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 사람이 지붕 밑 방으로 올라갈 때 계단목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사나이를 천천히, 똑똑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그다지 키가 큰 편은 아니었다. 걸음걸이며 머리를 가누는 품이 늘씬하게 큰 사람 같았다. 새로 유행하는 몸에 알맞는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어서 품위는 있어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무렇게나 입고 있었다. 짧게 깎아올린 머리에는 띄엄띄엄 흰 털이 섞여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아무래도 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지친 듯했고, 힘이 없어 보여 그것이 모난 그의 옆얼굴과 말투에 잘 어울리지 않았다. 나중에야 나도 안 일이지만, 그는 보행이 어려웠던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던 그 야릇한 미소를 띠면서 그는 계단이나 벽, 창문 그리고 계단에 세워 놓은 낡고 높은 장롱 따위를 훑어보곤 하였는데, 그것이 모두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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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인간이 된다'는 멀고도 힘겨운 고난의 길을 가야 할 것이고, 너의 이원성을 다원화하고, 너의 복합성을 훨씬 더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마침내 평온에 이르기 위해서 너의 세상을 좁히고, 너의 영혼을 단순화하지 말고, 더욱 많은 세계를, 결국은 이 세계 전체를 너의 고통스럽게 확장된 영혼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부처를 비롯한 모든 위대한 인간들은 이 길을 걸엇다. 어떤 이는 깨닫고서, 어떤 이는 깨닫지 못한 채, 자기가 갈 수 잇는데까지 걸어갔던 것이다. 탄생이란,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신과 새로운 경계를 짓고 격리됨을 의미하고 고통 속에서 새롭게 생성됨을 의미한다. 모든 것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 고통스런 개성화를 지향한다는 것, 즉 신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시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을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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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높은 지혜에서 온 것이건, 아주 단순한 천진함에 불과한 것이건, 그렇게 순간을 사는 법을 아는 사람, 그렇게 현재에 살며 상냥하고 주의 깊게 길가의 작은 꽃 하나하나를, 순간의 작은 유희적 가치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상처를 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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