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마차 안에서 꽃밭에서, 딱 하나 있던 자매의 방에서, 같이 다니던 일본어학교 뒷마당에서, 수도 없이 맹세했는데. 그건 결코 어린아이의 실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남자도 으레 자신들 자매 사이에는 끼어들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 라고 미카엘라는 생각한다 ― 우리는 사춘기가 지나고도 모든 남자 친구를 공유해 왔던 것 아닐까. 그리고 서로 평가했다. 그 남자 아이의 성격에 대해 외모에 대해, 부모님에 대해 머리의 좋고 나쁨에 대해, 키스 방식이며 잠자리 행동에 대해서도. 그때 일을 떠올리며 미카엘라는 미소 짓는다. ‘공유’에 실패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둘 중 누군가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바로 소개하고 함께 어울려 놀았으며, 그러다 데이트에 자신 대신 언니를(혹은 동생을) 내보냈다. 감기에 걸렸다거나 이가 아프다거나, 오늘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등 적당한 핑계와 함께. 휴대전화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일은 정말 자주 있었다. “어땠어?” 서로 상대의 보고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키들키들 웃고 눈짓에다 호들갑스러운 몸짓에다 방에 들고 들어온 싸구려 와인까지 한몫해서 급기야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포복절도했다. 변명의 여지없이 아주 나빴다, 그 시절의 우리는. --- p.60~61
아침은 먹었냐고 묻자 사와코는 먹었다고 대답했다. 토마토를 얹은 토스트와 어젯밤에 만든 콜리플라워 수프를 먹었다고. “닷 짱은?” 묻기에 운동 끝나고 먹을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우동이든 햄버거든 뭔가 간단한 것을. “그래.” 사와코가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어조로, “맛있는 집이면 좋겠다.” 라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전화를 끊고,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차량 행렬에 조바심을 내면서 다쓰야는 생각한다. 사와코와 자신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 아무리 그래도 문제가 전혀 없는 부부가 있긴 할까? 다쓰야에게는 그것도 수수께끼였다 ― 그 메일은 미카엘라가 불안정한 탓이다, 라고 결론지어도 되는 걸까. 아내가 곁에 있는데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건 외국에서 자란 여자와 결혼한 남편들이 모두 안고 있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 p.101~102
“넌 그렇게 못 할 거야.” 15개월 전, 사와코는 다부치에게 말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걸 다 버려두고,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는 일, 너는 못 할 거야.”라고. “어째서?” 다부치는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사와코 씨가 한 일을 왜 나는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때가 여름 끝자락이었고 다부치는 발갛게 그을려 있었다. 가족끼리 바다에 다녀온 참이라고 했다. “간단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사와코는 그렇게 대답했다. 진짜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오직 한 남자를 전부라고 믿고 그전까지의 인생과 분리된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특히 자신이 그 남자의 아내라는 특수한 소유물이 되고 나서는. “할 수 있어요.” 다부치가 말했다. “해 보일 겁니다. 약속해요.”하고 싱긋 웃으며. --- p.206~207
“기억나? 별사탕.” 그 별들을 올려다보며 엄마가 말했다. 나는 운동화를 신었지만 엄마와 카리나는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또각또각 울린다. “기억나. 묻었잖아, 열심히.” 재미있다는 듯이 카리나도 대답한다. “묻었다고?” 내가 물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 별이 밤하늘에 흩어진 별사탕이라고 믿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묻었다고? “그래, 묻었어.” 카리나가 말했다. 카리나의 또각또각 소리는 말짱한데 엄마의 구두 소리는 불안하다. 나는 엄마의 팔을 붙들었다. “여기서 보면, 일본은 지구 반대편이잖니. 그때만 해도 우리는 둘 다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엄청 많았지.” 엄마가 거든다. “땅을 계 ― 속 파나가면 일본에 가닿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하고 말이야.” 킥킥대며 소리 죽여 웃는다. “그래서 별사탕을 묻었어.”하고 카리나가 말한다. “별사탕을 묻으면 그게 일본 밤하늘에 흩어져서 별이 된다고 상상했어. 여기서 보는 별은 이를테면 일본에 사는 누군가가, 어쩌면 우리 같은 아이가 일본 땅에 묻은 별사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 p.235~236
“혀 차지 마.” 사와코가 말했다. “누누이 말했잖아? 나한테 혀 차지 말라고.” “안 찼어.” 즉각 부정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찼어.” 사와코는 단호히 말한다. “방금 ‘당신’이라고 말하기 전에.” 다쓰야는 허리를 뒤로 젖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음료 ― 화이트 와인과 병맥주 ― 가 나왔다. “그래. 찼어. 미안해.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런 게 아니잖아? 좀 봐주라, 진짜.” 놀랍게도 사와코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습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슬픈 듯이. “그런데 있지, 바로 그게 문제야.”라고 말한다. “혀를 차는 건 상대에 대한 모욕이야. 그리고 그건 닷 짱의 사랑의 언어와 꼭 닮았어. 그거, 알고 있었어?”하고 미소 지은 채. “당신은 내게 어느 을 퍼붓든 상관없다고 여기지. 나는 당신 거니까, 언제든 자기 좋을 대로 아무 자각 없이 퍼붓지. 가령 다른 여자와 자고 온 후에도 당신은 내게 엄청 달콤한 말을 토해내거든.” 다쓰야가 반론하려고 입을 벌리려는데 한발 앞서 “아니야.”하고 사와코가 말을 이었다. “아니야. 다른 사람과의 일을 탓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당신의 혀 차는 소리와 사랑의 언어를 구분할 수 없게 돼버렸어. 그렇잖아. 뭐가 다른데? 상상해 봐. 둘 다 모욕으로 들리는 것뿐만이 아니야. 둘 다 당신의 본심이라는 거 알아.” 말을 마치고 다시금 사와코는 미소를 지었다. --- p.333~334
어릴 적, 사와코와 미카엘라는 평생 결혼하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주위 어른들 ― 부모님이며 일본인 공동체 사람들, 이탈리아계 친구 부모들 ― 은 결혼을 사회에 거처를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여겼고, 그것은 그들이 이민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사와코 눈에 그 사람들은 2인 1조가 아니고선 버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살기 위해, 거처를 확보하기 위해. 나면서부터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진 자신들은 이제 그런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싶었다. 아주 평범하게 혼자 존재해도 된다고. --- p.378
사와코는 지금껏 젊은 사람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젊다는 건 어리다는 것이고, 젊음을 잃을까 겁내는 것을 꼴사납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큼 위태로운,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하는 벌거벗은 소녀처럼 무방비한 조카를 보고 있자니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한 남자가 자신의 전부라고 믿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젤렌은 심지어 완벽한 애정이나 완벽한 관계 같은 것도 존재한다고 믿을 것이다. 그런 젊음을 부러워한다는 건 가슴 저밀 만한 일이었다. 슬픔으로 그리고 아마도 위로와 동정으로.
--- p.419~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