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서는 나로 하여금 산파 역할을 하게 강제하셨지만, 직접 낳는 건 금하셨네. 그러니까 정말이지 나 자신은 전혀 지혜롭지 못하며, 내가 찾아낸 것 중 그런 어떤 것이 내 영혼의 자식으로 태어난 경우가 내겐 없네. 하지만 내가 교제한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처음에는 너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다가, 신께서 그렇게 되는 걸 허용한 자들의 경우는 그 모두가 교제가 진행됨에 따라, 그들 자신이 여기기에도 남들이 여기기에도, 놀라울 만큼 진전을 보인 것으로 보이네. 그리고 그들이 나한테선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고, 그들 자신에게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출산했다는 것 또한 분명하네.
---「소크라테스, 150c~d」중에서
여보게, 실로 여기 계신 테오도로스 님이 자네 자질에 관해 잘못 가늠하신 건 아닌 것 같군. 놀라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자가 겪는 상태이기에 하는 말이네. 이것 말고 철학의 다른 시작은 없으니까.
---「소크라테스, 155d」중에서
사람들이 전하기로는, 탈레스가 천체를 관측하며 위를 바라보다가 우물에 빠졌을 때 재치 있고 재미있는 트라케의 하녀가 놀려 댔답니다. 그는 하늘의 것들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자기 앞의, 발치에 있는 것들은 알아채질 못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철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그와 똑같은 놀림을 받을 만합니다.
---「소크라테스, 174a~b」중에서
어쨌든 『테아이테토스』의 산파술적 논의는 ‘앎에 대한 앎’을 찾는 노력에서 실패하지 않았던가? 맞다. 실패했다. 그러나 …… 텍스트 말미에 산파술을 다시 끌어들이는 것은, 플라톤이 텍스트 밖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이런 말을 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독자들이여, 이제 논의는 끝이 났소. 그 의미를 곱씹어 보되,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도록 하시오. 그대들이여, 이제 책을 덮고 그대들 스스로 생각하시오!’
---「작품 안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