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삶에 대한 단상斷想
『포수 김우종』은 실존 인물과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독자의 관심을 끈다. 17세기 박계숙, 박취문 부자의 부방赴防 기록인 『부북일기赴北日記』에 서술된 저자 박취문의 1년간 행적을 스토리 전개의 근간으로 삼아 박시문이라는 무관을 등장시켰으며, 19세기 박래겸의 공무 기록인 『북막일기北幕日記』에 언급된 신비로운 노인 김우종을 주인공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작품에 생동감을 더했다. 조선 시대 초급 군관들의 근무 형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데 『부북일기』는 일종의 파견 근무인 부방 생활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북막일기』는 1827년 7월부터 9개월간 박래겸이 함경도 북평사로 근무할 때 기록이다.
주인공 김우종에 대해서 『북막일기』에는 본래 제주인으로 함경도에 들어온 지 이백 년이 되었으며, 글자를 모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나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볼 때 삼백 살이 넘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적혀 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싶지만 도가道家 계통에서는 흔한 일이다. 지금도 지리산이나 계룡산에 호적에 오르지 않은 채 수백 년을 살고 있는 도인들이 실존함을 주장하기도 하니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비록 몇 백 년의 나이 차에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인물인 김우종과 박시문을 작품의 중심에 두었으며 다양한 성향의 주변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시련과 역경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특히 전란과 학정 속에서 자행되는 관리들의 탐학과 그 속에서 울분을 삼키며 근근이 버텨 나가는 민중의 참상을 쌍령 전투, 나선 정벌과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포수 김우종』이 우리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시간에 대한 철학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극복한 영원한 생명이 죽음이 예정된 유한한 생명보다 행복한가라는 물음과도 상통한다. 영화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를 보면서 죽지 않거나 세월을 역행하는 삶이 결코 행복이라는 단어와 등식을 이루지는 않음을 깨닫게 되듯이 불사신 김우종의 인생은 실로 상처투성이다. 삶은 고해苦海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는 슬프고 힘든 일을 더 많이 겪게 마련이다. 이러한 생의 고통을 김우종은 보통 사람보다 몇 배나 더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뒤의 외로움은 늘 그의 몫이었다.
이미 살아온 세월이 수백 성상이건만 여전히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노라는 김우종의 독백은 인생이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모르는 것이 늘어만 간다는 이치를 말해 준다. 길어야 백년 안에 끝내는 생사의 숙제를 남들보다 몇 갑절은 더 했건만 신선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편히 지낼 수 있는 신분을 얻지도 못한 채 민중들 속에서 부평초마냥 떠도는 김우종의 형상은 늘 갈망과 절망을 반복하다가 끝내 정착지를 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우리네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렇듯 그의 마음 한편을 차지한 지난 세월의 음영이 작품 행간에서 읽힐 때면 독자는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또한 이 소설은 초라했던 한 인물이 몇 세대를 뛰어넘는 세월 속에서 단련되고 노련해지며 성숙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름 모를 제주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아비에게 버림받고 멍석말이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열여섯에 뭍으로 나온 김우종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였다. 십대 중반의 모습에서 성장을 멈춘 채 앞가림조차 못하던 그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익혔다. 이러한 자각과 배움은 그의 외모까지도 변화시켰다. 『포수 김우종』과 『북막일기』에서는 ‘새벽별 같이 번쩍이는 두 눈동자’, ‘어린애처럼 부드러운 머리털’, ‘민첩하고 사나운 주먹’, ‘나는 듯한 걸음걸이’, ‘열 살 아이 몸집이나 대단한 식성’ 등으로 김우종의 특성을 묘사했다. 그의 이러한 외양은 세월의 연륜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소설에서 언급되었듯이 ‘나대고 깝죽거리지 않으며, 조용히 뒷전에 머무는 처신’, ‘중심에 이르지 않고, 언저리에 숨어서 눈치껏 하는 행동’, 이 모든 것이 그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처세의 비결인 만큼,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필부들이 보신과 영생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필히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전개되는 숨 가쁜 스토리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은 물론이요,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생의 철리哲理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 정시열 (영남대학교 교수)
367년 동안 떠돌던 포수인지, 이야기꾼인지 모를 이에게 취하다
요즘 소설들이 섬약하다는 말들이 많던 터에 모처럼 호방한 이야기를 만났다.
조선 후기 삼백예순일곱 해를 넘게 살았다는 김우종의 뜬 이야기에 피가 돌고 후끈한 숨소리가 느껴지기까지 작가가 쏟은 노력이 갈피마다 오롯이 느껴진다. 포수 김우종을 호명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의 말투와 행색을 살려내야 하고, 산으로 밀려난 포수들의 삶과 화살이 도고자에 스치며 내는 소리까지 재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시대로 돌아가 김우종이 되어야만 가능할 일이다. 수백 년 전 사건들을 이야기로 되살리는 일은 아득하기만 하여 내로라하는 이야기꾼들도 덥석 달려들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홀리고 푹 빠져서 아득한 인물들을 뒤집어써야 할 일이다. 과연 박인의 소설을 읽노라면 북방의 눈발 날리는 하늘을 찢는 화살 소리가 들리고, 세 걸음마다 총을 놓았다는 포수들에게서 풍기는 화약 냄새가 코에 닿아 온다.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과 치밀하고 생생한 묘사들에 탄복하면서도 자칫 작가가 함길도로 돌아가 다시 삼백예순일곱 해를 이어나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 이시백 (소설가)
민중의 삶은 저제나 이제나 서글프다. 그러나 정작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은 언제나 인간 대접 못 받던 그들이었다. 노비로 태어났으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육체의 한계조차 이겨낸 포수 김우종, 울산을 떠나 헤이룽 강까지 누빈 그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위아래 없는 세상이었다. 생생한 묘사로 복원해 낸 조선 후기 척박한 민중의 삶이 눈앞에 환히 밝아 온다. 눈여겨보라. 21세기 오늘, 포수 김우종이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누군가에게 백발백중 장총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르니…….
- 정지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