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지요. 작은 운명은 몰라도 생사가 달린 운명은 비켜갈 수가 없습니다. 나도 내일까지 산다는 보장이 없쟎습니까. 오늘 밤 돌연 송장이 될는지 누가 장담해요? 생과 사는 신도 예언할 수 없는 운명적인, 순간으 결과 아니겠어요? 칠십에 입주해 희년 넘게 살아도 기로원측이 그 분을 임의로 퇴출 시킬 수 없습니다.
--- p.67
누, 누구라고? 조, 조카? 조카라니, 조카가 누구야? 내한텐 아무도, 개미 새끼도, 달린 사람도 없어. 고향 떠난 후, 난 혼자, 늘 나 뿐이었어. 부모도 동기간도, 고양이 새끼 한 마리 없었어. 고양인 키우다 새끼 때, 죽었지. 그러고 안 키웠어. 불쌍해. 어미 없는 새끼는, 불쌍해. 토미 넌 어미 없이 커, 컸잖아. 내가 죽일 년이야. 눈물로 밤을 지새고, 세월이 흘렀지. 차츰 난, 널 내 생각대로, 내 새끼를 새롭게 만들었어. 귀부인 자식으로. 그게 마음 편했거든. 그래서 널, 내가 금이야 옥이야 키, 키운 거지. 미 군사고문단 문관으로 있던 남편, 생각도 안 나는 그이가 전쟁 때 죽자, 난 미망인이 되어, 널 들녘 미루나무 같이 키워, 미국 유학 보냈지. 큰집 사촌어, 언니라니? 내한텐 글쎄, 언니가 없었는데, 없었대도. 나, 그런 사람 몰라. 너, 돈 뜯으러 왔나? 세상이 그래. 여자 호, 혼자 살다 보면, 무서워, 사람이 무서워. 모두 나, 날 뜯어먹으려 했어. 여자가 평생 혼자 사는 건, 팔잘까? 난 팔자 안, 안 믿어. 그놈으 팔자 고치자고 내, 고향을 떠났지. 그런데 보자, 너 토, 토미 아냐? 토미 맞지? 미국서 언제 왔어? 바다 건너 비행기로? 배타고, 나, 남양에서 왔어? 난 거기, 지옥에서 살아 나왔지. 너무 더웠어. 펄펄 내리는 고향 눈, 그 눈이 보고 싶었어. 흰 눈이 꽃같이 펄펄 내리는 땅, 그런 나라 있잖니. 난 안 죽어. 난 주, 죽을 수 없어. 내 새끼 토미야. 한 여사는 침대 머리맡에 선 칠복이의 얼굴이라도 만지려는 듯 손을 내민다. 그네의 거미발 같은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킨다.
---pp.61-62
나의 존재는 필연적이 아닌 우연의 소산이고 삶은 늘 부조리의 연속이다.나의 운명은 신의 섭리나 타인에 의해 결정될 수 없으며 나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내가 결단을 내려야 하며, 그렇게 주어진 자유는 내가 처한 한계상황속에서 오히려 괴롭고 불안하다.나는 늘 절망을 껴안고 산다.
--- p.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안 됐어. 일백 살 생일상 받을 때까진 청정하게 살 거야. 두고 기다려봐. 내 말이 어디 틀리는가.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그네는 며느리한테 대차게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김씨가 잘 짚었듯, 떠듬거리며 말하는 꼴을 자식과 며느리 앞에서 보이기 싫다. (135쪽)
--- p. 135