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나는 잃을것은 모두 잃었다.
이제부터는 검둥이로 인해 처자의 일을 30분마다 떠올리는, 그런일은 없겠지.
나는 내친김에 그 구덩이속에 여러가지를 파 묻었다.
예를 들자면 아내와 아이를 묻었고, 예를 들자면 친구와 아는 사람들을 묻었고, 예를 들자면 내 자신을 묻었다.
요컨대 전반의 모든것을 억지로 전부 파 묻었다.
--- p.148
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것은 중천에 떠 있는 어스름 달, 동녘 바람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거지 법사(法師)이다. 늘어진 버드나무 뿌리께에 털썩 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짜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 눈은 둘 다 멀어서 광대한 강변 일대에 내리붓고 있는 푸른 달빛을 전혀 못 본다. 그러나 때가 꼬질꼬질한 그의 오체(五體)는 삼라만상을 남김없이 포착하고 있고, 무궁한 시간과 공간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팽팽한 현의 떨림은 미지근한 밤 기운을 자극하여 봄을 증폭시키고, 나아가 병풍곁의 초라한 이불에 기어들어가 있는 소년의, 아직 두부처럼 여린 영혼에도 깊이깊이 스며든다. 볏짚을 채운 요와 잉어기치(단옷날 사내아이들이 잉어처럼 기운차게 자라라는 뜻으로 종이나 헝겊에 그려 장대에 매달아 두는 잉어 모양의 장식-옮긴이)를 부셔서 만든 이불 사이에 낀 아이는 꼭 30년 전의, 막 10살이 된 나이다.
나는 등에 달빛을 느낀다. 마을 상공에도 , 병풍에 그려진 것하고 똑같은 달이 떠 있을 것이다. 그 빛은 또한 야에코의 목덜미를 비추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흩으러진 숨소리가 병풍 저쪽에서 들려온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고독한 처지는 내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한다. 만약 그녀의 어깨가 지금 가냘프게 떨고 있다면 그것은 이윽고 내 어깨에 전해져 올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어느 틈엔지 법사의 몸차림이 바뀌어 있다. 법사가 걸치고 있는 것은 누더기가 아니라 생선 껍질로 만든 훌륭한 옷이다. 그것은 달을 포착해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고, 아버지가 입었을 때처럼 법사에게도 잘 어울린다.
--- p.56-57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내 가슴속에는, 대략 1,000일이 되는 야에코와의 나날, 그리고 100그루가 넘는 사과나무가 남아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일부터는 나도 그 둘에 매달려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확실하게 죽어 가는 것이다. 야에코의 인생은 드디어 시작햇는지 모르겟지만. 내 인생은 끝났다.
--- p.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