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주인공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가르침을 준다. 어떤 설교도, 어떤 꼰대질(?)도, 어떤 훈계와 잔소리도 덧붙이지 않은 채.
어쩌면 어른 연습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한 권의 동화책일지도 모른다. 동화책은 늘 우리를 자라게 하고, 키 크게 하며, 또한 성숙하게 하니까. --- p.6
젊음이 낭만이고 권력이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청춘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값진 것, 즉 젊음을 내놓고 생존경쟁을 한다. 청년들은 짧기만 한 새내기의 봄을 누리고, 이내 취업 전선이 라는 새로운 전쟁에 뛰어든다. 청년 백수 100만 시대다. (…) 386 세대가 대학 시절 민주화 시위를 했다면, 우리는 생존 시위를 하는 중이다. 낭만의 시대는 갔다. --- p.21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는 늘 이와 반대로 젊은이들에게 말했으니까.
“청년들이여, 두둑한 월급보다 두둑한 열정이 있는 곳으로 향하라!”
(…) 하지만 그 말대로 죽자 사자 달리던 젊은이들은 배고파 쓰러지고 말았다. 이쯤에서 하나 묻고 싶다.
꿈을 먹으면, 열정을 먹으면, 배가 안 고픈가요? 열정이 밥 먹여 주나요? 왜 우리는 밥 대신 열정을 먹어야 하나요? --- p.34
세상을 의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의부증이나 의처증이 아니라 ‘의세증’인지 모른다.
의심한다면, 진실은 드러난다. 의심한다면, 〈트루먼 쇼〉는 끝이 난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는다면, 〈트루먼 쇼〉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 세상의 통념이라는 스튜디오 세트에 갇힌 채로 영원히. --- p.49
스타일은 어디에나 있다. 어느 곳에서든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자기의 고치를 짜고, 인내의 시간을 견딘다면. 세상의 수많은 말에 흔들리기보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여 해답을 찾을 용기가 있다면. (…) 남들과 같이 기둥 오르기에 합류하기보다 조용히 고치를 짜고, 인고의 시간을 지나 나비가 된 노란 애벌레처럼 기꺼이 자신을 믿어 본다면. --- p.60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 아니다. 삶도 한 가지 색이 아니다. 가지 않은 길은 다시 갈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고, 절대로 늦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앤도 말하지 않았는가.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안 그래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빨간 머리 앤》, 인디고.
--- p.74
삶의 지대한 비밀 중 하나는 인생에 절대로 들이고 싶지 않은 것, 진저리나고 두렵고 쳐다보기도 싫은 것은 실상 이전과 전혀 다른 나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날개라는 것, 악마의 가면을 쓴 장난꾸러기 천사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 p.85
마법을 삶에 다시 초대하고 싶지 않은가? 문을 굳게 닫아건 네버랜드행 기차에 부르릉 시동을 걸고 싶지 않은가? 도깨비와 요괴들과 불장난을 하고, 그을음이 묻은 얼굴로 낄낄거리며, 마법사와 마녀들과 볼썽사나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잔치를 벌이고 싶지 않은가? (…) 그렇다면 여기 네버랜드 입장권이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세계로 가는 마지막 입장권. 동화는 우리를 네버랜드로 데려다줄 마지막 입장권이다. --- p.99
온몸이 부서져라 아픈 뒤에, 두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실컷 운 뒤에, 가슴이 조각조각 바스러져 내릴 만큼 쓰라린 뒤에는 울음이 그칠 거라고. 그러고 나면 따뜻한 차 한잔 마실 수 있을 거라고. 호호 불어 마시는 눈물 차는 짭조름하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고.
그래, 맞다. 그것은 장담할 수 있다. 안 마셔 본 사람은 절대 모를 테니까. 그 깊은 향기와 달짝지근한 풍미를. --- p.115
괴물이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에게 바라는 건 사랑이다. 여인이 자기 연인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사랑뿐이다. 오직 사랑. 물론 마음의 소리 역시 사랑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 어찌 보면 연인보다 많은 관심으로 애정을 보여야 할 대상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인지 모른다. 그토록 간절히 사랑을 원하는 나는 내 마음에게 한 번이라도 흡족한 사랑을 준 적이 있을까? --- p.137
밖에서 들여온 이런저런 불순물이 아니라 나만의 무엇, 나의 원액을 서술해 나가겠다고 결심하는 것. 자기 자신에 이르는 오솔길을 기꺼이 추구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바로 그것이 잠들어 버린 아름다움을 깨우는 방법이다. --- p.188
‘삶이 달라졌으면…’ 하고 바라지 않는가? ‘내게도 동화처럼 즐겁고 신나는 일이 찾아왔으면…’ 하고 공상한 적 없는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나는 지금 어떤 이벤트를 벌이는가? 요정 할머니가 지팡이를 휘두를 만큼 멋진 이벤트를 벌이는가? 내가 운명의 신이라면 나 자신을 위해 기꺼이 활을 집어 들겠는가?” --- p.216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 운수를 바꾸기 위한 가장 큰 준비물은 두둑한 복채가 아니다. 다만, 목적에 꼭 맞게 재단된 맞춤옷 같은 초심이다. 섣불리 심기 전에 씨앗을 정확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해 봐야 한다. --- p.255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그 건너에, 그 속에 든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산타의 등기우편을 받는 방법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무언의 말을 한다. 천천히 주위를 살펴보라. 발아래 돌멩이에도, 길 건너 오래된 표지판에도, 흩날리는 바람결에도, 미용실에서 우연히 집어 든 잡지 칼럼에도, 지나가듯 흘리는 친구 녀석의 농담에도, 예매 실수로 마지못해 본 영화에도 어느 순간 불현듯 산타클로스가 슬쩍 고개를 내밀지 모른다. 예의 그 익살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리고 그가 빠끔히 고개를 내미는 순간, 우리는 택배를 곧장 수령해야 한다.
---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