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상에 공책을 펼쳐 놓고 유리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유리는 의자를 끌고 와 내 왼쪽에 앉았다. 순간 샴푸 향기가 났다. 유리는 셔츠의 가슴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꼈다.
“어머? 이거 오빠 글씨야?”
유리는 공책을 들여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그건 말이야, 오빠 친구가 내준 퀴즈야.”
“우아, 글씨 예쁘다. 꼭 여자가 쓴 것 같아.”
‘여자 쓴 것 같은 같은 게 아니라 여자 글씨야.’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수가 외톨이일까?
101 / 321 / 681 / 991 / 450 / 811
“오빠, 이건 무슨 퀴즈야?”
“이건 외톨이 찾기 퀴즈라는 거야. 수가 여섯 개 있지? 101, 321, 681, 991, 450, 811이야. 그런데 이 수 중에 ‘외톨이’가 딱 하나 있어. 그걸 찾는 퀴즈야.”
“간단하잖아? 450이지.”
“맞았어. 외톨이는 450이야. 왜 그런지 알겠어?”
“다른 수는 전부 1로 끝나는데 450만 1로 끝나지 않잖아.”
“맞아. 그러면 다음 퀴즈는 어떨까? 이것도 내 친구가 내준 거야.”
어떤 수가 외톨이일까?
11 / 31 / 41 / 51 / 61 / 71
“어……. 전부 1로 끝나네?”
“그래. 첫 번째 퀴즈와는 다른 규칙이야. 퀴즈마다 외톨이가 되는 이유가 달라.”
“……모르겠어. 오빠는 알겠어?”
“응, 난 금방 알았어. 외톨이는 51이야.”
“응? 어째서?”
“51만 소수(素數)가 아니거든. 51=3×17로 소인수분해가 가능하니까 51은 합성수야. 나머지는 전부 소수고.”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그러면 다음 퀴즈를 풀어 보자.”
어떤 수가 외톨이일까?
100 / 225 / 121 / 256 / 288 / 361
“으음. 오빠, 이건 256이 외톨이야. 다른 것들은 같은 숫자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만 안 그래. 100은 00이 붙어 있고, 225는 22가 붙어 있고, 288도 88이 붙어 있잖아?”
“응? 하지만 121은 1이 붙어 있지 않은데?”
“아……. 그건 1이 붙어 있지는 않아도 두 개 있으니까 괜찮아.”
“그러면 361은 어쩌고?”
“아, 그런가…….”
“이 퀴즈에서 외톨이는 288이야.”
“288? 왜? 어떻게?”
“288만 제곱수가 아니거든. 그러니까 288만이 정수의 제곱의 꼴이 아니야.”
100=102 225=152 121=112 256=162 288=172-1 361=192
“……있잖아, 오빠. 그런 건 아는 사람이 더 이상해.”
“이건 어떨까? 오빠는 이 문제 푸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어.”
어떤 수가 외톨이일까?
239 / 251 / 257 / 263 / 271 / 283
“세상에, 하루 종일 계속 이걸 생각했단 말이야?” 유리가 말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코코아를 가지고 오셨다.
“아, 잘 먹겠습니다.”
“발은 괜찮니?” 어머니가 유리에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발은 왜?” 내가 물었다.
“가끔 발꿈치 부분이 미칠 듯이 아플 때가 있어.” 유리가 내게 말했다.
“성장통인가…….”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듯 혼잣말을 하셨다.
“괜찮아요. 내일 병원에 가 보기로 했거든요.”
“그래? ……그나저나 이 방에 유리가 좋아할 만한 책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내 책장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저, 오빠가 보는 책들 좋아해요. ……아, 이 코코아 참 맛있네요!”
“고맙다. 저녁도 먹고 가려무나.”
“네~. 만날 이렇게 신세만 지네요.”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니?” 어머니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물으셨다.
“글쎄요……. 몸에 좋은 음식이 좋아요.”
“그러면서 자극적인 것이요.” 내가 말했다.
“그러면서 이국적인 것이요.” 유리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것이요.” 나도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니, 요것들이……. 좋았어! 너희들의 그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요청에 부응하는 요리를 만들어 주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방을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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