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겉모습은 그렇게 달라졌는데 왜 영민이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 영민: 그거야 같은 사람이니까 같은 사람이죠.
- 선생님: 그래. 겉모습은 계속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게 아마 영민이 너라고 생각하는 걸 거야, 그렇지? 그럼 그 변하지 않는 게 뭘까? 그걸 찾으면 그게 ‘나’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를 철학자들은 어려운 말로 ‘자기동일성’ 문제라고 해.
--- 「1. 이상한 나라의 영민이」 중에서
- 선생님: 우리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영민이는 자기소개할 때 다른 사람한테 소개할 ‘내’가 누군지 궁금해했잖아. 그런데 우리 몸은 계속 바뀌니까 나라고 이야기하기가 좀 힘들었고. 그렇다고 취미나 좋아하는 음식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많이 좋아할 테니 그것도 나라고 이야기하기가 그렇고. 또 장래 희망도 나를 잘 소개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그럼 이제 남아 있는 건 정신뿐이지. 영민이가 어릴 때랑 지금이랑,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모습도 다 다르지만 “나는 김영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야. 즉 정신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데, 옷을 갈아입을 수는 있지만 그 옷을 입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 --- 「3. 몸이라는 옷을 갈아입는 정신이라는 아이」 중에서
- 선생님: 이게 꿈이라면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정말 존재하는 게 아니게 되겠지. 그럼 신은 진짜 세계가 아니라 가짜 세계를 만든 게 돼. 그러니 신은 사기꾼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
- 영민: 신은 믿을 만한 존재고, 그런 존재가 사기꾼처럼 거짓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런 뜻이네요.
- 선생님: 바로 그거야. 데카르트는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은 꿈이 아니라 진짜로 있는 거라고 봤어. 그러면 이제 나도 있고 신도 있고 이 세상도 내가 보는 대로 다 있다고 할 수 있겠지.
- 영민: 신이 있으니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다. 그래서 친구들도 선생님도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있다, 이런 얘기네요.
--- 「4. 내가 먼저? 아니면 친구가 먼저?」 중에서
- 선생님: 영민이는 재영이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어?
- 영민: 재영이는 노는 거 좋아하고, 생각하는 건 싫어하고….
- 선생님: 재영이는 영민이가 알고 있는 너의 모습에 동의하니?
- 재영: 뭐, 맞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그거 말고 다른 모습도 많아요.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고 내성적인 면이랄까, 그런 점도 있어요.
- 영민: 정말? 네가 내성적이라고?
- 선생님: 영민이는 재영이가 아는 너의 모습이 맞다고 생각해?
- 영민: 맞는 부분도 있지만 저도 그게 제 모습의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 선생님: 그렇지, 사실 내가 다른 사람을 잘 알고 그렇게 규정했다고 생각하지만 내 친구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정의될 수 없겠지. 나도 요즘 너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름대로 영민이, 다빈이, 재영이를 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아마 내가 너희들을 각각 어떤 사람으로 규정한 것이 너희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거야. 너희들의 평소 모습을 많이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너희들의 진짜 모습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일 거야. 레비나스 철학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보면 돼.
--- 「5. 내 USB에 담기에는 너무 큰 내 친구」 중에서
- 영민: 레비나스는 정말 데카르트하고 반대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렇게 존재하는 나는 뭔가 자신 있는 나처럼 보였는데 레비나스가 생각하는 나를 좀 뭐랄까, 허약한 것처럼 보여요.
- 선생님: 오, 흥미로운 이야기네. 영민이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지?
- 영민: 오디세우스는 나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파악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강한 나처럼 보인다면, 아브라함은 모험을 떠나면서 만나게 될 다른 사람을 파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잖아요.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 이야기의 나는 뭔가 약한 존재처럼 보여요.
--- 「6. 나는 대답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