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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 산 백경
나태의 가루타 팔십팔야 축견담 멋쟁이 아이 세속 천사 직소 알테 하이델베르크 달려라 메로스 도쿄팔경 옮긴이의 말 다자이 오사무 연보 |
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
후지 산 백경(1939) - 도쿄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바라본 후지 산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1938년 초가을, 작가인 ‘나’는 작품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스승이 글을 쓰고 있는 미사카 고개의 찻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글을 쓰는 몇 달 동안 스승의 소개로 맞선도 보고, 그 마을 청년들, 찻집 식구들과 어울린다. 그러던 중 유녀 한 무리가 미사카 고개로 나들이를 온다. 그러나 그녀들의 나들이는 형형색색의 옷에도 불구하고 ‘칙칙하고 씁쓸하여 그냥 보고 넘기기 힘들었다.’ 그는 참다못해 후지 산에게 그녀들을 부탁한다. 2층 외로운 사나이의 안타까운 공감도, 이 여인들의 행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 나는 다만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괴로워하는 자는 괴로워해야지. 떨어지는 자는 떨어져야지. 나와 관계되는 일은 아니다. 그게 이 세상이다. 그저 무리하게 냉정한 체하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나는 왠지 가슴이 답답했다. ---p.29 도쿄팔경(1941) - 10년간의 도쿄 생활을 8개의 풍경으로 요약한다면? ‘풍경’이 아니라 ‘풍경 속의 나’가 보인다. 술집 여급이었던 H와의 동거와 결별, 새 아내와 그녀와의 결혼 생활까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 직접 쓴 ‘연보’로 읽어도 무방할 만큼 그의 삶의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제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끝을 맺는 듯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역시 다자이답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내 마음속 앨범을 뒤적거려보았다. 하지만 이 경우 예술이 되는 것은 도쿄의 풍경이 아니었다. 바로 풍경 속의 나였다. 예술이 나를 속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예술을 기만한 것인지…… 결론. 예술은, 바로 나다. ---p.266 내 안의 불안까지도 웃어내게 하는 ‘다자이식’ 농담, 그 힘 축견담(1939) - ‘개에게 물리는 것’을 지독하게 두려워하는 한 남자가, 자신을 따라온 강아지를 억지로 키우게 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과자를 주고 좀 달랜 다음 내쫓으려 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산책도 시키고, 먹이도 주며 함께 지낸다. 그러던 중 이사를 가야 할 처지가 되어 강아지를 버리고 가려 하는데……. 싸움질은 끝났다.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문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고 관전하며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한때는 두 개 새끼의 치열한 격투에 말려들어 나 역시 사투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쯤이야 물려 죽어도 좋다! 포치야, 네 마음껏 싸워 이겨야 한다! ---p.123 멋쟁이 아이(1939) - 어렸을 때부터 셔츠 깃 하나에까지도 신경을 쓰며 의상에 멋을 부리는 소년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위해 도쿄 시내로 가게 된 소년은 일부러 도쿄 말씨를 쓰려고 노력하고, 무대 의상 같은 옷을 입고 싶어 직접 이 가게 저 가게를 뛰어다니며 옷을 만들어 입지만 결국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되고 말 뿐이다. 대학생이 되어 좌익 사상에 휩쓸리며 그 역시 하나의 ‘패션’으로 소화하는 듯했으나, 이내 단벌 신사의 돈 없는 곤궁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환경은 따라주지 않아도 멋쟁이 아이가 되고 싶은 소년은, 이제 남에게 옷을 빌려 입는 처지가 되었다. 소설은 소년의 흥얼거리는 짧은 노래로 마무리된다. 산뜻하고 전아한 외면만을 현세의 유일의 ‘목숨’으로 여겨 남 몰래 신앙처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옷까지 빌려 입고 연인을 만나러 갔을 때의 심정을 두세 편의 센류로 소개함으로써 이 끔찍이도 놀라운 멋쟁이를 소개하는 이야기를 끝맺기로 한다. “도망자의 빌린 옷은 시원스레 걸맞누나. 이 몸에 걸친 최신 유행하는 빌린 옷. 소매를 푸느라 허둥거린다. 빌린 옷 걸쳐보니 사람들 모두 다 그렇게 보이는구나.” 씹을수록 가련한 광구(狂句)다. ---p.141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다자이가 이야기하면 다르다 직소(1940) -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는 상황을 유다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유다는 예수는 처음부터 가식적이고 무능력한 인물에, 자신이 없었다면 예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인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는 그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이가 이 세상을 하직한다면 나도 뒤따라 죽을 것입니다. 그이는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것입니다. 그이를 남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온다면, 넘기기 전에 그자를 죽여버리고 말 것입니다. 부모님을 버리고 정든 고향마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고 나는 오늘날까지 그이를 따라다녔습니다. ---pp.168~169 달려라 메로스(1940) - 정의의 남자 ‘메로스’가 잔인무도하고 포악한 왕을 죽이려 하다가 붙잡혀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메로스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여동생의 결혼식을 열어주기 위해 사흘의 여유를 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인정이라곤 없는 왕은 사흘을 주는 대신 메로스의 친구 세리눈티우스를 대신 인질로 잡아둔다. 사흘 후에 메로스가 죽으러 오지 않으면 대신 처형하겠다는 것. 폭우로 불어난 강, 갑자기 나타난 산적들, 그리고 이내 길바닥에 쓰러진 메로스.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메로스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달린다. 걸어갈 수 있다. 가자! 육체의 피로가 회복되고 더불어 가느다란 희망이 움텄다. 의무 수행에 대한 희망. 내 몸을 죽이고 명예를 지키는 희망이었다. 노을은 벌건 빛으로 나뭇잎을 물들여 나뭇가지도 잎사귀도 타는 듯이 빛나고 있었다. 일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치도 의심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다. 나는 믿음을 받고 있는 거다. 내 목숨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죽음으로써 사죄한다는 따위의 허울 좋은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신뢰에 보답해야만 한다. 지금은 다만 이 한가지뿐이다. 달려라! 메로스. ---pp.225~226 |
“다자이 오사무는 천재 소설가였다. 그는 가짜 제국주의자였고
가짜 일본공산당이었으며 가짜 군인이었다. 그는 처와 연애와 창녀를 진짜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김승옥(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기획) “다시, 다자이 오사무를 읽자”, 열림원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인간실격』의 작가. 염세주의. 자살. ‘다자이 오사무’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요절한 천재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호기심은 국적과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그의 문학 세계에 깊이 빠져보는 체험을 한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태어나서 미안해요.”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그의 문학 세계에 강한 인상을 부여하지만 그의 문학이 지닌 다채로움과 새로움을 가리기도 한다. 2014년 10월, 열림원은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을 내놓았다. 『무진기행』의 김승옥이 3년 전 “다자이 오사무를 읽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승옥은 읽어야 할 작품들을 선정하고, 그 작품을 우리말로 옮길 번역자를 기획했다. 그는 당시 시대를 잘 이해하는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원로 문인인 이호철, 전규태 등을 번역가로 선정했다. 1930년대 초에 태어난 두 문인은 일본 소설을 원서로 읽었던 세대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일찌감치 국내에 소개한 바 있다. 다자이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빚어낸 열림원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진짜” 다자이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진실하게 불안과 고통을 대면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세계는 ‘진실함’, ‘치열함’, ‘다채로움’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자이의 제자이자 다자이가 사망한 이듬해에 다자이의 묘지에서 자살을 기도한 소설가 다나카 히데미쓰는 “선생의 생명을 건 자전풍의 작품 전부가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삶과 작품을 동일시했다고 할 만큼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작품에 가감 없이 담아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환영받는 이유는 자신의 느꼈던 불안과 고통 앞에서 누구보다 진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자이는 불안과 고통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았을 뿐 아니라 치열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표현하고 나누려 했다. 불안과 고통 앞에 선 우리는 그래서, 다시 다자이를 손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