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느 바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신기하게도 이미 어던 예감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건대 아버진 제게 얼마전 이렇게 말씀하겼지요. '나는 언제나 너를 좋아해 왔단다. 겉으로는 다른 아버지들이 하는 것처럼 너를 그렇게 잘 대해 주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왜내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내 자신을 위장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아버지, 이제 와서 보면 저는 저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말씀은 정말 옳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장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건 옳은 말씀입니다만, 단지 그런 이유에서 다른 아버지들은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는 순전한 독선이거나, 아니면-제 생각으로는 이쪽이 더 사실일 것 같은데-아버지와 저 사이엔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으며 아버지의 책임만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된 데에는 아버지도 어느 정도 일조를 하셨다는 것에 대한 은폐된 표현이거나 디 둘 중의 어느 한 쪽일 겁니다. 아버지께서 정말로 후자의 뜻으로 말씀하신 거라면 우린 서로 의견이 통한 겁니다.
--- p.14-16
전에 언젠가 제게 물어 보셨지요. 어째서 제가 아버지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느냐구요. 그때 저는 여느 때처럼 아버지께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아버지한테 느끼는 그 두려움 때문이었구요. 또 한편으론 그 두려움의 근거를 설명해 드리기엔 구구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말로는 어느정도 나마 알아들으실 수 있게 잘 간추려 말씀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대답을 드리고자 하는데 그것도 온전하게 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두려움과 그 여파가 아버지께로 향하는 제 마음을 가로막을 것만 같고 이야기해드릴 내용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제 기억력과 제 이성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 p.9
아버지로부터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이렇게 무산되었고 카프카는 끝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그만큼 짙었고 그의 작품 속 곳곳에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아버지'는 그가 평생을 두고 극복하고자 했던 깊은 상처인 동시에 그의 정신 세계를 끊임없이 엄습하였던 커다란 화두로서 그의 문학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그에 대해 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는 카프카 자신의 생생한 고백과 증언을 전하고 있다.
--- p.
...그건 마치 한 사람은 다섯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또 한 사람은 한 계단만 올라가면 되는데, 뒤의 사람의 경우 그 하나의 계단이-적어도 그에게는-앞 사람의 다섯 계단을 합한 것만큼이나 높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사람은 그 다섯 계단만이 아니라 백 개, 천 개의 계단이라도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선이 굵고 몹시 고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밟고 올라간 계단들은 그 어느 것도 뒤의 사람한테 그 하나의 계단이 갖는 만큼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을 겁니다...
--- p.128
...그건 마치 한 사람은 다섯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또 한 사람은 한 계단만 올라가면 되는데, 뒤의 사람의 경우 그 하나의 계단이-적어도 그에게는-앞 사람의 다섯 계단을 합한 것만큼이나 높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사람은 그 다섯 계단만이 아니라 백 개, 천 개의 계단이라도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선이 굵고 몹시 고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밟고 올라간 계단들은 그 어느 것도 뒤의 사람한테 그 하나의 계단이 갖는 만큼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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