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엔 나도 개떡을 개똥 보듯 했어요. 떡집 망신은 개떡이 다 하는 것 같았죠. 그렇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 있다니. 개떡
을 가만히 씹으면 구수한 쑥 향이 나요. 깊이 있는 단맛과 함께 코끝에 스치는 쑥 향이 감미롭고도 신선했죠.
‘냠냠?’
개떡을 씹으며 좋은 생각이 났어요. ‘할머니 약점은 개떡이로구나!’
그다음부터 할머니의 칼같이 날카로운 질문에 튼튼한 방패로 맞설 수 있었어요.
“뭐여?”
“개떡이요.”
내 손엔 알사탕이 있었어요.
“뭐여?”
“개떡.”
물론 내 손엔 개떡이 없었어요. 할머니는 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뒷짐 지며 대충 모른 체하면 그만이었어요. 한 번 약점
이 간파되니 철옹성 같던 할머니의 단점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네요.
“뭐여?”
“개떡이요.”
“뭐여?”
“개떡, 개떡.”
“어디 한 번 봐봐.”
‘헐, 이걸 어쩐다.’
무슨 일에서나 지나치면 안 돼요. 걸핏하면 ‘개떡, 개떡’ 하니까 할머니에게 의심을 샀어요. 나는 다행히 짙은 초록색 웃
옷을 입고 있었어요. 쑥색을 닮은 웃옷에 손에 들고 있던 만두를 납작하게 싸서 할머니에게 보였어요.
“개떡이라니…….”
--- pp.22~23, 「할머니와 개떡」 중에서
“썩을 놈의 배창새기, 망할 놈의 손목쟁이들…….”
이른 아침부터 터진 엄마의 악다구니 방언에 잠을 깼어요.
엄마는 마당 배수구에 널브러져 있는 똥을 치우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어요. 미처 내가 손쓸 새도 없이 할머니가 요강을
마당에 비운 거예요.
“뭐라 뭐라……, 씨붕씨붕.”
엄마는 멀뚱멀뚱 서 있는 할머니에게도 욕을 퍼부었어요.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그 말은 생략할게요. 아빠가 불같이 화를 내며 엄마에게 달려들었어요.
“이 여편네가 미쳤나?”
손바닥을 하늘 높이 치켜든 아빠를 엄마가 되레 꾸짖었어요.
“가만있어. 다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공교롭게도 엄마의 손엔 칼이 들려 있네요.
‘휘잉~.’
찬바람이 불었어요. 엄마와 아빠를 지켜보는 우리 가족 모두 얼어붙었어요. 이것이 얼음 땡 놀이하는 것이라면 좋을 텐
데…….
“가만히 있으라고!”
아빠가 잠깐 몸을 꿈틀거리자 엄마가 칼을 내뻗으며 소리쳤어요. 이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다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가만있어!”
엄마는 칼로 허공을 그었어요. 왜 그것이 엄마 손에 들려 있었을까요? 엄마는 무언가를 미리 계획하고 있었던 걸까요?
혹시 가족 모두와 함께 비루한 현실의 때를 모두 벗겨 내며 장렬히 전사하려는 걸까요?
‘휘잉~.’
--- pp.97~100, 「엄마를 미치게 만든 ‘요강 사건」 중에서
“그래? 죽기 전 소원이 무엇이냐?”
철갑똥파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꿀처럼 달았다.
“거미 아줌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요.”
과부 거미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내 소원이 뭔지 알고?”
“말해 주면 제가 그 소원을 이루어 드릴게요.”
과부 거미는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철갑똥파리의 몸에 붙은 거미줄을 조심조심 떼어 냈다.
“난 땅굴 거미 총각을 짝사랑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철갑똥파리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땅굴거미 아저씨한테 옷 선물하려고 뜨개질한 거였어요?”
“아니, 널 예쁘게 포장해서 거미 총각에게 가져다주려고.”
“그럼, 똥파리 선물 대신 고백을 하세요.”
과부 거미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부인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철갑똥파리는 버릇처럼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거미 아줌마는 언제 과부가 되었어요?”
과부 거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몰라. 태어날 때부터 난 과부였어. 새끼거미였을 때부터 모두 나를 ‘과부 거미’라 부르며 손가락질했어.”
철갑똥파리는 잠시 궁리하더니, 좋은 생각이 난 듯 입을 똥그랗게 벌리며 말했다.
“제가 아줌마 이름을 새로 지어 줄게요.”
“내 이름을?”
“네. 이렇게 근사한 대궐 같은 거미줄에 은방울 같은 물방울이 전등같이 매달려 있으니, 은방울거미 아가씨 어때요?”
“어머나! 참 예쁜 이름이다. 이름만으로 내가 달라진 것 같아.”
--- pp.236~237, 「거미줄에 걸린 철갑똥파리」 중에서
“달팽아, 준비됐니?”
“응.”
잔뜩 긴장했는지 달팽이의 눈이 쏙 들어갔다.
“자, 모두 줄을 잡아.”
하루살이들은 저마다 거미밧줄을 잡고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철갑똥파리도 거미밧줄 하나를 단단히 쥐었다. 대장 하루살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날아올라.”
하루살이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달팽이의 몸과 집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철갑똥파리는 혹시라도 달팽이가 떨어질까 염려스러워 안전띠용 거미밧줄을 꽉 메어 주었다. 달팽이는 두둥실 풍선처럼 떠올랐다. 멀리 내다보이는 산과 들, 흔들바람에 산들거리는 초원의 잎이 한눈에 들어왔다.
“와!”
달팽이는 바늘구멍 같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루살이들은 저 멀리 보이는 무지개 정상에 도달할 만큼 높이 날았다. 하루살이 중 몇몇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죽기 시작했다. 하나둘 떨구어져 나가는 하루살이들을 보며 달팽이는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오! 꿈을 이루려는 짧은 생에 축복을…….”
--- pp.249~250, 「느림보 달팽이의 꿈을 이루어 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