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접경 구역에서 하이디와 일행을 기다리는데 쨍쨍 맑은 하늘에 천둥 치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랐다. 우리처럼 일행을 기다리던 프랑스 사람이 빙하가 미끄러져 내리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serac(빙하 끝자락)’이 밀려 내려오면서 빙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인데, 때로는 그 소리가 빵, 빠방, 폭죽 수천 발을 동시에 터뜨리는 소리와도 흡사하단다. 겨울에 얼어 있던 빙퇴석 아래의 얼음이 여름이 되어 녹을 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미끄러져 비탈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그 후 이런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고, 샤모니에 있을 때는 잠 속에서도 간혹 이 소리를 듣곤 했으나 어느 틈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 ‘수백 종의 들꽃으로 뒤덮인 알프스, 알프스’ 중에서
기운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고 느낀 순간, 내 머리 위에서 빙빙 맴도는 까만 새들이 공포감을 줬다. 짝을 찾으러 다니는지 흥분해 있었다. 이제 시야는 겨우 4, 5m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짝 다가서야 이정표를 읽을 수 있었다. 눈 위를 걸어 지나가야 하거나 지표를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하는 돌투성이 길이 계속되었다. 구름 허공은 낭떠러지 골짜기임이 짐작되었다. 모험적인 길이었다. 날씨가 궂고 해가 기우는 시간이라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혼자서 제대로 걷고 있는지 불안하기만 했다.
--- ‘빙하와 눈을 밟고, 호사스런 프랑스 산장 음식’ 중에서
특이한 점은 반드시 화장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볼일을 보는 것이 좋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하면 빙하와 눈 덮인 알프스산군을 굽어보며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문을 활짝 열어두어야 다른 사람이 멀리서도 ‘재실’인줄 알고 걸어오지 않는다. 문이 닫혀 있으면 ‘공실’이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떠오르는 해를 머금은 황금빛 구름을 내려다보며 변기에 앉아 보았다. 우리가 걸었던 트레일 중에서 가장 독특한 명소가 아닐까 싶다.
--- ‘락 블랑 호수에 어린 핏빛 몽블랑, 다시 샤모니’ 중에서
길! 이 여행의 주제는 언제나 길이었다. 우리가 걸었던 무수한 트레일, 이 만년설 위에 새겨졌다 사라질 발자국들, 케이블카로 지나가는 허공의 길들, 그 무수한 길들은 내 마음속에 새로운 루트를 만들 것이었다. 종국에는 이 모든 길들이 거대한 거미집처럼 나도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케이블카가 멈추어 내리니 3,842m의 ‘에귀 뒤 미디’ 정상 전망대다. 널찍하다. 숨을 멈추게 하는 몽블랑(4,810m)과 그랑드 조라스를 시작으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알프스의 중요한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벤치 중앙 양편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표시가 되어 있었다.
--- ‘만년설을 굽어보며, 만년설 속으로 / 에귀 디 미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