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에서 나 혼자, 잠을 자도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웅크리고 있어도 그것은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온다. 어느 때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어느 때는 배꼽에서부터, 그리고 어느 때는 입
에서부터.
오늘은 눈에서부터 검은 알갱이가 눈물 한 방울의 모습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 한 방울, 그치지 않는 눈물 같은 그것은 서서히 기세를 올리더니 이윽고 폭포처럼 양쪽 눈에서 쏟아졌다.
우글우글 꿈틀거리는 검은 알갱이는 얼굴을 덮고 목에서 가슴, 팔, 허리,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에까지 흘러가 온몸을 뒤덮어 나갔다.
몸의 표면에서부터 검정 이외의 색깔을 상실하고, 그때부터는 내 몸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객관적으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 p.8
“너, 앗치맞 지?”
“엉?”
굳게 다물고 있었을 터인 내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저절로 튀어나와버렸다.
땀을 흘리는지 안 흘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온몸에서 식은땀을 느꼈다. 가라앉아가던 몸속의 박동이 다시 커졌다.
어떻게 나인 줄 알았지?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사물함을 열어보는 장면을 들킨 것인가.
“아, 역시역 시앗치 목소리 다.”
그녀는 과장스럽게 손뼉을 타악 쳤다. 뭔가 연극적이어서 진짜 짜증난다는 말을 듣는 그 동작은 한밤중에도, 괴물 앞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 p.19
“……그 밤의 쉬는 시간이 있다고 치고, 굳이 학교에 올 이유가 있나?”
“앗치도 어제왔 었잖아.”
“나는 수학 교과서 찾으러 왔었어. 숙제를 해야 해서.”
“착실하 구나,너.”
아마 야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낮에 들은 말을 또다시 여기서 듣게 되자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위가 찌르르 아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밤 의쉬는 시간을 맛보러 오는거 야.”
야노는 왜 그런지 전혀 웃을 타이밍도 아닌데 빙긋이 웃었다.
“낮의학 교에서 는쉴수 없으니 까.”
얘는 어떻게 웃고 있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대꾸도 하지 않았더니 야노는 웃음을 거두고 이상한 말을 했다.
“앗치에 게는있 어? 낮의쉬 는시간?
“…….”
--- p.44~45
동료의식. 야노 한 사람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생겨난, 구성원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대의명분이 우리 반에는 존재했다.
그래서 얌전한 교실이다.
--- p.92
“안녕,좋 은아침!”
내 시야의 한 귀퉁이로, 양호실에서 빌려 입은 약간 헐렁한 추리닝 차림의 야노가 빙긋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던지며 들어왔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라는 건 좀 이상하지만, 다카오가 들으라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야노는 웃는 얼굴 그대로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았고 의자에 앉자마자 “히이익”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던져보니 빨간 추리닝 엉덩이 부분이 젖어 있었다. 내가 등교하기 전에 누군가 의자에 물을 부어놓은 것이다. 야노는 “아이”라고 말한 뒤, 빌려 입은 추리닝 자락으로 의자를 닦고 다시 앉았다.
--- p.93~94
“선물은 내가좋 아하는 것을고 른다, 아니면 상대가 좋아하 는 것을 고른다. 어느파?”
“받아도 난처하지 않은 적절한 것을 고르는 파.”
“적절한 것과적 당한것 은다른 건가?”
글쎄 어떨까, 라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르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생각해보고 어느 정도 좋아해줄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게 적절한 선물이지.”
“어휴,시 시콜콜 생각하 면서사 느라힘 들겠다.”
너는 시시콜콜 생각을 안 하고 사니까 힘든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지나치게 상관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좀더단 순하게 살면좋 을텐데.”
“야노 너는…… 아주 조금만 더 생각 좀 하면서 살아주면 안 되겠니?”
이 정도의 공손한 주의가 바로 ‘적절’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p.159~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