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들은 골목마다 서점이 살아있고, 지역 도서관은 영유아부터 은퇴자, 실직자들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가장 필요핚 서비스를 제공하는 삶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교통이 몹시 불편한 산골짜기에 수십 개의 서점과 도서관이 있고, 책으로 가득한 마을을 만들어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그들이 사랑한 동화, 그들이 사랑한 작가의 흔적을 마을 단위로 보존하고 자랑하고 계승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학교 교육이 훌륭해서도, 도서관이 많아서도, 유럽사회가 ‘느린’의 미덕을 지켜가는 사회라서도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랜 시간 단절되지 않고 자식과 그 자식을 통해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젂통과 미덕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책과 관련된 아름다운 어린 시절과 추억의 시간, 그리고 공간들이 있었기 때문읷 것이다. 나는 유럽에서 책의 아름다움과, 책이 있는 공간의 그리움을 찾아보고 싶어서 긴 여행을 떠났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에코는 도서관은 사람들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핚다고 했다. 도서관의 문턱은 낮아서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인종, 성별, 나이, 교육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도서관은 어느 도시에서나 누구나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고 특히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용자가 어떤 책이듞 맘대로 꺼내볼 수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자, 에코가 좋아하는 도서관은 우리나라에 몇 개나 있을까? --- 「제1부 신에서 인간으로, 특권에서 평등으로 진화하는 도서관」 중에서
내가 꿈꾸던 공간이 거기 있었다. 책을 통해 과거의 영혼과 만나고, 공간을 통해 함께하게 되며, 처음 만나는 이를 경계하지 않고 낯선 자가 불편하지 않은 곳. 문학과 예술, 사람과 문화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은 밀실이되 동시에 광장이다. (중략) 이 독특헌 서점 주인은 갈 곳 없는 작가, 꿈을 키우는 무명인들에게 기꺼이 침대와 수프를 내주었다. 작가를 꿈꾸는 젊은 못상가들은 이곳에서 책을 팔거나 책을 읽거나 책을 썼다. 센강 왼쪽에 공짜로 재워주는 곳이 있다는 소문은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서점은 한 층, 한 층, 규모를 늘려야 했다. 2000년이 되었을 때 아마도 이곳에서 자고 간 사람의 숫자가 4만 명은 넘었을 거라고 했다. 세대를 달리 하며 파리를 찾은 수많은 작가와 떠돌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말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서점 전면에 걸려있는 글이 가슴에 닿는다. --- 「제2부 방랑과 유혹의 공간, 서점에서 인생을 배우다」중에서
로알드 달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유쾌하고 익살맞고 인생을 항상 즐겁게 살았던, 평생 동심을 간직했던 작가였다는 것을 미센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예부터 지금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이어져온 런던 근교의 시골 마을.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버릯 이 마을이 누군가에겐 또 커다란 의미를 던져주는 곳이 되기도 핚다. 아무렇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고, 번쩍이지도 않지만 마을은 누군가에게 풍요핚 정서적 공감을 선물핚다. 책을 사랑하고, 동화를 기억하며, 아름다움을 찾아가고 싶은 어떤 이들에게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제3부 동화를 사랑하고 작가를 추억하는 동화 마을」 중에서
마을에는 모두 20여 개의 책방과 예술가 공방이 있다. 미셸 브레방이 꿈꾸었던 것처럼 한켠에서는 손으로 종이를 만드는 공방, 읷읷이 손으로 바느질해서 엮어 만드는 수제본 장인 를리외르 공방, 손글씨 예술가읶 캘리그래피 공방 등 핚 땀 핚 땀 정성껏 엮어 만드는 책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수 백 년 젂, 작가의 잉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희귀본 고서적이 진열되어 있는가 하면 지금 부모 세대들이 어릴 때 깔깔대고 보던 아스테릭스, 땡땡 같은 만화책들과 샤를 페로 동화책을 판매하는 어릮이 책방도 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 책마을을 만들고 싶다. 우리 부부는 유럽 책마을에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푯대를 희망의 방향으로 정해놓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책마을에서 아이들이 책과 함께 뛰어놀며, 때로는 그곳에서 길을 잃어보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방문했던 원더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책을 추억할 것이고 책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할 것이며 살아있는 책들의 도시를 이어갈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