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문을 열어 준 학교는 오렌지 중심가에 있었다. 이곳에서 추천해 준 또 다른 사립학교는 오렌지의 동쪽 끝에 가까웠다. 모친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구할 계획이었다. 또,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당분간은 나하고 누나를 차로 데려다줘야 했다. 오렌지에는 지하철도 없고, 버스는 뭐 ‘가뭄에 콩 나듯’ 다니는 수준이었다.
이게 미국이라니! 아메리칸 드림은 어디 갔어? 겨우 교통 때문에 학교를 선택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니!
사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양보의 미덕, 이런 건 절대 아니고.
뭐랄까, 일단 나는 확고한 꿈을 꾸고 미국에 온 게 아니잖아?
내가 무슨 아이비리그 가서 미국 사회의 성공한 유학생이 되어서 금의환향, 이런 게 아니니까. 나는 그냥 어어어, 왔는데 그때도 여전히 어어어, 의 심정이었다. 앞으로도 미국에서 왓왓왓,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고.
다만 미국에서 나의 확고한 목표는 하나 있었다.
‘친해지면 끝.’
근데 여기 말끔한 교복을 입고 우아하게 걷는 애들을 보니 뭔가 친해지기 어렵겠다고 느껴졌다.
“그 학교, 교복 입어요?”
내가 묻자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모르겠어. 근데 여기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대. 명문 사립고 이런 거 아니고. 원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이었대. 교장 선생님 마인드가 10대 아이들을 자유롭게, 즐겁게 해주자는 거래.”
아, 그러면 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치원에서는 원래 짤랑짤랑, 으쓱으쓱하면서 다 친구하니까.
“나도 거기 갈래. 내가 양보하지 뭐.”
물론 내 말을 들은 이태리나 모친이나 그리 감격한 표정은 아니었다.
일단 두 사람이 꿈꿨던 환상의 마법학교에서 쫓겨난 셈이니까. 첫 번째 아메리칸 드림이 철퍼덕.
--- 「사립학교와 유치원」 중에서
“근데 형은 여기 오자마자 운 좋게 오렌지에 있는 두 개의 한국을 봤네. 남한, 북한 아니고, 냉면, 라면.”
“냉면, 라면? 그게 뭐야?”
‘냉면’, ‘라면’은 이곳 오렌지의 유학생들 중 두 개의 큰 파벌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라면과 냉면 모두 이곳 오렌지의 외국 애들과는 잘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만의 무리를 지어서 다닌다고 했다.
‘라면’들은 이곳 오렌지의 본토 애들보다 더 화려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들만의 친목을 만들었다. 그중에는 영어를 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못하는 애들도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어울리고 노느냐가 중요했으니까. 유학 생활의 외로움 같은 거 금방 잊어버릴 수 있게. 함께 우우 몰려다니면서 놀고, 떠들고, 즐기는 아이들이었다.
반면 ‘냉면’들은 미국에서의 생활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일단 고교 생활은 패스고, 좋은 대학이 먼저였다. 당연히 냉면들은 외국인이나 라면들과 잘 섞이지 않았다. 그들 은 웃지도 울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공부만 파고들었다. 그들의 절친은 모두 한국에 있다고 했다. 싸이월드, 이메일로 냉면들을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그들의 진짜 친구인 셈이었다.
“너는 라면이야?”
민형이의 말을 듣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민형이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라면은 아니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냐. 너무 어릴 때 와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민형이의 얼굴에 잠깐 스쳐가는 다른 얼굴을 봤다.
마치 이곳 오렌지 유치원의 연못에 비친 다른 얼굴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무리의 애들하고 가깝지만, 어떤 무리에도 들어갈 순 없어. 그냥 가끔 발밑이 둥둥 떠 있는 거 같고 그래. 내가 보기엔 형도 좀 그런 것 같은데.”
“그런가?”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내가 좀 바보 같았다.
확실히 나는 이곳에서 라면이 될 수는 없었다.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한국에 절친들이 있으니까 냉면인가? 하지만 냉면들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팔자 좋게 살고 싶은 거잖아? 결국 나는 냉면도 아닌 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민형이와 비슷한 거 같지도 않았다. 되게 친절한 아이였지만, 나는 그 친절이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 이따 같이 점심 도시락 받으러 가자. 맛없는 피자하고, 퍽퍽한 샌드위치. 둘 중 하나야. 둘 다 맛없으니까 기대는 하지를 말고.”
오렌지 유치원에 식당은 없었다. 학교 건물 내부 곳곳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고, 외부에 정원과 운동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샌드위치나 피자를 들고 점심을 해결하면 끝이었다. 그리고 민형이 말대로 그날 나온 페퍼로니 피자는 진짜 맛이 없었다. 씨발, 누가 피자의 천국이 미국이래? 이 오렌지 유치원에 지옥의 쓰레기통에서 나온 피자가 있는데.
--- 「첫 등교」 중에서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라고 묻지 않았다. 나도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살고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졸린 눈으로 집과 학교만 오가던 내가, 영어로 일기를 쓰 고 영어 강의를 한 학기에 3개나 들었다. 물론 그래 봤자 우등생 민희가 하는 노력에 비해서는 ‘세 발의 피’라는 걸 알았다.
“잘할 거야. 응원한다.”
민희가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고마워.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이야. 왜냐면……. 다들 내가 잘할 거라고 믿기만 하고……, 그래, 실제로 잘해 왔으니까.”
민희는 갑자기 매운 걸 먹은 사람처럼 “스읍” 소리를 냈다.
“솔직히 말하면…….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그러면서 민희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중학교 때 내 꿈은 공부 때문에 미국에 오는 게 아니었어. 사실 유치하지만, 밴드 보컬이 내 첫 번째 꿈이었거든. 그래서 미국에서도 지칠 땐 이 나라에 순회공연 왔다는 상상을 해. 아까 프롬에서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나의 공연장이라고 생각했어……. 말하고 보니까 좀 창피하다.”
나는 “픽” 웃었다. 민희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 비웃은 거 아니고 나도 그래 가지고. 난 미국에 와서 처음에 여기는 좀비가 있는 라쿤시티라고 상상했으니까.”
“그래, 맞아. 미국에서 살려면 한쪽으로는 나사를 조여 주고, 또 어떨 때는 나사를 좀 풀어 줘야 하니까. 안 그러면 발로 밟은 코카콜라 캔처럼 머릿속이 찌그러져 버릴지도 몰라.”
--- 「프롬 파티」 중에서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는 이처럼 익숙한 공간을 떠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10대의 이야기다. 지금 같은 시대에도 쉽지 않은 10대의 삶인 것이다. 그곳의 고등학교는 한국과는 많이 다른 시스템이지만 아이들은 역시나 또래의 비슷한 고민과 외로움을 안고 산다. 물론 극강의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 고교생들의 학창 시절과 똑같을 수는 없다. 또한 이미 10년 전의 이야기라 지금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지금의 10대가 2천 년대 중반, 미국에서의 10대 유학생의 삶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독특한 재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메타버스의 우주를 통해 지금은 유튜브로만 볼 수 있는 싸이월드와 원더걸스, 빅뱅이 인기 있던 그 시절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더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이건 미국이건, 10대의 삶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풋풋하고 그러면서도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소설 속의 태조도 그랬고, 지금의 10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서 태조처럼 아메리카 생존기는 아니더라도 각자 나름의 인생 생존기를 배워 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가족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런 시기니까 말이다. 나는 소설 《나의 아메리카 생존기》에 10대들이 겪고 있는 인생 생존기의 고민을 담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최초로 너무도 심각하고, 진지하고, 어쩌면 비장한, 그리고 늘 우정에 진심인 그런 시절은 모두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10대와 학부모,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각각 공감하는 지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10대의 주인공을 통해 청소년과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세계를 열고 싶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