아남기 바라는 마음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왠지 나도 아이를 그렇게 키워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부모들 역시 아이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강하게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 하여 어떤 이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위주의 교육환경에 적응하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또 어떤 부모들은 아이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기도 한다. 방식은 각각 다르지만, 그 마음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의 연속에 혼란스러워하는데 한 동료가 갑자기 “요즘 아이의 고민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 아무래도 자녀 문제로 고생 꽤나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한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아~ 은세의 고민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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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휴직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돌이켜보니 몇 번의 여행, 은세와 아내의 웃음소리 그리고 가끔 짓게 되던 눈물이 생각난다. 회사 동료가 아닌 유치원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아이 친구의 부모들과 어울리는 것이 익숙해졌고,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함께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히는 것은 생활이 되었다. 여자가 많은 곳에 남자 홀로 있는 상황은 여전히 낯설지만, 아빠라는 이름표가 어색함을 살짝 눌러준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육아법’도 생겼고 집안일을 처리하는 나름의 순서도 정리되어 한결 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반복과 틈틈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제외하곤 별다른 일이 없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아이는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있고, 아빠 역시 적응을 마치고 소위 밀당을 하며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경지에 오른다.
밤 10시. 잠자리에 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며 은세에게 공손히 잠을 권유한다.
“아빠~ 이제 10분 30분이야.”
“그래~ 이제 잘 시간이네. 이리 와서 자자.” “아니야. 30분 40분이야. 그러니 아침이야. 일어나서 놀자.”
“어? 그런데 밖이 어두워. 캄캄한데?”
“아~ 오늘 해가 안 나온데. 그래서 캄캄해.”
“왜?”
“아~ 해가 아파서 못 나온데. 아침이야. 놀자~”
“어?”
우리 딸은 아마도 아빠를 24시간 움직이는 놀이기구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욱이 자신의 미소를 코인으로 사용하는 지혜도 가졌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통찰력이다.
이즈음 초인종이 울려야 하는데, 모처럼 동료와 모임을 하는 아내는 소식이 없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아내는 거의 약속을 잡지 않았고, 특별한 경우에도 주말을 이용했다. 지금은 평일에도 종종 (아내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에겐 종종) 약속을 잡는다. 집안일을 하는 나보다 사회생활을 하는 아내의 약속이 많은 것이 당연한 데 어째 그 모습이 낯설다. 은세가 즐겁게 씻고 먹고 놀다 잠들었다면 이해심 많은 남편이 되었겠지만, 오늘은 밴댕이가 된다. 전화로 아이에게 잠을 자야 한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전화했는데 응답이 없다. 가슴 속에 뭔가가 급속히 올라온다. 어쩌면 아이가 집에 있는데 어찌 그리 늦을 수 있느냐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는 본심이 보기 좋게 실패하는 바람에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p. 150
〈육아휴직 전〉
나는 자칭 자상하고 멋진 아빠다. 바쁜 중에도 항상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 하고,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려 노력하는 남자다. 비록 아내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아이와는 항상 금요일 저녁부터 조금씩 친해진다. 주말엔 주로 놀이터에 가고 같이 목욕도 하고 외식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 한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그런데 항상 밝게 웃다가도 잘 때가 되면 아이는 엄마를 찾는다. 어려운 일이나 답답한 상황을 만나면 “엄마~~ 엄마~~”를 외친다.
〈육아휴직 후〉
유치원 준비물이 무엇인지 아이와 이야기하며 함께 챙긴다. 동화책을 읽으며 유치원 친구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역할놀이도 한다. 오늘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물으며 떨어져 지낸 시간의 간극을 채운다. 선생님 놀이를 할 때면 나는 주로 학생이 되는데, 가끔씩 선생님 역할을 하게 하는 큰 은혜를 베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제 아이는 가끔 나를 보고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넓은 아빠의 품에 안겨서 잔다. 컸다고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빠랑 함께하는 시간에 거부감이 없어진 것이다.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면 걱정이었다. 놀이도 그렇고 간식이나 끼니를 챙기는 일은 더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걱정이 없다. 가끔 엄마를 찾기도 하지만 놀이를 시작하면 금방 잊는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더 찾는다. 가끔 유치원에 가 있는 아이가 보고 싶다. 같이 놀고 싶어서.
하루는 목이랑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더니, 그런 나를 아이가 간호해준다. 손수건을 물에 적셔 이마에 올려주고, “아빠~ 힘내”라고 소곤거린다. 자신이 아플 때 아빠, 엄마가 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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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1년 전의 나와 다르게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졌다. 이런 삶의 충만함을 앞으로도 누릴 수 있을까?
이제 곧 복직이다. 아이의 적응만큼이나 아내와의 관계가 걱정된다. 또다시 가사와 육아가 아내만의 몫이 된다면 육아휴직 전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이제는 나도 하우스허즈번이 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복직 후의 모습을 그리면서 가사분담표를 적는다. 휴직 전과 후의 모습이 극명하게 다른 나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의 경계를 생각 하느라 머리와 손이 바쁘다. 놀이하기, 설거지, 화장실 청소, 재활용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세탁과 빨래 건조, 세탁소 방문, 다림질, 아이 건강검진 등은 내가 하고, 씻기기, 재우기, 장보기, 장난감과 책 정리 등은 번갈아 하기로 하며, 요일과 횟수를 정한다. 회사에서 하던 일은 두세 줄 적으면 끝났는데, 생각보다 일이 많다. 우리가 분류한 일은 육아 7가지, 식사 4가지, 청소 12가지, 빨래 9가지, 기타 5가지. 이렇게 총 37가지다.
다툼 없이 훈훈하게(?) 가사분담표를 작성한다. 신발 정리, 옷 정리는 은세의 몫으로 분류되었다. 지나던 은세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또박또박 정성스레 따라 쓴다. 녀석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을까. 모두가 함께 일구는 집이라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 우리가 한가족이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중략)
휴~ 정말 호된 신고식이다.
그런데 우리 정말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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