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방관이 된 후 한 일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어떤 손은 너무 작았고, 어떤 손은 주름이 많았고, 어떤 손은 내밀 힘조차 없었다. 어떤 손은 더 꽉 잡아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기도 하였고, 손을 내밀었지만 차갑게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손이든 일단 잡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는 놓쳐버린 손이 더 많았으므로….
나는 바란다. 언젠가는 내 달리기도 더 빨라지고, 장애물의 높이도 낮아지고, 때로는 손으로 장애물을 밀치고 달려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 거기서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요구조자의 손을 더 빠르게 잡아줄 날이 오기를.
처음 소형펌프차 기관원이 되었을 때, 도심 한가운데에서 대나무 숲이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차량 조작 미숙으로 소방차에서 물이 안 나오는 것이다. 진압대원들은 손에 소방호스를 들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은 사색이 되고 얼어붙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뛰어와 버튼 하나를 해제시켜주었고, 그제야 소형펌프차는 물을 내보낼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런 가슴 아픈 직업을 택했을까? 소방관으로서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의 순간도 많지만, 때때로 이런 안타까운 순간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어쩌다 부모님과 통화가 되지 않으면, 괜히 땀이 나고 걱정이 된다. 만약 가까운 거리에 산다면 뛰어와 보겠지만, 대부분은 멀리 사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님 댁 이웃 주민 한두 분을 알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결코 안전할 수 없는 몇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의 안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나의 편안함과 안녕은 100%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다.
유능한 구성원은 촛불과도 같다. 그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주변은 밝아진다. 그는 좋은 시스템을 만들려고 건의하고, 뛰어다니며, 소통하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싸움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촛불 때문에 주변이 환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이었다. 십수 번의 심정지 상황을 맞이했지만, 환자가 다시 살아난 것은 처음이었다. 기뻤다. 소방관의 공도 있겠지만, 돌침대 위에서 건장한 사위가 심폐소생술을 바로 진행했던 것, 환자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았던 것. 센터와 현장이 가까웠던 요인들이 환자를 살렸다. 생명을 살려낸다는 것은 이토록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 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내가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심장이 회복되지 않으면 때로 현장에서 의사가 사망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보호자에게 비보를 전하는 일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또한 구급대원의 역할이다. 장비를 챙기면서 뒤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에 숙연해진다. 돌아오는 구급차 안에서는 엔진소리만 들린다.
긴급 상황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눈’이다. 살려 달라는 강아지의 절박한 눈, 다친 사람의 고통스러운 눈, 힘들어 보이는 동료의 초점 없는 눈…. 모든 감정은 눈으로 집결되는 것 같다. 구조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사람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지만, 동물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 간절한 눈빛을 보면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다.
큰불을 만나게 되면 내 머릿속에는 두 장면이 교차한다. 힘들고 위험할 때는 앞에 나서지 말고 꼭 뒤에서 활동하라는 어머니의 얼굴과, 위험하지만 우리 할 일이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동료들의 모습이다.
다시 현장으로 들어갔다. 소방호스를 밟으면서 갔는데, 소방호스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 다른 수관을 밟고 갔다. 결국 수관을 잃고 길도 잃었다. 나는 계속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헬멧부착형 랜턴만 있었기에 암연으로 꽉 찬 지하 1층에서 나는 눈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기 잔량을 확인했다. 그래도 15분은 버틸 수 있었다. 빨리 소방호스를 찾아야 산다는 생각과 함께 공포로 몸이 얼어붙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래를 떠올렸다. “힘든 곳, 뜨거운 곳, 아픈 곳, 위험한 곳, 빌딩 위 호수 밑, 폭풍 속으로 언제 어디든 우리는 간다.”
출동한 230명의 소방관이 각자 느낀 바가 있겠지만,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소방관이 자신의 안전을 못 챙긴다면, 누구에게 안전을 챙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 화재는 나에게 다섯 번째 가르침, ‘물만 셀프가 아니라 생존도 셀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겪은 소방 활동의 80% 이상은 이런 인재사고다. 법으로나 상식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 예를 들면 음주운전, 안전벨트 미착용, 피다 만 담배를 산에 버리는 일, 아기를 재울 때 두꺼운 요를 까는 것 등이 인재사고에 해당한다. 그런 행동들은 그들을 위험에 빠지게 한다. 운이 좋아 그들을 구하면 우리를 히어로라고 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히어로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꽤나 보람찬 직업을 가진 자였다.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직업, 흔치 않다. 김 신부가 나에게 건네준 마지막 가르침은 깊은 울림이 있는, 내가 은퇴할 때까지 가슴 깊이 새겨두고 싶은 말이었다. “어렵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 그가 바로 예수님이다!” 그날 이후 나는 더욱 진정성 있게 요구조자나 환자를 대하고, 화마와 싸운다. 내가 돕고 있는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 놓인 예수님이다.
“요구조자 구조 완료, 구조 상황 종료!” 긴 한숨이 저절로 나왔고 정신이 돌아왔다. 요구조자를 안정시켰다.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남편은 맥이 풀려 앉아 있었다. 좀 전의 탄식 소리는 여성이 남편의 한 손을 놓쳐서 나온 소리라고 했다. 십여 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을것이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진심으로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경기도나 서울을 오갈 때면 나는 또 다시 43호선 도로를 타고 올라갈 것이고, 무의식적으로 사고 지점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기도할 것이다. 내가 당신들 몫까지 감당하겠다고, 그러니까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셔도 된다고.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