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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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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존 도커 저 / 신예경 | 알마 | 2012년 08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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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542g | 153*224*30mm
ISBN13 9788994963426
ISBN10 899496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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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존 도커 John Docker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인문학 연구센터의 연구전담 교수다. 지난 몇 년 동안 제노사이드 연구에 집중했는데,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발전해온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제노사이드 연구’에 참여해왔다. ‘새로운 제노사이드 연구’란 제노사이드의 정의를 협소하거나 배타적인 의미로 한정짓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제노사이드 연구를 ‘창시’한 폴란드계 유대인이며 미국의 법학자이자 역사가인 라파엘 렘킨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제노사이드 연구’는 비교연구를 추구하고, 세계 역사에 나타난 정착형 식민주의 현상과 제노사이드의 관계를 탐구하며, 새로운 접근법과 관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렘킨은 1944년에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으며, 자신의 모든 저작을 통해 제노사이드의 개념을 한층 광범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커다란 변동을 일으킨 사건이나 행위를 비롯하여 식민지화 같은 장기적으로 계속된 과정을 모두 포괄했다. 또한 그는 법학자로서 제노사이드를 제지하고 방지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국제법이 필요하다고 주창하여,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온 자연법 개념에서나 초기 근대 유럽 국가들의 법에서, 그리고 현대의 여러 법의 총합체로서 국제법은 그동안 정복, 식민지화, 제국, 제노사이드에 협력해왔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이러한 법률 이념에 맞서 렘킨은 획기적인 도전을 펼쳤고,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걸쳐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의 비인도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법의 새로운 방안을 조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은이 존 도커는 뉴욕에 있는 미국유대인역사협회에서 제노사이드의 ‘추정 역사’ 폴더에 담겨 있던 렘킨의 에세이들을 조사하던 중 ‘제노사이드 사건들의 개정 개요’라는 주제의 목록을 발견했는데, 이는 렘킨이 제노사이드를 역사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범주를 세분화하여 작성한 기록이었다. 이 책은 렘킨의 주제 목록에 영감을 받아 집필된 결과물이다. 존 도커의 저서로는 『1492: 디아스포라의 시학』(2001)과 『포스트모더니즘과 대중문화』(1994)가 있고 앤 커소이스와 공동저술한 『역사는 허구인가?』(2005)가 있다.
역자 : 신예경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영문학과에서 Renaissance/Early Modern Literature를 전공하며 박사과정을 수학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번역에 매료되어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번역가 모임인 ‘번역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 『3초간』 『이노센트』 『비트겐슈타인처럼 사고하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표현하라』 들이 있으며, 『중년의 철학(가제)』 『세계의 명화(가제)』 『죽음을 부르는 의사(가제)』 『존 카터: 화성의 장군(가제)』 들이 출간 준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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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제시할 주장은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제노사이드 연구 분야에 직접 참여하면서, 특히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의 법학자이자 역사가인 라파엘 렘킨(1900∼1959)의 저작들을 탐구하면서 도달한 결론이다. 렘킨은 1944년에 펴낸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Axis Rule in Occupied Europe》에서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렘킨의 주장에 따르면, 살해 사건이 개인 간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듯, 제노사이드는 인간 집단이 상대 집단을 다루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홀로코스트가 인간사를 휩쓸고 간 뒤 수십 년 동안, 그 공포로 인해 앞으로는 제노사이드가 벌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당시로서는 제노사이드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등지에서 제노사이드가 발생했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토착민들에게 제노사이드를 가한 뒤 21세기까지도 여전히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인류 역사에서 개인 간의 살해와 더불어 집단 간의 제노사이드가 언제나 발생해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렘킨의 통찰은 필연적으로 다시금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이 책에서는 렘킨이 역사를 재개념화하면서 담아낸 암울한 암시, 즉 폭력은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고유 특성이라는 주장에 대해 살펴본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제노사이드로 물든 폭력의 역사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 왔다.. --- pp.19~20

우선 인간의 역사를 제노사이드의 역사로 본 라파엘 렘킨의 관점부터 살펴보자. 이 장을 비롯하여 이 책 전반에 걸쳐 제노사이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렘킨이 최초로 규정한 제노사이드의 정의가 광범위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렘킨 이후의 학자들은 1960∼1970년대에 팽배했던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감안하여 ‘제노사이드’란 정부가 주도한 대량 살인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여 정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렘킨은 유명한 저서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1944) 제9장에서 제노사이드의 정의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렘킨이 그 내용을 구상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1939년에 렘킨은 쫓기듯 폴란드로 피난을 떠났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렘킨은 오로지 집필 작업에만 몰두한 끝에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를 완성했으며, 당시 갓 창단한 유엔위원회를 설득하여 제노사이드를 법적으로 인식해 금지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각종 인권 토론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결국 1948년에 유엔이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승인하도록 유도했다. 제노사이드협약은 렘킨이 《추축국의 유렵 점령지 통치》에서 내린 정의에 비해서는 좁은 개념이지만 상당히 포괄적인 편이어서 단지 대량 살해에만 국한된 내용은 아니었다. --- pp.36~37

《곰베의 침팬지》 제17장 “영역” 편에서는 한 집단이 카사켈라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다른 계곡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드러낸 공격성과 폭력을 주로 다룬다. 이와 동시에 땅과 영역에 대한 욕구, 제노사이드, 전쟁, 낯선 암컷과 때로는 자기 새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구달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번 장의 기본 전제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한 집단을 가장 잘 연구하려면 그 집단 하나만을 보지 말고 다른 집단과의 상호작용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구달은 침팬지의 사회조직에 나타난 특정한 양상이 카사켈라 집단이 분리될 때 일어난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간주한다. 남아 있는 카사켈라 공동체에는 수컷 전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남으로 이주해 지금은 이웃으로 지내는 신생 카하마Kahama 공동체에는 수컷의 수가 적었다. 대부분의 영장류 집단(예를 들어 곰베의 개코원숭이)과 달리, 침팬지는 일정하게 무리를 지어 이동하지도 않고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그 바람에 혼자 있던 수컷이 이웃 집단의 수컷들과 느닷없이 마주친다거나 수컷 한 무리가 혼자 남은 암컷을 기습하기도 한다. 수컷 침팬지들은 태어난 집단에 남는 반면, 암컷 침팬지들은 무리를 떠나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무리로 이주한 어린 암컷들이 상주하던 암컷들의 난폭한 적개심을 감당해야 할 때도 많다. --- p.43

《역사》의 프레임 스토리를 살펴보면,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한 아테네인, 아니 우세한 그리스 해군은 이오니아 섬과 아테네 동의 도시국가에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이곳은 페르시아가 예전에 제국의 일부로 다스리던 지역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새로운 속국을 쟁취하고 나면 승리를 거둔 아테네인들에게는 특정한 가치관이 형성된다. 그리스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공물을 뜯어낸 테미스토클레스처럼 약탈을 일삼는 장군들의 경우에는 이런 가치관이 특히 두드러진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관이란 탐욕, 욕심, 오만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마저 기꺼이 저버릴 수 있는 마음이다(제8권 111∼112장).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아테네인은 제국을 건설하여 지켜나가면서 이제 새로운 역사적 상황을 맞이한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아테네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새로운 속국들의 미래는 말할 것도 없이 아테네의 미래에 암울한 징조가 드리워진다. 그뿐 아니라 아테네는 물론이고 그 새로운 제국적 위상과 자아상을 상대해야 하는 그리스의 다른 나라에도 불길한 문제들을 떠안기는 셈이 되었다. --- p.79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에서 숭배한 것은 우리가 근대에 들어 ‘지배 민족’이나 인종민주주의로 인식했던 것들이다(인종차별 정책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시온주의를 옹호하는 이스라엘 같은 정착형 식민지 국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테네에서 참여 시민이 될 자격이 있는 소수 집단은 오직 아테네의 남자이며, 제국의 속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민주국가는 언제든 “지배 민족”이 될 운명이었다. 제국을 건설하고 싶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결코 포괄적 민주국가는 아니었으며 제한적이고 조건부적인 시민권만 인정되었다. 이러한 민주국가는 도덕성을 배제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지표인 고매한 가치관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 --- p.83

3장 제노사이드와 트라우마: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
렘킨은 “제노사이드를 유발한 상황”의 항목으로 “제노사이드 가해자 집단의 제노사이드에 관한 가치관 진화(외국인에 대한 경멸 등)”를 포함시킨다. 이와 관련해, 《아가멤논》에서 귀환한 정복자 아가멤논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대하는 말투를 보면 남성적인 전사의 가치관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기준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장에서 남자는 불멸의 명성을 얻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트로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 직접적인 명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전사가 아닌 여성을, “페르시아” 방식으로 권력에 “알랑거리며” 사치를 일삼느라 스스로 남자다움을 잃어버린 트로이 사람을 멸시한다. 만일 프리아모스가 정복자였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 상상해보라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질문을 받고 아가멤논은 경멸하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야 당연히 자수를 놓은 붉은 비단 위를 걸어갔을 테지.” 렘킨이 “제노사이드 가해자”라는 항목에서 언급한 “의도”와 연결해보면, 아가멤논은 트로이의 도시와 국민 그리고 트로이의 세계와 우주를 멸망시키려던 의도가 철저하게 이행되자 대단히 기뻐한다. --- p.107

안드로마케 역시 헤카베처럼 극단적인 공포와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동안 제노사이드를 겪은 일반적인 피해자의 반응을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이 모습은 렘킨이 “피해자 집단의 반응-적극적 반응”이라는 항목에서 언급한 “저항”과 일치한다. 안드로마케는 노예로서 추방당한 뒤 첩이자 종이 되어버린 여인들과는 다른 종류의 의식을 보인다. 과연 안드로마케는 어떤 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가? 그리스 여인들로 구성된 코러스는 “당신이 아시아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리스인이라고 말하며 곤경을 겪은 안드로마케에게 연민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안드로마케가 테티스 여신의 성지에서 은신처를 구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에 저항하는 일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안드로마케가 트로이에서 잡혀와 스파르타 공주인 헤르미오네의 노예가 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코러스는 어떻게 “안드로마케가 헤르미오네에게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느냐고” 묻는다. --- p.119

4장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플라톤과 키케로의 《국가론》
키케로는 로마의 공화정이 서서히 붕괴되던 시절 법정 변호사, 연설가, 집정관, 정치철학자, 저술가로 활동한, 로마 역사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는 정치인이자 지성인이었다. 여행 경험이 풍부했고 그리스 학문에 대단히 조예가 깊었으며 아테네와 로도스 섬에서 철학과 수사학을 공부한 경험도 있었다. 키케로의 《국가론De Republica》과 플라톤의 《국가론Politei?》은 모두 정치적 지혜의 본질과 국가의 이상적 특성을 다루며 철학으로서의 문학과 문학으로서의 철학에 담긴 미학적 성격을 공유하므로 분명히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이 저술들에는 각기 수많은 대화자가 등장하여 질문과 답변을 나누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러나 이 대화는 한층 광범위한 문화의 역사, 장르의 역사, 카니발의 역사와 연결된다. 키케로의 《국가론》의 미학적 특성과 수사학적 특성을 파악하려면 플라톤의 《국가론》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며, 그 포괄적 특성이 플라톤의 다른 텍스트, 특히 《향연Symposium》과 어떻게 연결되고 또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 pp.143~144

플라톤의 《국가론》과는 대조적으로, 키케로의 《국가론》은 훨씬 균형 잡힌 생각을 담은 텍스트다. 근본적인 질문들, 특히 인간이 제국의 건설과 소유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를 나란히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층 다성적이며 대위법적이다. 원래는 6권으로 구성되었으나 고대를 지나면서 부분적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책의 전문은 발표한 지 600년 만에 소실되었고,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보존되었다가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에 널리 알려졌다. 특히 “스키피오의 꿈”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에르 신화”처럼 키케로의 《국가론》 마지막 권의 대미를 장식한다.
19세기 초 1819년에 《국가론》의 일부가 원본이 다소 교정된 형태로 바티칸의 서고에서 발견된 적도 있었다.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국가론》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기원전 129년의 유명한 인물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집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스키피오는 가이우스 라일리우스라는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탁월한 모습을 선보인다. 세 번째 등장인물은 역시 스키피오의 친구인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로 흥미로운 방식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때로는 스키피오의 말에 기꺼이 동의하다가도 갑자기 고전적인 수사법을 사용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세 사람의 대화는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며, 대화의 틀을 짜넣기 위해 맨 앞에는 서문이 달려 있다. --- pp.151~152

5장 피해자학과 제노사이드: 〈출애굽기〉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출애굽기〉를 탈식민지와 명쾌한 디아스포라 이론의 측면에서 바라본 오늘날의 비평은 에드워드 사이드에서 출발했다. 1986년 사이드는 이제 탈세속적 관점의 고전이 된 탁월한 논문 〈마이클 왈저의 《〈출애굽기〉와 혁명》: 가나안식 읽기Michael Walzer’s Exodus and Revolution: A Canaanite Reading〉에서 고통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는 〈출애굽기〉의 위험한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이드의 지적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출애굽기〉의 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정복되고 찬탈될 약속의 땅에 이미 거주하는 가나안족을 타도하거나 심지어 몰살하겠다는 전제로 한 민족에게 자유를 불어넣는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사이드는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당한 팔레스타인을 중동의 현대판 가나안으로 판단한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역사에서 〈출애굽기〉가 지나치게 모범적인 사례로 입증된 탓인지, 여기에 힘입어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인은 북미 원주민을 죽였고 남아프리카의 보어인은 아프리카의 광활한 영역에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주했다. --- p.176

카르타고에 도착한 메르쿠리우스는 “모든 신의 지도자이며 그 신성한 힘으로 하늘과 땅을 움직이게 만드는” 유피테르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이네이아스의 “숙명”임을 재빨리 일깨워준다.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의 신이 히브리인에게 가나안 땅을 당연한 유산처럼 넘겨받으라고 말했듯이, 메르쿠리우스 역시 아이네이아스에게 아들이자 상속자인 아스카니우스가 언젠가는 “로마의 땅과 이탈리아 왕국”을 상속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아이네이아스는 메르쿠리우스의 말을 듣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그토록 황홀하게만 여겼던 카르타고를 두고 멀리 떠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디도가 “철저하게 배신당해 너무도 쓸쓸한” 기분이 든다고 말하자 아이네이아스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누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결국은 유피테르의 경고를 떠올리면서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고는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괴롭게 만드는 불평일랑 이제는 그만두오. 이탈리아를 찾아 떠나는 것은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오.” 그러므로 이탈리아로 떠나느라 아이네이아스가 희생해야 할 것은 비단 디도와 나눈 사랑과 열정만이 아니라 그의 형성(Bildung, 형성, 교양, 도야로 번역되며, 근대의 지배적 정신 사조인 계몽주의 이래 인간을 규정하는 중요 개념으로 이해되어왔다. 특히 자율성에 근거하는 주체성 개념이나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 자신, 자연, 세계를 창조하는 형성 능력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다-옮긴이), 기량, 자율적으로 체득한 윤리 체계를 함양할 능력과 욕구, 아버지 신이 결정한 운명을 바꿀 자유도 포함된다. --- p.198

6장 로마의 제국주의: 타키투스의 《아그리콜라 전기》와 《게르마니아》
메니페아식 풍자 텍스트인 《아그리콜라 전기》와 《게르마니아》에는 명예로운 제국주의·식민주의 통치에 대한 담론과 비판적 생각 사이에 긴장감이 존재한다. 여기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은 로마의 절대권을 경험한 토착 인물과 서술자 자신으로서, 이들은 담론을 시험하고 담론에서 정보를 얻어낸다. 양측의 긴장감은 조상에게서 계승한 다양한 역사적 이상 간의 갈등, 그리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 서술에서 드러난 사해동포주의, 반인종중심주의, 세계주의와 신의 가호로 제국의 영광을 이룬 로마가 세계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경쟁자들의 생각 간의 갈등처럼 저절로 해결되기도 한다. --- p.218

《아그리콜라 전기》의 대항 서사에는 식민지 개척자와 식민지 토착민 모두에게 노예제가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뜻하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이 담겨 있다. 위에서 살펴본 강렬한 연설에서 그대로 드러나듯이, 브리튼인에게 노예제란 로마의 통치에 대한 굴복이자 자유, 독립, 고유문화의 손실을 의미한다. 타키투스의 기록을 잠시 떠올려보면, 아그리콜라는 아일랜드를 점령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만약 브리튼이 로마의 군대에 완전히 둘러싸인다면 ‘자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제24장). 분명, 아그리콜라에게 자유란 오직 제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식민지인에게 자유의 욕구를 조금이라도 부추기면 독립과 완전한 자유에 대한 욕망만 더욱 타오르게 할 뿐이다. 이는 제국의 통치와 지배를 위협하는 일이다. 식민지 개척자 집단에게는 자유가 당연하지만, 식민지 토착민에게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은 실제 서양의 식민지화 역사에서 대단히 오랜 전통으로 자리했다. --- p.228

7장 명예로운 식민지 개척자
《인문주의와 아메리카》에서는 1500∼1625년 사이의 식민지 건설 계획이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공화주의의 미덕을 강조하는 신로마주의의 드높은 이상과 그리고 현명한 통치의 개념과 이타적인 도덕성을 한데 물려받아 복잡하게 뒤섞은 것이다. 여기서는 언제나 생각이 행동과 결합한다. 관조적 삶이 활동적 삶과 얽혀 있다는 의미다. 19세기처럼 필연적으로 진보를 믿었던 후대의 생각과는 달리,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순환적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인문주의는 영광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식민지화에 반대한다. 식민지 원주민들을 정당하게 대하지 않았으므로 식민지화를 추구한 일은 잘못이며, 특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식 처세술로 이익을 추구했다면 본국이나 식민지 개척자의 도덕성 타락이 수반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인문주의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낙후한 야만인이라고 단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토착 문화의 단순함”과 “그 문화적 관례의 불쾌한 본질”이 드러나는 특성에 대해 종종 언급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통치 체제, 정열적인 활동성, 웅변술, 용맹함 면에서 “전통적 윤리”를 지켜가는 모습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 pp.240~241

바흐찐식으로 표현하자면, 《템페스트》는 한 가지 입장에서 이상과 행동을 판단하지 않고 기괴한 공상을 펼친다는 점에서 메니페아적이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성적이다. 타키투스가 아그리콜라라는 인물을 창조하면서 그랬듯이, 셰익스피어는 메니페아식 풍자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와 캘리밴이라는 인물을 통해 명예로운 식민지화라는 철학적 사상을 구현하여 탐구한다. 프로스페로는 현자 혹은 스스로 현자라 밝히는 사람이자 마법사요 망명자요 섬의 자칭 지배자이며, 캘리밴은 예전에 섬의 유일한 거주자였으나 지금은 프로스페로의 새로운 부하가 되었다. 《템페스트》는 제노사이드, 식민지화, 정복을 재현하고 제노사이드, 식민지화, 정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통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이 전통에 관해서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 서술,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비극, 〈출애굽기〉 〈여호수아서〉 〈사사기〉 같은 성경 이야기, 키케로의 《국가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타키투스의 《아그리콜라 전기》와 《게르마니아》 등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이런 전통에서 캘리밴은 외부의 정복자가 안겨준 정복과 식민지화에 격렬하게 저항해온 인물들, 특히 《아그리콜라 전기》의 브리튼 지도자 칼가쿠스의 모습을 되풀이한다. --- p.265

8장 계몽주의는 홀로코스트의 기원인가
바우만은 제임스 카예와 보 스트라스가 편집한 문집 《계몽주의와 제노사이드, 근대성의 모순Enlightenment and Genocide, Contradictions of Modernity》(2000)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논문 〈기억해야 할 의무-하지만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The Duty to Remember-But What?〉에서 《근대성과 홀로코스트》의 결론을 더 분명하게 고쳐 말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더이상 홀로코스트를 “특이하고 일탈적인 사건”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오히려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아렌트가 보았던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의 의도는 아도르노나 아렌트가 노골적인 미완성 과제를 남겨두고 간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바우만은 동료 사회 사상가들에게 홀로코스트가 추상적 개념을 숭상하고 사람을 범주화하며 비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근대 생활의 구조와 논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촉구했다. 근대의 제노사이드, 즉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르완다사태처럼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발생한 홀로코스트의 제노사이드는 “규정하고 분류하는 작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근대 관료주의의 최고 업적”이다. --- pp.276~277

스피노자와 톨런드의 차이는 모세와 그의 율법이 남긴 가치와 유산을 평가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두 사람은 모두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존경한다는 점에서 소시니안파(Socinians,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에 폴란드에서 꽃피운 신학 운동으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선재, 원죄, 구속의 만족설 등을 비성경적이며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옮긴이)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달리 톨런드는 스스로를 “최고의 입법자”라 부르며 〈출애굽기〉의 모세를 추종한다고 공표할 때도 많았다. 톨런드는 영국의 제도권 기독교가 시민사회에 행사하는 권력, 율법적 관례, 권리 침해에 대립할 만한 자연적인 인간의 종교를 상기시킴으로써 〈출애굽기〉와 이집트학을 조화시키기를 원했다. 더욱이 톨런드의 셈족 애호주의는 유대교에 국한되지 않고 이슬람교까지 확장된 반면, 이슬람교에 대한 스피노자의 반응은 기껏해야 무관심한 수준이었다. 스피노자는 이슬람교의 신학적 관념과 동시대 유럽의 종교 역사에서 차지했을 법한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흥미가 없었지만,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 체제에 인상을 받은 것처럼 이슬람의 권위주의 체제에는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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