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일까, 열네 번째일까, 아니 스무 번쯤 되지 않았을까. 이젠 세는 것도 포기했다. 우리 편의점이 오늘 또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여 건물이 전면 폐쇄됐다. 어미 캥커루가 뛰어가면 배 속 아기 캥거루도 딸려 가는 법. 건물 지하에 위치한 우리 편의점도 어리둥절 강제 휴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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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류를 모두 버리고 적막한 편의점 창고 안에 들어와 쫓기듯 이 글을 쓴다. 고요히 내려앉은 어둠 속에 윙-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히 울린다. 늦어도 한 시간 안에 나도 이 건물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마스크를 올려 쓰고 숨을 가쁘게 내쉰다.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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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다양한 만큼 알바도 다양하다. 다양한 문제를 풀어봐야 시험을 잘 치르는 것처럼 사람도 다양한 유형을 겪고 복작여봐야 생각의 두께가 두터워지는 것일까. 우리는 매일 그런 시험을 치르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기말고사인지 중간고사인지 쪽지시험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나름의 시험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하루하루, 인간관계의 오답 노트와 기출 문제를 쌓아나가는 중이다.
--- p.65~66
편의점 점주에게도 머피의 법칙이 있다. 제1법칙, 완판(完販) 회피의 법칙. 도시락, 삼각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같은 프레시푸드를 모두 팔아버리는 걸 우리는 ‘완판’이라 부른다. 발주량에 딱 맞게 완판하는 ‘운수 좋은 날’이 있고, 팔리지 않아 아까운 음식을 왕창 버리게 되는 ‘폐기 지옥의 날’이 있으며, 손님은 계속 밀려드는데 너무 빨리 완판되어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완판’의 날은 있어도, ‘완벽’의 날은 드물다.
--- p.93~94
학교 앞 편의점 점주는 운동회가 언젠지 졸업식이 언젠지 그 학교 선생님들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학교 급식 메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기 없는 반찬이 나오는 날, 아이들이 편의점으로 몰려오니까.
--- p.107
우유는 좀 독특한 상품이다. 맨날 먹는 우유에 무슨 특이함이 있을까 싶겠지만, 여름엔 없어 못 팔고 겨울엔 남아돌아 걱정인 상품이 우유다. 필요할 때는 부족하고, 그다지 필요 없을 때는 넘쳐나는, 꽤 삐딱선을 타는 녀석이다. 대체 왜 그럴까? 한마디로 이유를 말하자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수천수만 가지 상품 가운데 ‘오롯이 한 생명체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유일한 상품이 우유이기 때문이다.
--- p.127
예전에는 임대료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는 편의점 점주들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장사가 안되길래 그러지?’ 어떤 점주가 알바생 인건비마저 주지 못해 쩔쩔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점주가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을 겪는 중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지옥을 경험해봐야 지옥을 안다.
--- p.159
특별히 빛나지 않으면서 어디든 있는 ‘편의점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 내가 가진 소박한 목표다.
--- p.221~222
우리나라 편의점 프랜차이즈는 기존 구멍가게와 슈퍼마켓을 흡수하고 잠식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골목 구석구석 있던 작은 가게를 저마다 상대하던 담배 회사, 음료 회사, 제과 업체들의 수고가 덜어졌다. 이젠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가 그런 회사들을 ‘회사 대 회사’로 상대하면 된다. 지역마다 있던 도매상이니 대리점이니 영업소니 하는 중간 상인들도 모두 ‘옛날 용어’가 되었다. 내가 우유를 떼어 오던 보급소 정 사장, 매월 과자 가격을 흥정하며 싸웠던 영업소 박 소장, 과일을 배달하던 현우 씨… 역시 만날 일이 없어졌다. 모두 휴대폰 속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 p.254~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