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친구가 좋은 거니, 여행이 좋은 거니? 내가 봤을 때 넌 여행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뜨끔했다. 나는 그저 멀지만 익숙한 곳에 사는 친구들의 품으로 자꾸만 도망치는 것이었다.
--- p.8, 「프롤로그」
이 지루한 비행의 시간을 거뜬히 견딜 만큼 간절한 목적지가 꾸준하다면, 내가 원하던 삶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가성비 나쁜 바람이다. 젊음이 지나간 자리를 메꿀 기억이 저금해 둔 돈보다 적다면, 견딜 수 없이 후회할 것만 같다. 후회하기 싫어서 장소를 옮겨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일상을 사는 것. 그것이 내 직업이고 특기이고 세계다.
--- p.10, 「프롤로그」
나는 생각했다. 우울이란 극적인 생김새로 겁을 주지만,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뛰지 않고 걸어야 한다고. 삶을 살아 내는 것은 정직한 하루하루의 걸음이며, 행복은 우울과는 달리 스며들듯 찾아온다고.
--- p.112, 「유학생과 여행객」
느릿느릿 뉴스 속보의 한 장면처럼, 종이에 그려진 삽화처럼 그녀가 등장했다. 슈퍼스타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에 진실되고 환한 웃음. 기분까지 눈치챌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그녀를 마주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 p.155, 「패티 스미스 만나기」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서, “아무거나요”라고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물었을 때 “글쎄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내게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호감이 묻은 단어들을 쏟아 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천진난만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열렬한 탐색 끝의 발사였다.
--- p.358, 「자기만의 세계 만들기」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들이 많이 보인다면 그곳은 베를린이다. 노천카페에 침이 마르도록 수다를 떨며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면 당신은 파리에 도착한 것이다. 그에 비해 과연 어떤 장면이 런던을 실감나게 할까.
R 사운드를 죽인 무심한 악센트, 그들이 자주 쓰는 단어, 이를테면 lovely, dear, ladies와 같은 단어들, 비틀스, 이층버스, 차려입은 신사들, 노팅힐, 특색 없는 음식, 비비안 웨스트우드, 천성처럼 보이는 특유의 미소.
--- p.372, 「마치 여행이 처음이라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그냥 시작하는 것, 더불어 많이 해내는 것은 유일한 돌파구이며 해결책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행동하는 사람은 고민하는 사람을 언제나 이기는 법이다.
“많이 그려. 그러다 보면 찾게 될 거야. 넌 잘 해낼 거야, 반드시.”
--- p.400, 「정답 없음이 정답」
나는 스무 살과 다르지 않은 호기심으로 서른이 되어 보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한다. 더 모르기 위해, 더 겸손하게 세상에 파고들고 나를 배우기 위해 여행하리라. 내게 필요한 건 멋들어진 확신과 용기가 아니라 작은 것을 크게 기뻐하는 마음가짐뿐.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나는 자유롭다.
--- p.485,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