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정말 엄청난 소모였다! 1년 후 관객들한테 고작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여 주기 위해 투입된 시간, 재능, 특별 작업, 인력, 기술, 트릭과 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1백 50여 명의 사람들이 꼬박 8주 동안 파김치가 되도록 그 일에 매달려야 했으며 1천만 마르크가 넘는 돈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관객들이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신도 없었다. 도대체 저녁마다 이탈리아 식당에 모여드는 극단적인 인물들에 관한 영화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
--- p.278
시나리오를 쓸 때 이보다 더 기분 좋은 단계는 없다. 이 단계에서는 아무리 좋은 영화들도 시시해 보이고, 아무리 엄청난 아이디어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요구라도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나리오 작가라면 누구나 모두 이 단계를 거친다. 이것은 시나리오 쓰기에 있어 일종의 통과 의례로서, 앞으로 닥쳐 올 난관에 대한 공포를 약화시키는 신경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한다.
--- pp.285-286
모든 문학 텍스트는, 그것이 장편 소설이든 단편 소설이든 수필이든 시든 일단 완성되면 예술적으로 완벽한 생산물이다. 거기에 비해서 시나리오는 일단 완성된 후에도 아직 생명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와 감독과 제작자의 생각에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혹은 일곱 번째 원고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시나리오는 본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대부분은 재정적인 문제이다) 항상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못한다. 그런 경우 영화의 기초로 이용될 예정이던 시나리오는 예술적으로는 아직 실재하지 않은 것이나 같다.
--- p.338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나리오를 쓰는 일에 커다란 의미가 부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히 감독과 제작자는 며칠씩 밤을 꼬박 새워 가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함께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이때 이루어지는 결정들은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 하나하나의 결정들은 당장 더 큰 규모의 사람들이나 돈과 관련되고,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이 모험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p.341
그 영화를 관찰하는 동안, 즉 그 영화가 110분 동안 강물처럼 흘러가는 동안 나는 여기저기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고, 소용돌이도 느꼈으며, 물굽이를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렇지만 그런 효과를 노리고 강바닥에 뭔가를 파놓았을 엔지니어의 구상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화면과 음향의 강물로 모든 것이 덮여 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화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영화는 흘러간다.
---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