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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420g | 150*203*20mm
ISBN13 9788925512594
ISBN10 892551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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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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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키스 (정호승)
그런데 그때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재란 누나가 갑자기 유리창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이번에는 장난기가 있는, 일부러 흉하게 일그러뜨린 입술이 아니었다. 살짝 눈을 감고 뭔가 내 입술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런 누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누나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두꺼운 책으로 남은 사랑(이재무)
당신은 갓 쪄낸 떡살처럼 눈부신 생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신이 걸어가면 세상의 모든 길들이 스스로 몸을 열어 당신을 끌어들였지요. 세상의 사물들은 당신으로 하여 더욱 환하고 맑고 투명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오래 머물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빨리 당신이 나를 떠나기를 바라는 상반된 이중적 감정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해 봄 한없이 맑던 시작과 흐린 끝(함민복)
온기가 느껴지는, 살아 있음이 분명한 돼지 발가락이 손에 막 잡히는 순간이었다. 어미 돼지가 통증을 느끼는지 간헐적으로 자궁을 조일 때마다 팔목이 찌릿찌릿 저렸다. 나는 손가락에 잡힌 마늘 조각만 한 돼지발톱이 내 손끝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아무튼 산 돼지를 꺼내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고 생성 모태인 자궁 속에 손이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은 H와의 만남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것만 같다는 암시를 주었다. 나는 기분이 들떠 있었고 H를 만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안개가 번져 멀리 감싸듯이(문태준)
청춘이라는 말에는 봄비 소리가 난다. 토란잎을 두드리다 토란잎 위에서 몽글몽글 뒹굴다 그러곤 사라지는 푸른 빗방울의 소리가 난다. 내게도 푸른 빗방울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사랑이나 삶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는 말을 나는 그때 알았을까. 너무 손을 대면, 손 타면 안 된다는 그 말의 귀함을 나는 알았을까. 애써 성공하려 하지 말고 애써 실패를 초래하지도 말라는 그 말을 알았을까

그 여자(김용택)
어쩌다가 밤늦게 사람이 지나가면 우리 둘이는 그 나무 등에 딱 붙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너무 가슴이 뛰고 그리고 너무 좋았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쿵쿵 뛰는지 느티나무가 다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의 숨소리, 따뜻해져 오는 몸, 그리고 어색하게 더듬어 찾던 손과 마주치던 눈길들. 길 가던 사람이 지나가도 우린 한참을 그렇게 오래 느티나무 등 뒤에 서 있었답니다.

연애 없는 연애담(고운기)
산과 들에 어둠처럼 쌓이는 눈이 홀로 깊어 가는데, 이제 밤이 지나면 누군들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환영으로 다가왔다. 쌓인 눈길 따라 정강이를 적시고, 다시 빈산에 선 나무들을 흔들어 가지에 쌓인 눈을 떨면서 찾아가고 싶었다.

아내를 보면 그녀가 그립다(권태현)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그녀는 자꾸 내 가슴의 빗장을 열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덜그럭거리는 빗장을 움켜쥐었다.하지만 모든 흔들리는 것들은 이음새가 헐거워지게 마련이었다. 내 가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더 이상 뿌리칠 수 없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그립도록 미운 사랑 (권대웅)
씁쓸히 그 바닷가를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면서 짠 바닷바람도 비린 안주도 모두 쓰린 사랑의 맛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이 지는 자리는 서해가 가장 어울립니다. 태양이 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술이 취해 어느 민박집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유치하고 서툴게 시작되었다 (문정희)
지금도 나는 사랑하고 있다. 지금도 뜨겁게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불량기이고 화냥기라면, 나는 단연코 불량기를 사랑하겠다.어린 시절, 나의 꼬마신랑에서부터 눈이 까만 소년이나, 숱하게 스쳐간 검은 제복의 남학생들 하며, 키 크고 잘생겼던 청년이 나에겐 사랑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니까 나는 다만 사랑 하나를 사랑했던 셈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한 사랑의 실연자(失戀者)이다.

아내의 편지(도종환)
못 다한 사랑, 풀지 못한 한이 400여 년을 꼼짝 않고 웅크리고 있다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얼마나 한이 깊었으면 글자 한 자 상하지 않고 400 년을 그대로 있었을까요? 이 편지를 미처 못 읽고, 그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던 부부의 영혼이 그 사이에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 아프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 사랑하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다시 부부가 되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뒤에 남아 아내에게 눈물로 편지를 쓰고 그렇게 업연을 갚았기를 바랍니다.

두 여인과 꼬마 아가씨(조윤희)
우울해 보이는 그늘을 지녔던 분, 그 그늘로 인해 실제 나이보다도 더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확실하게 지명은 알 수 없으나 어느 조그만 읍에 있던 학교에서 이곳의 구석진 학교로 전근해 오신 분이다. 그때까지도 독신이었던 선생님은 무슨 연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사택인 우리 집에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은 나의 담임선생님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선생님의 주위를 맴돌며 그늘이 있어 보이는 얼굴을 대해야만 했다. 선생님의 모습은 나에게는 큰 어려움이자 기쁨이기도 했다.

S를 기억하며(조은)
유래 없이 지독했던 지난가을 가뭄으로 인해 제대로 단풍도 들지 못한 잎을 드문드문 매단 나무들의 마음이 산만해 보였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꺼내 나무들을 쓰다듬으며 걸었다. 어떻게든 힘들어 보이는 자신들을 위로해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닿은 걸까, 나무들에게서는 아무런 거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걸으며 타인의 위로를 그토록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심성이 내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내 귀 안에 산다(서석화)
삶과 죽음 그 극단의 상황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며 대낮에도 별을 보고 한밤중에도 해를 보는 기이한 상황 속에서 트리움비라트의‘당신을 위하여’를 듣는다. 바람 아래 해변의 그 먹먹하던 아픔과 서러움조차 겉치레가 되던 비장한 아름다움의 일몰, 그 어떤 경계도 풀풀 지워지던 백색 바람소리, 숨 쉬는 세포 모두 열어 그를 불렀던 그 날, 돌아오는 내 손엔 해변에서 주운 두 개의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맑은 슬픔(공광규)
국이 나오는데, 건더기보다 국물이 풍덩거릴 정도로 많으니 국그릇에 별이 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숟가락으로 맑은 국물을 뜨면, 별이 수제비처럼 숟가락 위에도 얹혔다. 달이 뜨는 날 밤이면 국그릇 속에도 달이 떴다. 그 큰 달을 건져 먹으면 정말 배가 부를 것 같았다.

눈물 제조업의 어머니, 아니 엄마 (유정이)
나는 우리 시부모님, 특히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언제 어디서라도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순정한 맘으로‘어머니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 늦은 밤 홀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바로 옆방에서 고단하게 주무시는 어머니 모습을 상상하면서 간혹 눈물을 지을 만큼 사랑한다. 멀리 친정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거의 같은 마음, 아니 그보다 더한 마음으로 아주 애틋한 시간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운 나타샤에게(안도현)
나타샤, 내 말을 서운하게 듣지 마십시오. 어쩌면 백석에게는 나타샤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많은 여자가 그의 주변에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 어떤 남자에게도 나타샤는 없는 게 아닐까요? 없기 때문에 또 모든 남자들은 나타샤를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요?

카프카를 읽던 시절(장석주)
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의 괴로운 숙고 끝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내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빕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이고, 그러니 당신이 몰고 오는 야생 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머금은 공기에 놀라 내 폐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지도 모르죠. 그러니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죠.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깨고, 혼자 술 마시는 저 일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사랑에 대한 두 이야기(천양희)
네 잎 클로버(clover)에 러브(love)가 들어 있어 행운, 행복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나는‘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작은 풀에도 사랑이 들어 있는데 정작 사랑에 가난한 것은 사람이 아닐까 되묻게 된다.

당신 개의 그림자라도 되고 싶어(황인숙)
“버림받은 사람은 공포에 질린 듯이 그 억울함과 원통함을 끝없는 수다로 풀어놓기 시작한다. 자기 본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가 떠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상대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건만, 그는 자신이 겪은 이별을 전혀 다른 각본으로 만들어서 묵묵부답의 자동응답기에 수없이 메시지를 남겨놓는다. 지난 일들을 곱씹고 되씹으면서 전에 연인과의 관계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명철한 합리성으로 무장한 채, 자동응답기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엘레라이에서 사랑을 말하다(황학주)
일몰이 오니 시선은 스르르 풀어지고 발밑은 아득해져버립니다. 대낮의 햇빛 다음에 도래하는 은은하고 기이한 일몰. 대낮의 일체의 활동과 가능성이 스스로 더 큰 단조로움 안으로 녹아 흘러드는 저녁 경치를 홀린 듯, 아무 후회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붉은 나무들이 있는 엘레라이 마을 초입에 서있습니다. 붉은 나무 곳곳에서 아주 작은 날갯짓 소리 들려와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두 귀를 엽니다.

지금 막 사랑에 눈뜬 소년을 위하여 (고형렬)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당당한 척하는 남자는 아마도 진정한 남자가 아닐 겁니다.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부끄럼을 타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자는 어쩌면 강 건너 마을에 이제 다시는 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동네 아가씨를 몰래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면 이렇게 마음을 감추게 되는가 봅니다.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눈부신 처녀로 자라듯이, 소년도 이렇게 부끄러움과 쓰라림을 아는 청년이 되는 것이지요.

사랑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박형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 때문이 아니라 되찾고 싶은 과거 때문이다. 사랑이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게 하는 과거지향적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성간에 사랑이 싹틀 때 누군가에 대해 좋은 느낌이 들거나 낯익은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의 마침표는 사랑으로 찍자(원재훈)
“사랑은 햇살이 비추기 전 끼어 있던 구름 같은 거란다. 헬렌,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구름을 만질 수는 없단다. 그러나 비를 만질 수는 있지.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려 목마른 대지와 꽃들이 이 단비를 받아 마시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니? 사랑도 꼭 그렇단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모든 것 위에 부어지는 그 달콤함만은 느낄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행복하지도 뭘 하고 싶지도 않을 거야.”

가을 편지(박주택)
홀로 남겨진 내가 사랑한 것은 광택을 잃은 가구와 미욱한 전망의 어두운 저편에서 날아가는 새들과 추억의 배후에 두리번거리다 걸어간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상처투성이의 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그 돌을 들어 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내 존재의 정면이기도 하지만 운명은 너무 멀리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아무도 그곳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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