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너희가 날 구했어. 바보같이, 난 내가 상실한 것의 몇 배를 너희가 줄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거야. 게다가 너희가 졸업한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너희 후배들이 계속 내 앞에 있을 거야. 웬만한 상실은 흔적도 못 남길 무한대의 기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 그 귀중한 걸 나는 잊고 있었어.
--- p.88
“행복해지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교사가 되어야 해. 그래야 행복의 조건이 부족한 아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어. 뭐, 이런 뜻 아닐까?”
--- p.89
‘교사 소진’이니 ‘번 아웃’이니 하는 말이 떠올랐다. 오석 샘 같은 분마저 저렇게 숨 가빠하는 이 길을 내가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써니는 그날 밤새 속 쓰림과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다.
--- p.107
며칠이 지나도록 교권위건 인권위건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사진을 돌려 본 남학생들이 있는 학급에 수업을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어떤 말도 없었고, 시간표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런 일까지 있었는데, 학생들이 그런 사진까지 돌려 봤는데, 도대체 그 반에서 어떻게 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대하라는 것인지, 도대체 거기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다.
--- p.113
“나, 그 아이들보다, 학부모보다, 교장보다, 지금 네가 한 말이 더 아파. 와니야. 너 때문에 더 아파. 어째서 다들 나한테만 뭐라 그러는 거야? 아빠도, 엄마도, 학교도, 심지어 와니 너도. 왜 나한테?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 pp.151~152
더 소름 끼치는 건 꼼짝없이 맞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당차고 당당했던, 선생님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던 영리한 와니라도 폭력 앞에는 무력했다. 일단 뺨을 한 대 맞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추었다. 생각도 마음도 몸도.
--- p.167
학생을 바라보는 눈은 잃은 지 오래고 공문에 따라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사무 기계가 되어 버린 탓이다.
--- p.176
여기서 굳어 버리면 안 돼. 지금 소위 노는 녀석들이 다 모여서 이 상황이 어떻게 되나 노려보고 있다. 선생으로 남느냐 아니면 일개 젊은 여자 취급을 받느냐의 기로다. 와니는 써니의 아픔을 통해 알고 있다. 이 나라는 여교사를 교사 이전에 먼저 여자로 취급한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제법 성공했다는 남자들이 방송에서 학창 시절 젊은 여교사를 선생이 아니라 연애 대상, 아니 성적 대상으로 상상했던 기억을 추억이랍시고 주절거리며 낄낄대는 나라라는 것을.
--- p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