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스페인 국민극을 확립하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이거니와 당대와 후대의 극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는 1562년 마드리드의 하류층 가정에서 출생한다. 우선 그는 다작의 작가로 유명하다. 일생동안 1500∼2500편의 장편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현재까지 425편이 전해진다. 그 밖에 단편극과 시를 더한다면 그의 작품 수는 훨씬 더 많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는데, 다섯 살에 스페인어와 라틴어를 읽을 줄 알았으며, 열 살 때는 클라우디아누스의 고전 라틴어 시를 스페인어로 번역했고, 열세 살에는 3막극 <진실한 연인>을 썼을 정도라고 한다. 열네 살에 예수회 학교에 입학했으나 스페인의 포르투갈 원정대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서 도망쳤다. 이 원정대에 참여하면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빌라 주교의 눈에 들게 되어 알칼라데에나레스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대부의 길을 따르려 했으나 뭇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자신은 육체적 순결을 지키면서 수도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수도자가 되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수많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1583년 해군에 입대해 포르투갈의 아소르스 제도 원정을 다녀온 다음부터 극작가로서 활동하면서 극단주의 딸이자 여배우인 엘레나 오소리오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그는 1588년 펠리페 2세의 칙사였던 고관의 딸 이사벨 데우르비나와 결혼한다. 결혼 2주 후에 무적함대에 자원입대한 그는 원정이 실패하자 스페인으로 돌아와 당시 한창 연극 활동이 왕성하던 발렌시아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로페는 왕성한 극작 활동으로 ‘천재 불사조’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로페 데 베가는 당대 관객들에게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이 있었고, 극을 만드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그의 연극은 지나치게 대중적인 성향으로 인해 문학성이나 심오한 철학성,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배층이 주된 관객이었던 기존의 연극 무대에 일반 대중을 불러들여 연극의 관객층을 넓혔다는 공로는 분명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로 인해 17세기 스페인에서는 대중의 존재를 인식하는 연극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되었으며, 연극의 지평 또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전주의 미학에서 벗어난 대중 미학으로 연극에 대한 체계화를 시도했다. 그는 당대 스페인 관객들의 요구와 취향에 맞는 연극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 결과 고상하고 지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계열의 연극과 대중적 취향의 민중 희극의 부류를 통합해서 관객들이 선호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선욱은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어서문학을 전공하고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국립대학교에서 17세기 스페인 드라마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국내 여러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스페인. 중남미 문화, 스페인. 중남미 연극, 일반 연극 이론에 관련한 다양한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연극과 문화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다른 한편으로 아직까지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스페인과 중남미 연극을 번역해 공연하고 있다.또한 연극 평론가와 드라마투르기(문예감독)로 활동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논문으로<“거짓말 같은”의 주제와 연극성>,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연극과 축제> 등이 있고, 대표적인 역서로 ≪누만시아/사기꾼 페드로≫,≪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살라메아 시장≫,≪보헤미아의 빛≫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