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도등론』에 다수의 간접적 형식의 주석서들이 출현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고찰해 보면, 이 논서가 일찍이 티베트불교 견수행(見修行)의 준거가 된 이래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지만, 본송(本頌)이 겨우 68송에 불과해서 의미가 심오함에 비해서 글이 너무 간략한 탓에 뜻을 충분히 파악하기 힘든 점과 또한 불교의 전체에 대한 충분한 학습과 연찬이 없는 범속한 안목으로는 삼사(三士)와 현밀(顯密)의 도차제의 요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중략)
현밀의 광대한 교법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그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오제(大恩人)의 자주(自註)인 『보리도등론난처석』에서, “글자는 많지 않으나 의미가 심대한 이 논서는 제대로 알기가 어려우니, 참된 스승님들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모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라고 설한 것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 p.23~24
조오제께서 서부 응아리(阿里)의 구게(Gu ge) 왕국에 3년간 머물면서 일차적으로 하신 일은 법왕 장춥외와의 법담을 통해서 그가 가지고 있던 대소승과 현밀의 법에 대한 갖가지의 의심을 해소하고, 불법 전체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는 데 필요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었다. (중략) 첫해는 법왕과의 문답을 통해서 법의 의심을 해소하는 데 보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법왕 장춥외의 요청으로 그 당시 티베트불교에 만연한 이견과 사설과 악행 등의 폐습을 일소하기 위해서 조오제께서 『보리도등론』을 저술하게 된다. (중략) 여기서 『보리도등론』을 저술한 배경에 대해 침·탐째켄빠의 『아띠쌰대전기』의 논설을 통해서 좀 더 상세하게 밝히면 다음과 같다.
“그 뒤 선지식 낙초·로짜와가 말하길, ‘조오제께서 티베트에 1년밖에 더 머물지 못하니 법을 청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청하도록 하라.’고 법왕 장춥외 등에게 권유하였다. 법왕께서 황금 300냥을 예물로 올린 뒤, ‘이 티베트 땅에는 부처님의 법인 대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삿되게 분별하는 사람 또는 선지식에 의해 제대로 섭수되지 못한 자들이 서로 다투고, 자기의 분별로 심오하고 광대한 법의 뜻을 [이해하고] 행함으로써 서로가 반목함이 허다하니, 그들의 의심을 없애주시길 바랍니다.’라고 간청하였다.
달리 또한 대소승 공통의 두 가지 질문과 바라밀다승의 두 가지 질문과 비밀진언승의 세 가지 질문을 드리고 난 끝에, ‘대승의 뜻을 남김없이 간결한 글에 모아 담고 있으며, 스승님께서 직접 그같이 수행하는 논전 하나를 저술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였다.”
--- p.94~96
쫑카빠 대사는 그의 『람림첸모』에서, 티베트불교사에서 전전기와 후전기에 일어났던 불교 정화의 과정을 정리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대저 설산의 땅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되던 전전기에는 길상하신 두 분의 큰 스승님이신 보디싸따와 빠드마쌈바와께서 여래의 교법을 건립하였다. 그러자 공성의 이해가 근원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방편분(方便分)을 훼멸하고, 모든 작의(作意)를 무조건 차단하는 중국의 친교사 마하연 화상이 출현해서 청정한 교법을 더럽히고 쇠락시킬 때, 대아사리 까말라씰라가 그것을 잘 절복(折伏)한 뒤, 여래의 의취를 바르게 결택해서 확립시켜 준 그 은혜는 진실로 지극히 깊고 무겁다.
[또 여래의 교법이 다시 일어나던] 후전기의 불교에서는 밀교의 비의(秘義)를 전도되게 이해하는 일부 교만한 학자들과 유가사들이 불법의 생명인 청정한 계율을 심각하게 훼손할 때, 길상하신 아띠쌰 존자께서 그것을 잘 파척(罷斥)하고, 또한 그릇되게 행하는 삿된 무리를 제복(制服)한 뒤, 전도됨이 없는 청정한 교법을 현양함으로써 설산의 모든 유정에게 커다란 은혜를 입혔다.”
--- p.129~130
먼저 『보리도등론』의 특성을 설명하면, 『까담쩨뛰(?當派大師箴言集)』에서,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에서, ‘적멸을 추구하는 성문들’이라는 등으로써 설해 보인 교계(敎誡)에 의지해서 심오하고 광대한 팔사(八事)를 연설하고, 은의(隱義)들을 아띠쌰께서 동시에 도차제(道次第)로 드러내 보인 것이 『보리도등론』이고, 그 가운데서 대승의 발심을 별도로 분리해 낸 것이 로종(Blo sbyo?, 修心)이라고 알려졌다.”라고 함과 같이, 미륵자존의 『현관장엄론』의 가르침을 아띠쌰께서 수행의 구결로 전용한 뒤, 대소승과 현밀의 모든 교법을 삼사(三士)의 도차제로 잘 안배해서, 모든 성교(聖敎)을 모순 없이 이해하고, 모든 성언(聖言)이 교계로 출현하게 하고, 붓다의 밀의를 쉽게 얻게 하고, 큰 죄행이 스스로 소멸하게 하는 네 가지의 특점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지 276행의 68게송 또는 69게송에 불과한 단문에 아띠쌰께서 생존했던 11세기 인도불교의 특색인 현밀겸수(顯密兼修)의 불교관과 그때까지 전승되던 유식과 중관 두 대승의 상사교계(上師敎誡)와 밀교의 전승교계(傳承敎誡)가 남김없이 들어 있음과 동시에 여타의 교계들로 아름답게 장엄함으로써, 장구한 인도불교의 발전과 변천의 과정에서 생성되어 전해져 오는 현밀의 모든 전승교계와 구결들을 『보리도등론』에 집약시켜 놓음으로써, 후기 인도불교가 마지막에 낳은 완벽한 수행구결로서 불멸의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 p.160~161
후전기 티베트불교는 아띠쌰의 『보리도등론』을 통해서 인도 후기 불교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특별히 티베트에서 크게 발전하고 성행한 대승의 자타상환(自他相換)의 보리심을 전문적으로 닦는 로종(修心)의 법풍을 결합함으로써, 티베트불교가 인도불교의 진정한 계승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들만의 특색을 수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각 종파별로 전승하는 법통에 의지해서 자기 종파의 교학체계와 수행체제를 정립함으로써, 인도 후기 불교의 전승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서로가 동질성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종파의 색채를 지키면서 티베트불교는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후 선지식 돔뙨빠의 까담빠와 역경사 마르빠·최끼로대의 까귀빠와 쾬·꾄촉갤뽀의 싸꺄빠를 비롯해서 그 뒤에 조낭빠와 겔룩빠 등의 많은 종파가 출현하였지만, 이러한 풍조는 바뀌지 않고 『보리도등론』의 가르침을 전승하는 많은 도차제의 전적들이 여러 종파에서 저작되면서 더욱 확고하게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 p.172~173
“범어로 보디빠타쁘라디빰(Bodhip?thaprad?pa?)은
티베트어로 장춥람기된마(Bya? chub lam gyi sgron ma)이며,
우리말로는 [보리의 길을 환히 밝히는 빛나는 등불을 뜻하는]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이다.”
여기서 글자의 의미를 풀이하면, 범어 보디(Bodhi)와 티베트어 장춥(Bya? chub)은 깨달음(覺)을 뜻하는 보리(菩提)이며, 빠타(P?tha)와 람(Lam)은 길을 뜻하는 도(道)이고, 쁘라디빰(Prad?pa?)과 된마(sGron ma)는 등불이라는 뜻이다. 논(論)은 범어 쓰뜨라(??stra)와 티베트어 땐쬐(bsTan bcos)의 번역으로, 본래 책명(冊名)에는 없으나 저자가 붙여서 존경을 표한 것이다. 본디 논(論) 또는 논전(論典)이라는 말에는 아사리가 제자에게 법을 강설하여 제자의 심사(心思)를 고쳐서 바로 잡는다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p.190
“자기 심속(心續)에 귀속되는 고통으로
어떤 이가 타인의 고통마저 모두,
완전히 소멸하길 전적으로 원하는
그 사람이 상사(上士)인 것이다.” (제5송)
이 게송의 의미를 걜찹·닥빠된둡(普稱義成)의 『보리도등론제호석』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앞에서 하사와 중사의 둘의 단계에서 자기의 마음흐름(心續)에 악도와 윤회의 고통을 결택함으로써, [악도와 윤회의] 그것들을 고통으로 깨닫게 된 계기로 인해 유정들이 악도와 윤회의 고통을 두려워함으로써, 자기의 체험을 헤아려서 어떤 유정이 악도와 윤회의 고통을 감수하는 타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대비로써 그들의 고통을 소멸하길 원하니, 그 또한 고통의 일부가 아닌 온갖 고통이 소멸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들을 욕계의 천신과 인간에 안치함으로써 악도의 고통이 일시 소멸하거나 또는 성문과 연각의 안락에 안치해서 윤회의 고통이 소멸하고 또한 대승의 도를 힘써 닦는 것을 비로소 행함과 같은 일시적으로 고통이 소멸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이 근원적으로 영원히 소멸한 붓다의 경지에 안치하기를 뼛속에서 우러나는 충심으로 전적으로 원하는 사람이 상·중·하의 사부 셋 가운데 상사(上士)인 것이다.”
--- p.226~227쪽
“칠종의 별해탈계(別解脫戒) 가운데
항상 다른 계율 하나를 지님들은,
후일 보살계를 받아 지니게 되는
복분이 있으나 달리는 있지 않다.” (제20송)
위의 제20송은 낙초·로짜와(Nag tsho lo ts? ba)의 『보리도등론주강해장엄』에서 제기한 일곱 가지의 질문 가운데 세 번째의 “별해탈계는 보살계의 기반으로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답변으로 위의 게송을 설한 것이라고 뺄망·꾄촉걜챈(稀寶勝幢)의 『보리도등론석승희공운』에서 설하였다.
위의 게송의 요점을 설명하면, “여기서 다른 계율이란 별해탈계(別解脫戒)를 말하니, 그러면 [원심(願心)을 일으킨 사부] 그의 몸에 ‘별해탈계가 필요한 것인지, 필요치 않은 것인지? 어떠한 것인가?’라고 하면, 진실에 있어서는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몸과 말의 불선의 업을 단속하는 [별해탈계와 보살계의] 공통이 되는 버리는 마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라고 걘·람림빠(rGan lam rim pa)의 『보리도등론본주(菩提道燈論本註)』에서 설하였다.
--- p.256~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