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이 현실적’이에요. 달리 말해,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 현실이 보일 리 없어요. 동굴 생활에 안주해 있는 이들에게 동굴 생활의 ‘현실’은 전혀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요. 오직 새로운 형태의 집을 꿈꾸는 이들만 동굴 생활(현실)이 얼마나 춥고 힘들고 불편한 것인지 느낄 수 있어요. 동시에 ‘현실적인 것이 꿈’이 되죠. 벗어나고 싶은 ‘현실(동굴의 삶)’이 바로 꿈(움막, 기와집, 이층집, 아파트)을 가능하게 했잖아요.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라는 헤겔의 말은 옳아요. 오직 꿈꾸는 사람에게만 현실이 보이며, 그 현실이 바로 꿈이 되니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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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미래는 ‘미래의 현재’이고, 이는 우리의 ‘기대(기다림)’잖아요. 어떤 대학을 가게 될까?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이것은 모두 미래의 일이죠. 하지만 이 미래는 모두 기대(기다림)일 뿐이에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간절히 기대하고 기다리는 모습으로 찾아오게 마련이에요.
--- p.96
‘존재’는 결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하지만 ‘실존’은 다르죠. 본질에 갇혀 있지 않아요. 인간은 ‘그 어떤 개념으로도 정의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에게는 실현되어야 할 미리 정해진 본질 같은 것은 없어요. 무언가를 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요. 특정한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없어요. 왜 그럴까요?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이에요.
--- p.114
욕망이 진정으로 문제가 될 때는 한곳에 굳게 들러붙어 버리는 경우예요. 즉, 어느 한 가지 욕망에 묶이는 거죠. ‘날씬한 몸매, 명문 대학, 많은 돈’을 욕망하는 것 자체는 사실 별문제가 아니에요. 사회 전체가 ‘날씬한 몸매, 명문 대학, 많은 돈’을 가진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내는데, 우리가 어찌 그것을 욕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으니까요. 심각한 것은 자신의 욕망이 평생 ‘날씬한 몸매, 명문 대학, 많은 돈’에 고착될 때예요. 이것은 결코 건강한 삶이 아니에요.
--- p.159
‘-되기’를 통해 콤플렉스는 극복 가능해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분명해 보여요.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친구가 있다고 해 봐요. 그 친구는 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요?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관성적이고 익숙한 ‘나’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날 그런 ‘나’에서 벗어나 다른 ‘나 -되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작은 키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닐 거예요. “키 좀 작은 게 뭐 어때서?”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 p.196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에요. 달리 말해, 몸이 있는 존재는 누구나 폭력적이에요. 이는 더없이 정확한 진단이죠.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살아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 분명한 삶의 진실이에요. 생각해 봐요. 아침에 먹은 밥은 쌀의 죽음이었고, 점심에 먹은 생선은 물고기의 죽음이었고, 저녁에 먹은 삼겹살은 돼지의 죽음이었잖아요. 이보다 더 폭력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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