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생각해 보면 '담다디'때 나는 꼭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아이같았다. 나중엔 너무너무 창피하고 화가 났다. 어떻게 내 자신이 그랬나 싶을 만큼. 그때 어른들은 나보고 그랬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랬던 너 자신이 귀여워질 거라고. 그 말에 코웃음치며 만든 음반이 "공무도하가"다. 미국까지 멀리멀리 방황하다 돌아온 것이다. 지금은 그게 결국 나였구나 하는 것을 알 것 같다. 멀리 도망을 갔다가 와서 방에 누워 있는데 문득 그때가 그리워지는 거다. 그럴 때 깜짝 놀라며 알게 된다. 그 두 가지가 다 나라는 것을. 친척들 앞에서 '피리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것도, 사르트르나 니체를 읽는 것도 나였다. " -- 이 상 은
놀라운 일이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부르던 '깜찍한' 이상은이 오늘날 가장 예술적인 음반을 발표하는 거장으로 변신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상은은 '담다디' 이후에도 1989년 'Happy Birthday' '사랑해 사랑해'가 수록된 1집을 그리고 같은 해 '사랑할꺼야'가 수록된 2집을 발표하여 소녀 취향의 노래들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스타였다. 이는 그녀가 당시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고는 하지만 '대중적인 스포트라이트'라는 단 열매를 따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박차고 진정 '뮤지션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고된 여정으로의 출발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케 한다.
이상은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6단계의 시기로 나뉘여 진다. 그녀의 말로 직접 들어보는 그녀의 6단계
1. 음반기획사가 만들어준 사랑 노래 위주로 부르던 시기 --1집, 2집
" 노래하던 사람이면 다 노래하는 사람인줄 알았지 그 안에서 자기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 길을 찾아서 진실을 향해서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노트 속에 소녀적인 마음을 처박아두고 노래 연습을 열심히 했다. 아무도 안 보는데서 노래연습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
2. 뉴욕으로 가서 그림을 공부하며 새로운 음악적인 모색을 시작한 시기 --3집
" 담다디를 떠난 이유도 거기에는 내가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거기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분리되어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애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소외되어 있는 상태는 음악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음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유기체니까 무언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3. 프로듀서 김홍순과 같이 '하우스뮤직' 작업을 하던 시기 --4집
" 나무는 참 어렵다. 그때 그것을 내가 그려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못 그려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무엇인가 자연에 대한 사물을 그려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라고 느꼈다. 나의 실력 한계를 떠나서 '무엇인가 본다는 것. 그것을 알고 느껴서 표현한다는 것이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수업을 마쳤다. 그것이 늘 마음에 남아있다. "
4. 프로듀서 안진우와 같이 록필(Rock Feel)이 충만한 '감각적인 음악'을 하던 시기 --5집
"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진실, 음악에 대한 진실 등 그것에 근접하려고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표현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을 실제로 해냈을 때의 느낀 기쁨이 가장 깊은 것이 음악이었다. "
5. 음악적인 동반자 하지무 다케다(편곡, 세션)를 만나서 예술적인 영감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던 시기 --6집
" 시간과 공간 같은 것이 약간 바뀌는 느낌이라든지, 그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중에서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몇 년 전 이야기인데, '공무도하가'를 불렀을 때 '오늘 저희들의 마음이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는 이번 노부부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너무 기뻤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공간으로 가게 만들고, 눈에 다른 풍경이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은 너무너무 신비한 것 같다. "
6. 하지무 다케다와 펭귄스(Penguins)체제를 공고히 하며 'International artist'로 거듭 태어나던 시기 --8집, 9집
" 예전에는 내가 있고, 내가 곡을 쓰고, 내가 내 표현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악을 할 때 그런 느낌보다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무의식이 있고, 무의식의 망망대해가 있으면 거기에는 모든 인류들이 갖고 있었던 경험들과 지식들이 나 쌓여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음악이라든지 뭐든지 나는 거기서 안테나 역할과 트랜지스터 라디오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다. 그건 '무의식공동체'의 코드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음악을 하다보니 터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