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청년들이 조선 처녀들보다 먼저 자랑스러운 ‘대일본제국’의 ‘일등국민’이 되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최종적으로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일인 ‘군인’으로 만들어 의도치 않은 ‘가해자’가 되게 만든 책임은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를 만든 ‘국가’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구조에 저항하지 못하고 가담했던 당사자로서의 책임이 일본의 청년-군인들에게 있다면, 조선의 청년들에게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 p.79 '위안부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중에서
<교과서―‘긍지’에서 ‘책임’으로>
교과서 사태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의 ‘반성적 태도’에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교과서문제란 우리가 생각해온 것처럼 ‘예전부터, 그리고 늘’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확대된 현상이 아니라 그 반대로 패전 이후 곧바로 시작되었고 1990년대 이후 위안부문제를 계기로 더 분명해진 ‘반성하는 일본’이 문제시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파들의 대항심과 단결을 촉구할 만큼, ‘반성하는 일본’과 ‘반성적인 교과서’가 전후 일본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교과서문제에서 무엇보다 먼저 이해되어야 할 사항이다.(18쪽)
한국의 일본 교과서 비판이 궁극적으로는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일을 당연시하는 교육과 자국중심적인 민족주의의 수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본의 우파는 이제 새삼스럽게 또 다시 일본인들에게 민족주의적 교육을 하려 하지만, 그러한 교육의 미래가 어떤 것인가는 현재의 한국과 중국과 북한이-그들이 비난하는-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교육을 지향한다면 일본의 우파들에게 한국이나 중국의 민족주의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53쪽)
<위안부―‘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일본 정부는 ‘강제연행’에 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지만 군의 관여는 ‘시인’했고, 위안부 문제에 관해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며, ‘기금’을 통해 ‘생존자나 유가족에게 보상’하려 했으며, 위안부문제가 제기된 이후 일본의 교과서들은 위안부에 대해 대부분 언급했었다. 그 언급이 교과서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인데도, 그러한 사실조차 보려 하지 않는 정대협의 비난은 일본의 그나마의 성의조차 짓밟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정대협의 발언의 문제점은 “전범국 일본의 본성인 군사대국화 및 해외침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란 원래부터 ‘군사대국화 및 해외침략 의도’를 갖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본질주의적인 사고에 있다.(73쪽)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위안부문제는 민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성의 문제이며 계급의 문제이다. 현대 일본인들이 ‘일본’인의 후예이기 때문에 이들의 불행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때 가난한 그녀들을 위안부로 보내고 학교나 결혼으로 도피할 수 있었던 유산계급―결과적으로 정숙한 여성으로 남을 수 있었던―의 후예이며 조선인 모집책의 후예이며 그들을 유린한 조선인 남성의 후예인 한국인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물론 전쟁과 식민지화에 따른 억압에 대한 책임은 무엇보다 발안한 자와 명령한 자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안의 책임을 묻는 일이 일본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발안’하고 ‘명령’한 자의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서도, ‘수행’한 자에 대한 책임은 물어져야 하는 것이다.(80~81쪽)
위안부문제의 본질은 그들이 수입을 얻었는가 아닌가, 즉 ‘공창’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위안소라는 장소가 ‘국가’의 묵인-공인하에 만들어지고 운영된 장소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일본의, ‘국가’로서의 보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의 미군기지 주변의 ‘공창’ 역시 기본적으로는 일본이 묵인한 위안소와 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즉 ‘국가’가 용인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공범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 역시 한국이 ‘책임’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이유이다.(89쪽)
<야스쿠니―‘사죄’하는 참배를 위해>
고이즈미 수상은 자신의 참배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말했지만, 야스쿠니 신사가 이처럼 전쟁이 났을 때 나가 싸우는 것-‘희생의 정신’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고귀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맹세’=약속은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야스쿠니의 사상 자체가 이렇게 국가를 위해 죽는 일을 당연시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장소에 참배한다는 것은 그러한 사상에 동의한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 수상의 참배는 수상이 의도하는 것처럼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120쪽)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고이즈미 수상의 뜻을 나타내면서 전사자와 유족들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추모의 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참배-추모하되 그 내용을 ‘감사’가 아니라 ‘사죄’로 채우는 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전사자들에 대한 ‘사죄’는 후대에게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 때문에 싸운다는 의식과, 전쟁이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기 이전에 죽이러 가는 일이라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죄’야말로 앞에서 본 전사자들의 회의를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다. ‘국가’라는 시스템 때문에, 특히 일본의 경우 천황제라는 종교적 수준의 믿음에 바탕을 둔 국가시스템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일상의 평화를 떠나 잔혹한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보내져야 할 것은 ‘감사’가 아니라 ‘사죄’여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이들의 ‘희생’은 진정한 의미의 ‘희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135쪽)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필요하다면 국가를 위해 몸바치는 일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는(물론 가고 싶지 않은 이들, 보내고 싶지 않은 이들도 많지만, 그들 역시 다만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가주기를 바랄 뿐 국가를 위해 몸바치는 일 자체를 의문시하는 것은 아니다), 군국주의화하고 있다고 늘 비난받고 있는 일본보다 한국 쪽이 훨씬 더 많이, 그리고 훨씬 더 깊이 일상 깊숙이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야스쿠니에 대한 한국의 비판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일본과 ‘함께’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했다는 점에서는, 그 결과로 중국인을 참혹하게 살해한 B급, C급 전범 중에 한국인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의 비판은 더더욱 모순을 안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136~7쪽)
<독도―다시 경계민의 사고를>
독도문제에서 근대 이후의 시마네 현 편입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전쟁 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100년 전의 식민지화와 얽혀 있는 문제이며 전후의 식민지주의 처리와도 연관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앞에 놓인 독도문제란 실은 ‘과거청산’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일 양국은 단순히 자국의 어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청산을 다시 한다는 의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처럼 무조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발상에서 벗어나 어떤 해결책이 양국에 함께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사건의 진행 양상에 따라서는 서로 결별할 수도 있다는 소극적 사고가 아니라 독도를 둘러싼 ‘화해’를 전제로 한 적극적 사고가 필요하다. ‘법적 해결’은 하나의 선택수단이지만, 모든 ‘법적 해결’이 대립하는 쌍방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189)
차라리 독도를 양국의 공동영역으로 하면 어떨까.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그렇게 해결한 경우가 실제로 없었던 것도 아니다. “모로코와 스페인은 해당 섬을 방치하기로 합의해 영유권을 동결”했고, “미국과 캐나다는 섬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으며, “영국과 스페인은 공동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박춘호, 중앙일보, 2005.4.11.). 더구나 독도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즉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되고 있는 곳이 아니기에, 그러한 해결이 더 수월하게 가능해질 수도 있다. 또 한일 양국은 이미 독도 부근을 중간수역으로 한 공동관리의 경험을 갖고 있다.
(189~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