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 대통령의 귀향 -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
지난 2월 25일 한 남자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작은 마을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다.
■ 5년 전 약속. 한 남자의 귀향
진영단감으로 유명한 경남 김해시 진영읍. 그 중 아직도 2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다니는 오지 중의 오지 ‘봉하마을’에 조금 특별한 전입신고가 접수됐다. 2월 25일,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0-6번지’로 이사 와 31873번째 진영읍민이 된 한 남자. 바로, 16대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다. 2003년 취임 당시,‘5년 뒤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는 약속을 잊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 대통령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봉하마을
40여 가구 120여명 정도가 거주 하고 있는 봉하마을.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 남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대통령이 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대중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당선 됐을 때 대한민국이 전부 내 것이 된 것 같았고, 그의 위기에 함께 마음을 졸이며 밤잠을 설쳤다는 봉하마을 사람들. 그의 귀향 후 치루고 있는 요란함에 불평을 할만도 하건만 무사히 큰일을 마치고 돌아 온 그를 따뜻한 고향의 품으로 안아주었다.
■ 사람들은 왜 '봉하마을'주민 노무현을 만나러 갈까?
대통령의 귀향 후 두 달여 동안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자 수는 23만 명. 전국각지에서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대통령의 마을이라고 기대를 품고 왔던 사람들은 볼 것이라고는 ‘대통령’뿐인 이 마을에 실망을 하기도 한다. 운 좋게 대통령이 따라 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발의 차이로 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도 있다.
2월 25일 봉하마을의 주민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몰려드는 방문객들에게 하루 최대 11번까지 밖에 나와 손을 흔드는 前 대통령의 모습이 아닌 오리농법 교육에 참가해 새로운 농업 기술을 배우는 예비 농사꾼, 새벽이슬을 맞고 뒷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는 촌사람, 길거리 쓰레기를 줍는 동네 아저씨, 달밤에 부인과 나란히 산책을 하는 자상한 남편 노무현의 모습을 담았다. 귀향 후 좀 더 살기 좋은 고향, 넓게는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고 싶다는 시민 노무현의 포부를 들어본다.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39명의 비서관들이 청와대에 있었지만 퇴임 후에는 세 명의 비서관만이 봉하마을로 내려왔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방문객들이 몰려들면서 청와대 비서관 출신 자원봉사자들까지 봉하마을의 일원이 됐다. 2달 전까지만 해도 양복 입고 대통령을 모시던 비서관들은 노 전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통제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봉하찍사’로, 마을 사람들과 논일도 하고 밤새 회의도 하는 ‘동네 머슴’이 되었다. 등산화에 삽자루를 들고 마을을 누비고 검게 그을린 얼굴 때문에 마을 주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몰라보게 변했지만 스스로 행복하다 말하는 '봉하마을의 행복한 머슴들'. '반 주민에서 완전 주민'으로 거듭나고 있는 봉하마을의 새로운 주민들을 만나본다
마땅한 식당 하나 없던 작은 마을. 노 대통령의 귀향 이후, 부랴부랴 '5공주 식당'이 문을 열었다. 당선 당시 대통령의 고향을 보겠다고 몰려드는 외지인들에게 국밥을 말아 대접 하던 부녀회 아주머니들이 중심이 된 것이다. 농사만 짓던 촌부 다섯이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할멈, 아가씨, 공주, 예쁜이, 못난이’라는 명찰을 달고 방문객들에게 대접한다. 노 대통령 퇴임 두 달, 봉하마을에서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대통령의 귀향 후 이 마을에 찾아 온 변화는 새로 생긴 식당이나 관광버스의 행렬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고향을 잘 아는 노 전 대통령은 지대가 낮아 비가 내리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던 마을 논에 친환경 오리농법을 시작하고, 한 번 심으면 7년 후에나 결실을 볼 수 있는 감나무 대신에 장군차밭을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몇 십년간 고수해 오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밀어주니 믿고 한번 해보겠다’는 마을 주민들. 행복한 농사꾼들이 사는 봉하마을을 꿈꾸는 이들의 3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2편 바보 노무현 ,봉하에서의 두 번째 만남
-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72시간의 기록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逝去)
태어나 마지막 숨을 거둔 故 노 前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뜨거운 추모 물결과 흰 국화꽃 가득한 작은 마을로 <다큐멘터리 3일>이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1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과 행복한 꿈을 꾸던 봉하마을의 남은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귀향에서 서거까지’
2008년 2월, 퇴임 후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돌아온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전직 대통령의 귀향으로 떠들썩해진 그 작은 시골 마을의 72시간을 지난해 5월 <다큐멘터리 3일>에서 기록한 바 있다. 소탈한 시골 농부로 돌아가 살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일상을 그린 그 날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거친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끝내 흩어지고 말았다.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다시 한 번 봉하마을로 찾아가, 그곳에서 태어나고 마지막 숨을 거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짚어본다.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 뜨거운 취재 열기와 함께, 남겨진 봉하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세상을 울리다, 슬픈 진혼곡鎭魂曲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등진 그날부터, 전국은 뜨거운 추모 열기로 뒤덮였다. 봉하마을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서거 소식을 보도했으며, 인터넷 상에는 고인의 안타까운 삶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글로 넘쳐났다. 특히 가까운 분향소를 두고 먼 봉하마을까지 찾아온 조문객들은 몇 시간에 달하는 오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 봉하마을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치는 국민들의 다양한 진혼곡을 들어 본다.
▶ “슬픔을 넘어서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고요.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잠도 편히 못 잤고...일상생활도 너무 힘들었어요.”
부산에서 온 세 가족. 부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퇴근하자마자 아이 손을 잡은 채 봉하마을을 찾았다. 故 노 전 대통령의 영전 앞에 국화를 바치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만 부인. 그렇게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기까지는 무려 5시간이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겨우 몇 분간의 짧은 만남. 세 가족은 그래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빈소를 나섰다. 그들은 故 노 전 대통령을 제대로 보내드리기 위해 봉하마을에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음날 출근 걱정도 뒤로 한 채, 이 가족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곳까지 달려왔을까.
-다시 만난 봉하마을 사람들...
▶ “작년엔 참 좋았는데 올해는 그게 아닌 것 같소.
사람이 끝나버렸는데...”
봉하마을 주민들은 작년에 이어 다시 찾아온 <다큐멘터리 3일> 취재진을 어두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故 노 前대통령이 좋아하는 쇠고기국밥을 팔던 식당은 문상객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기운차게 일하던 동네 할머니들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故 노 前대통령이 시도했던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한창 일손이 바쁠 철에 분향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이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故 노 前대통령은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
▶ 노무현 前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레만인 5월 29일 새벽, 봉하마을에서 서울 경복궁으로 출발한 운구 행렬은 추모 인파 속에서 엄숙하게 영결식을 마쳤다. 봉하에서 노 前 대통령을 떠나보낸 사람들과, 식장까지 따라온 사람들은 각자 어떤 심정으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을까. 고향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 전직 대통령이자, ‘시골 농부 노무현’-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봉하마을에, 그리고 그를 애도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 있지 않을까.
정치인 시절의 '바보 노무현'에서
고향 마을을 살리는 '농부 노무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던
고인의 작지만 새로운 꿈夢...
세상은 이제 그를 떠나보냈지만,
봉하마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꿈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